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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청 작업자간 소통 부족, 사일로 현상 심해 사고 빈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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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3호 16면

중대재해 왜 근절 안 되나

25일 ‘중대재해처벌법 D-2, 공기단축이 부르는 아파트 건설현장 중노동과 부실공사 증언대회’에서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중대재해처벌법 D-2, 공기단축이 부르는 아파트 건설현장 중노동과 부실공사 증언대회’에서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많은 논란 속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관심과 논란은 이 법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강한 처벌 규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법 시행을 늦추기에는 현실이 너무 심각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사고 882명, 질병 1180명 등 2062명에 이른다. 전년 대비 42명(2.1%) 증가한 수치다. 물론 기업들이 중대재해 예방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조선·건설·철강·석유화학산업 같은 경우 사고 예방을 위한 투자가 많이 이뤄졌고, 이에 따라 중대재해가 일부 감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것은 재해사고 유형이 비슷하고, 특히 근절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여 년간 중대재해 예방과 수습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 또 기업별로 차이는 있지만, 최고책임자의 의지와 사회 전반적인 안전의식 수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0년 산업재해 사망자 2062명

우선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살펴보자. 2017년 5월, 거제도의 한 조선소에서 크레인 충돌 사고가 일어났다. 해양플랜트 건조 현장에서 800t급 골리앗 크레인과 32t급 지브형 크레인의 붐대가 충돌했다.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초대형 사고임에도 사고 원인은 간단했다. 서로 간에 소통을 하지 않고 자기 일에만 집중하다가 발생한 사고였다. 이즈음 조선소에서 중대재해가 연속적으로 일어나자 급기야 국민참여조사위원회(국조위)를 구성해서 조사를 했다(위원장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 외 국민·민간 전문가 15인).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조사 결과 크레인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안전규정 미준수, 작업자간 의사소통 부재, 안전관리자 및 신호수 부재였다. 또 근원적 요인으로는 안전을 위배하는 무리한 공정 진행, 재하도급의 확대, 안전관리 책임과 역할 불명확, 과도한 하청노동자의 증가로 나타났다. 조선업은 100% 수주 산업인 관계로 경기 변동에 민감하다보니 재하도급이 불가피하고, 고용 형태도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물량 변동에 따라 다단계 하도급과 비정규직, 사내협력업체 노동자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건설업도 마찬가지다. 건설업 역시 100% 수주 산업인 관계로 하도급과 고용 형태가 조선업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같은 수주 산업은 특성상 다단계 하도급과 공정을 맞추기 위해 일시에 동일 공간에서 다수의 하도급사가 자기만의 작업을 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게 된다. 여기에다 하도급 단계가 늘어날수록 협력업체의 ‘낮은 관리수준’과 노동자의 ‘잦은 이동’이 동시에 나타나게 된다.

철강업의 경우는 건설업과는 또 다른 이유로 협력사 비중이 높은 편이다. 철강 생산은 원료 투입부터 제품 출하까지 연속공정으로 이루어지는데, 공정과 공정 간의 간격을 메워주는 여러 보조작업의 경우 기술적 난이도를 고려해 협력 작업으로 진행을 한다. 현장에는 주간 상주 직원, 4조 3교대로 운영되는 정규 직원과 협력회사 직원, 간헐적 협력조업 출입자, 조업 라인(계선) 소속 직원과 안전·유틸리티부서 등 스텝부서 직원이 혼재돼 있다. 또 수행 업무가 전후방과 연계돼 있다. 그러다 보니 전후방 작업자, 근무 교대조, 라인과 스텝부서, 간헐적 출입자 간에 안전에 관한 원활한 소통이 필수적이다. 철강 산업은 특히 고소·고온·고전압·고중량 등 고위험 요인을 안고 있어 간단한 소통 차질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산재 사망사고 2011건(2041명)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a)추락 방지시설 등 안전시설 미설치가 52.7%(1059건), (b)작업 방법 미준수 36.6%(737건), (c)작업절차 미수립 35.3%(710건), (d)안전모·안전대 등 보호구 미지급·미착용이 29.9%(601건)였다(중복 포함). 중대재해는 복합적 요인이 작용할 수 있지만 크게 보면 투자 부족(a), 소통 부족(b), 매뉴얼 미비(c), 안전의식 미흡(d)으로 분류할 수 있다. 조선, 건설, 철강, 석유화학 등 대기업의 경우 투자 능력도 있고 미흡하나마 매뉴얼도 준비돼 있으나, 소통부족과 안전의식 미흡은 큰 과제로 남아 있다. 중소사업장의 경우 모두 다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런데 산업현장에서의 경험에 의하면 다단계 축소와 하청 업체(협력사)의 안전역량 강화는 원청사의 노력에 따라 많이 개선할 수 있다.

포상·징계 규정 함께 명문화 돼야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문제는 소통기구다. 대형 중대재해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작업자간 소통 차질로 발생하는데, 불법 파견 이슈가 내재돼 있어 해소하기가 쉽지 않다. 현업 근무시절 이러한 소통 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OS(Safty One System)를 운영하고자 했지만 잘 안 됐다. 협력회사와의 안전 교류(소통)는 ‘업무 지시’로 오해의 소지가 있어 불법 파견과 충돌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이 규정은 기존 법령(판례)과의 관계가 명확히 정리돼 있지 않다. 이로 인해 사일로 현상(silo effect·조직 내 부서간 장벽)은 높아지고 있다. 소통은 매뉴얼 준수도 중요하지만 평소 안면 인식을 통한 활발한 교류가 자연스럽게 쌓이는 게 중요하다.

대법원 판례(2016다 230924 등)에 의하면 불법 파견 판단은 ‘제3자(원청)가 해당 근로자에 대하여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원고용주(협력사 대표)가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이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법적 근거를 명확하게 해줘야 한다. 처벌 강화 속에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한다고 자기 일에만 집중하면 사일로 현상은 심화될 수 있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최고책임자(혹은 오너)의 재해 근절을 위한 의지다. 최근 광주광역시 아파트 공사장 붕괴사고에 대한 사례는 중대재해 예방에 최고책임자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는 역설적 사례다. 사고 당시 6명의 실종자가 발생한 초대형 사고임에도 이 회사의 회장은 사고 6일이 지난 17일에야 서울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회장직에서 사퇴했다. 그리고 광주의 사고 현장을 방문했지만 너무 늦은 방문인지라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만 키웠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19일자 주요 일간신문에 사과 광고를 ‘회장’ 명의가 아닌 ‘임직원 일동’ 명의로 냈다. 아마 누군가 조언을 했을 것이다. “회장님은 이미 사퇴하셔서 자격이 안 됩니다”.

지난해 6월, 건물 철거 중 외벽이 무너져 17명의 사상자를 냈던 회사가 불과 7개월 만에 초대형 참사를 일으킨 것은 최고책임자의 중대재해에 대한 인식 수준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전의식의 중요성이다. 위에서 소개한 최근 3년간의 사고 분류 중 소통 부족(b)과 매뉴얼 미비(c)도 안전의식 미흡(d)과 같이 봐야 한다. 그만큼 본인의 안전의식도 중요하지만 참여 의식을 가져야 소통도 높아지고, 매뉴얼의 체계성과 준수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안전의식과 관련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노동조합과의 관계다. 단체협약에 안전수칙 준수에 따른 포상과 징계가 동시에 명문화돼야 하는데 대부분의 기업에서 포상 규정은 있으나 노조원의 수칙 위반에 대한 징계 규정은 없다. 노동조합의 힘에 밀려 반영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번의 작은 재해가 발생했고, 또 운 좋게 재난은 피했지만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 한 사건이 300번 있었다(하인리히 법칙). 300번의 경미한 사건에 대해 징계를 할 수 있어야 중대재해도 예방할 수 있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돈(투자)으로 안 되는 두 가지 과제, 즉 작업자간 원활한 소통과 작업자 본인의 안전 불감증 극복은 앞으로도 산업 현장의 중요한 이슈로 남을 것이다. 작업자간 원활한 소통은 현행 법규 하에서는 쉽지 않다. 작업자의 소속이 갖는 신분적 ‘사일로 현상’ 극복을 위해서는 직무급제(직무 난이도나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다르게 책정하는 제도) 도입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안전불감증은 우리 사회의 안전의식 수준을 보여준다. 택시 뒷좌석 탑승자가 안전벨트를 자발적으로 100% 착용하는 수준의 안전의식에 도달하면 극복될 것이다. 범국민적인 캠페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무엇보다 최고책임자의 신속하고 진솔한 사과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유가족들은 물론 시민사회와 진심어린 소통을 해야 한다. 최고책임자의 이러한 자세는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조직을 움직이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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