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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사도광산 등재 추진에 정부 "강한 유감"...日 대사 불러 항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이 끝내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인 강제노역이 이뤄진 사도(佐渡)광산에 대해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기로 한 데 대해 정부가 “강한 유감을 표한다. 이런 시도를 중단하라고 엄중히 촉구한다”고 반발했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 처음과 마지막 한‧일 관계는 모두 과거사 갈등으로 얼룩지게 됐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 뉴스1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 뉴스1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28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사도 광산을 문화유산 후보로 추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직후 성명을 내고 “우리 정부는 우리 측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오늘 제2차 세계대전 시 한국인 강제노역 피해 현장인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추진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이러한 시도를 중단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한 일본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일본이 이렇게 회원국과 갈등을 유발하는 장소를 관련국과 협의 없이 거의 일방적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은 인류 공동의 유산 보존과 평화증진이라는 유네스코 취지에 정면으로 어긋날 뿐만 아니라 관련 국가와 국제사회의 신뢰를 또 다시 저버리는 행동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등재 신청을 결심한 이상 이제 외교전의 전장은 국제무대로 옮겨졌다.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유네스코의 심의·검토를 거쳐 2023년 6월 결정된다.

정부는 2015년 일본의 군함도 등 유네스코 등재 시도 때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와 관련국을 대상으로 외교전에 나설 계획이다. 일본이 등재 신청 철회 요구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당시처럼 ‘네거티브 헤리티지’(부정적 문화유산)로서 역사적 진실을 온전히 알리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외교부는 이를 위해 이상화 공공외교대사를 단장으로 관계기관 및 전문가가 참여하는 대응 태스크포스(TF)를 만들기로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TF는 오늘 즉시 출범하게 되며, 향후 이를 중심으로 자료 분석 뿐 아니라 교섭, 통보 등에서 기관별 전문성을 활용해 본격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7년 전 일본의 군함도 등 등재 추진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십분 활용해 이번 상황에 맞는 현실적 전략과 단계적 대응책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일본은 등재 시기를 1850~1910년으로 한정, 군함도에서 강제 노역이 벌어지기 이전의 역사만 잘라내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으려 시도했다. 이에 정부는 세계유산위원회 회원국 등을 상대로 설득전을 벌이는 한편 일본과의 외교적 협상을 통해 ‘조건부 등재’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일본이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고, 정보센터를 만들어 이를 포함한 전체 역사를 서술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사도 광산 유적 중 하나인 도유(道遊)갱 내부의 모습. 교도=연합뉴스

사도 광산 유적 중 하나인 도유(道遊)갱 내부의 모습. 교도=연합뉴스

하지만 일본은 강제노역의 역사를 바로 알리고 희생자들을 기리겠다는 후속조치 약속을 아직도 지키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또 강제징용이라는 범죄행위가 벌어진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에 올리려고 시도하는 만큼 이는 향후 외교전에서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유네스코가 지난해 7월 일본이 군함도 등재 당시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강제노역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하는 등 공개적으로 경고를 날린 점 역시 한국이 벌일 외교전의 당위성을 높일 수 있다. 한‧일 양자 간의 관계를 넘어 일본이 국제사회와 한 약속을 어긴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유네스코의 경고 이후 유네스코 사무국 등을 통해 일본이 약속을 이행할 수 있도록 대화하자고 제안했지만, 일본은 이에 답조차 하지 않고 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성명에서 “우리 정부는 작년 7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군함도 등)‘일본 근대산업시설’ 관련 일본의 위원회 결정 불이행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한 바 있음을 상기하며, 일본 정부가 2015년 세계유산 등재 시 스스로 약속한 후속조치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선행돼야 함을 재차 강조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등재 결정이 이뤄지는 2023년 일본이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인 반면 한국은 위원국이 아니고 ▶군함도에는 여러 국적의 피해자가 있었지만 사도광산에는 조선인 노동자만 강제동원됐으며 ▶등재 여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네스코의 자문기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심사 과정에서 정치적 고려는 하지 않고 유산으로서의 가치만 따진다는 점 등은 우려를 키우는 요소다.

사도광산 유산 등재 저지 외교전의 성패를 떠나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까지 일본과의 관계에서 과거사에 발목이 묶이게 됐다. 임기 초에는 문 정부의 위안부 합의 무력화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 한국발 악재가 터졌고, 이에 일본이 부당하게 경제보복을 가하자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를 시도하는 등 강공으로 맞서며 양국 관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를 불과 100여일 남겨두고 일본의 ‘사도광산 도발’이 이뤄지며, 결국 문 정부 내에서 한‧일 관계가 바닥을 치고 올라갈 동력을 확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역대 최악의 상황에서 대일 외교를 시작해야 한다는 뜻으로, 문 정부는 차기 정부에 막대한 외교적 부담을 넘겨준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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