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반발에 밀린 기시다, 日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추천

중앙일보

입력 2022.01.28 18:58

업데이트 2022.01.28 19:02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니가타(新潟)현 사도(佐渡)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기로 28일 결정했다. 한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사도 광산의 추천을 강행하면서 역대 최악인 한ㆍ일 관계에 또 다른 갈등 사안이 더해지게 됐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이날 오후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문화유산 후보로 추천하기로 결정했다"며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올해 신청해 조기에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문화유산) 등록 실현을 위한 더 빠른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오후 외무상 및 문부과학상과 협의를 통해 추천 여부를 최종 결정했다.

니가타현 사도 광산 유적 중 하나인 도유(道遊)갱 내부의 모습. [교도=연합뉴스]

니가타현 사도 광산 유적 중 하나인 도유(道遊)갱 내부의 모습. [교도=연합뉴스]

니가타현 사도섬에 있는 사도 광산은 에도(江戶) 시대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이후 태평양전쟁 기간에는 구리ㆍ철ㆍ아연 등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광산으로 활용됐고 조선인도 이 광산에 동원돼 강제 노역을 했다. 이곳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의 수는 자료에 따라 1200명에서 많게는 2000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 문화청 문화심의회는 지난달 28일 사도 광산을 세계문화유산 추천 후보로 선정했고, 다음달 1일 추천 마감 기한을 앞두고 관련 부처가 최종 추천 여부를 협의해 왔다.

니가타현은 조선인 노동자 노역 문제 등을 염두에 두고 등재 대상을 ‘에도 시대의 사도 광산’으로 한정했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이 2015년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탄광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에도 강제 노역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리겠다고 약속하고도 이를 지키지 않았던 점을 들어 사도 광산 등재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아베 "역사전쟁 걸어오면 싸워야"  

일본 정부는 당초 한국의 반발 등으로 인해 사도 광산이 유네스코 심사에서 탈락할 것을 우려해 올해는 보류하고 내년 이후로 등재 신청을 미룰 방침이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지난 27일 TBS 인터뷰에서 “올해 또는 내년 이후 중 어느 쪽이 등재 실현 가능성이 클 것이냐는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며 확답을 피했다.

하지만 결국 “한국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등 자민당 내 보수파의 압박에 굴복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7일 “(사도 광산 추천을) 내년으로 연기한다고 해서 등재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냐”며 “(한국이) 역사전쟁을 걸어오는 상황에서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등재 추천을 미룰 경우 보수층 지지자의 표를 잃을 수 있다는 국내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NHK는 “정부는 내년 이후에 추천해도 등록이 된다는 전망이 없고, (추천을 원하는) 현지 의향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 등으로 추천 방침을 굳혔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가 다음 달 1일까지 추천서를 제출하면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심사와 논의를 거쳐 내년에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논의 과정에서 한국 등의 강한 반대 등 치열한 외교전이 예상된다.

일본은 앞서 난징대학살 관련 자료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에 반발하며 회원국의 반대가 있을 경우 등재를 유보한다는 새로운 지침을 도입하는 데 앞장서 이를 실현시켰다. 사도 광산이 신청한 분야는 문화유산이지만 한국 등의 반대를 무시할 경우 ‘이중 잣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일본이 주도해 도입한 지침이 이번엔 일본의 발목을 잡게 될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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