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왜 우리 아파트값만...'82년생 김지영' 작가의 부동산 하이퍼리얼리즘[BOOK]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한겨레출판

아무래도 '조남주 월드'의 귀환이라고 해야겠다. 21세기 한국의 사회문화사 한 귀퉁이를 장식할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그 조남주 말이다. 그의 새 소설집이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부동산 때문에 울고 웃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그린 연작소설들인데, '하이퍼 리얼리즘'이라는 수식어가 과장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실감 난다.

 가상의 동네 서영동. 남들과 견줘 어디 하나 꿀리는 데 없는데 부동산 가격은 영 신통찮다. 지하철역 가깝고, 강남·종로·마포·김포공항·인천공항, 어디로든 연결 잘 되고, 걸어서 갈 수 있는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두 군데씩. 그런데도 42평 아파트가 8억을 못 넘긴다. 그러자 누군가는 분개한다. 지역 친목 카페에 도발적인 글을 올린다. 중개업소들의 가격 후려치기 담합 때문에 서영동만 빼고 오른다는 음모론이다('봄날아빠(새싹멤버)').

삶의 기술인지 욕망의 초대장인지 헷갈리는 부동산 투자 노하우는 조기축구회 형님들을 통해 아니면 밥상머리 교육 형식으로 공공연하게 혹은 은밀하게 유통되거나 대물림된다(다큐멘터리 감독 안보미').

아파트가 빼곡히 보이는 서울. [연합뉴스]

아파트가 빼곡히 보이는 서울. [연합뉴스]

적지 않은 돈을 대출받아 3억대 초반 가격에 25평형을 매수하고는 덜덜 떨며 잠 못 이루던 젊은 부부는 갈수록 대담해진다. 4년 만에 34평형, 다시 2년 만에 42평형으로 갈아탄 끝에 결국 10억대 부자를 바라보지만 지극히 당연하게도 넓은 평수가 끝없는 행복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교양 있는 서울 시민 희진').
이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누군가는 월세를 밀린 끝에 자살하고, 누군가는 재개발 강제 퇴거 때문에 지상의 방 한 칸 없이 거리로 내몰린다('이상한 나라의 엘리').

 이런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조남주는 "내내 무척 어렵고 괴롭고 부끄러웠"다고 썼다. '작가의 말'에서다. 그는 오랫동안 방송작가로 필력을 키웠다. 2016년 『82년생 김지영』이 출세작이지만 2011년 작가로 데뷔했다. 그런데도 글쓰기는 언제나 어렵다는 뜻일까. 그것도 신작을 내놓기 부끄러울 정도로?

부동산에 관한 한 예외를 찾기 어려운 우리 안의 이중성이 스스로 부끄럽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한없이 자상하고 관대한 아버지가 밖에서는 고집불통 입주자 대표일 뿐이다. 뼈를 깎는 근검절약과 어우러진 부동산 자수성가 스토리는 탐욕으로 얼룩진 부동산 불패신화의 순화 버전일 뿐이다.

 이런 착잡한 사정이 압축된 인물이 현대아파트 입주자 대표이자 다큐 감독 안보미의 아버지인 안승복이다. '봄날아빠' '감독 안보미' 모두에 얼굴을 비치는 그는 물리적으로 제재받는 상황에 처하자 순식간에 폭력적으로 표변한다. 뿌리 깊은 여성 차별에 시달린 끝에 실성하는 김지영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런 반전은 안승복에만 해당되는 얘기인가. 조남주 월드는 묻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