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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편지처럼 반가운 호크니의 초록, 그리고 예술 이야기 [BOOK]

중앙일보

입력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데이비드 호크니, 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
시공아트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의 한국 전시회가 무려 30만 관람객을 불러모으는 동안, 영국 태생의 이 80대 노화가는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에 있었다.

그 전해에 프랑스 여행을 다녀오며 이곳에서 2019년의 봄을 맞으리라 결심한 터. 그의 표현을 빌리면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일곱 난쟁이가 사는 집"과 비슷한 농가를 사서 집과 작업실을 꾸미고 날마다 그림을 그렸다.

작업실의 호크니와 애완견 루비. 2019년 3월 모습이다. [사진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작업실의 호크니와 애완견 루비. 2019년 3월 모습이다. [사진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호크니의 그림 '입구'(2019). 노르망디에서 그린 신작이다. [사진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호크니의 그림 '입구'(2019). 노르망디에서 그린 신작이다. [사진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노르망디에서의 일상과 창작, 예술에 대한 생각을 담은 이 책은 호크니와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가 주고받은 대화를 재료로 삼는다. 오랜 지인인 게이퍼드는 그랑드 쿠르(Grande Cour, 너른 뜰)라 불리는 노르망디 집을 팬데믹으로 방문할 수 없을 때도 이메일과 화상통화로 숱한 이야기를 나눈다.

고흐의 노란집이 그랬듯 호크니 같은 화가에게 작업실이 어떤 의미인지, 왜 그가 자신의 여러 작품이 배치된 작업실 모습을 종종 그리는지, 소실점이 하나뿐인 원근법을 왜 싫어하는지, 사진이 포착할 수 없는 빛과 풍경이 어떤 것인지, 이와 달리 화가의 그림이 공간과 시간과 움직임을 어떻게 담아내는지, 피카소나 마티스는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낯선 화가의 그림에서 그가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 찬찬히 드러난다.

호크니의 신작 'No.556'. 2020년 10월 19일의 그림이다. [사진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호크니의 신작 'No.556'. 2020년 10월 19일의 그림이다. [사진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다면적이고 열정적인 예술가로서 호크니의 통찰은 미술만 아니라 플로베르나 프루스트의 문학, 바그너의 음악에서도 번득인다. 오페라 등 무대 미술도 여러 차례 맡았던 터.

1990년대 자신의 미국 말리부 집을 방문한 이들에게 남다른 드라이브를 시켜준 얘기에는 감탄이 나온다. 자동차 안에 바그너 음악을 틀고, 그에 맞춰 바깥 풍경이 절묘하게 펼쳐지는 드라이브다. 음악의 시각화·공간화란 점에서, 아니 예술의 일상화라는 점에서도 놀라운 발상이다.

그림값이 비싼(2018년 경매에서 그림 한 점이 1000억원 넘는 가격에 낙찰됐다)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노르망디에서의 일상은, 더구나 팬데믹 이후의 일상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호크니의 신작 'No.180'. 2020년 4월 11일의 그림이다. [사진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호크니의 신작 'No.180'. 2020년 4월 11일의 그림이다. [사진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지베르니의 모네가 그랬듯, 집 마당에서 보이는 자연이 곧 영감이자 소재다. 나무가 초록으로 물들고, 꽃을 피우고,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물웅덩이에 비가 내리는 모습을 하나하나 관찰하며 그림을 그린다.

호크니의 신작'No.263'.2020년 4월 28일의 그림이다. [사진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호크니의 신작'No.263'.2020년 4월 28일의 그림이다. [사진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방금 본 일몰에 대해, 간밤에 화장실에 가다 본 보름달에 대해 호크니가 게이퍼드에게 한 얘기를, 그렇게 완성된 그림과 함께 보는 것은 완성 직후 따끈따끈한 상태에서 거장의 작업을 감상하는 기분을 안겨준다.

호크니의 신작 'No.592'. 2020년 10월 31일. [사진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호크니의 신작 'No.592'. 2020년 10월 31일. [사진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책 곳곳에 호크니의 기존 작품과 다른 화가들 작품이 실려 있어 이를 언급한 대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초록이 물씬한 신작들이다.

해돋이를 담은 호크니의 애니메이션 '태양 혹은 죽음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음을 기억하라'(2020)는 2021년 5월 서울 등 주요 도시에 공개됐다. 사진은 서울 코엑스 K-POP스퀘어에 선보인 모습. [이은주 기자]

해돋이를 담은 호크니의 애니메이션 '태양 혹은 죽음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음을 기억하라'(2020)는 2021년 5월 서울 등 주요 도시에 공개됐다. 사진은 서울 코엑스 K-POP스퀘어에 선보인 모습. [이은주 기자]

2020년 4월 초, 호크니의 신작 몇 점이 BBC의 단독 공개를 시작으로 여러 영국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초록의 풀과 나무, 꽃이 그려진 그림들은 팬데믹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처럼 다가왔다.

 BBC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호크니가 친구들에게 아이패드로 그린 수선화 그림을 보내며 이메일에 붙인 제목은 이랬다. '봄은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
이 책의 원제(Spring cannot be Cancelled)와도 통한다. 호크니의 그림이 상기시키듯, 팬데믹으로 수많은 것이 취소된 세상에도 봄은 온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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