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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딸 취직했어요" 이말 하러도 못가요...오미크론 실향민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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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손녀딸 취직했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리러 잠깐이라도 들르려고 했는데, 확진자가 1만4000명이 넘었더라고요. 바로 맘 접었죠.”
‘예비 직장인’ 박모(27)씨는 이번 설 연휴에 고향에 가려다 오미크론 확산세에 포기했다고 했다. 2년여의 수험기간과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수년째 고향에 가지 않았다. 박씨는 “신입사원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 회사 생활 시작에 좋지 않을 것 같았고, 할머니 걱정도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오미크론 실향민’이 된 셈이다.

24일 대구 북구 한 네거리에 '설 고향친지 방문 및 여행 자제'를 당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24일 대구 북구 한 네거리에 '설 고향친지 방문 및 여행 자제'를 당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졸지에 실향민 신세로 설 연휴를 맞는 이들의 심경은 복잡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일상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염려,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 자칫 자신이 코로나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걱정 등이 교차하고 있다.

코로나는 걱정 되고, 부모님은 보고 싶고

지난해 2월 9일 설 연휴를 이틀 앞두고 서울 중구 서울역 승차장에서 귀성객들이 이동하는 모습. 뉴시스.

지난해 2월 9일 설 연휴를 이틀 앞두고 서울 중구 서울역 승차장에서 귀성객들이 이동하는 모습. 뉴시스.

대학생 김정현(23)씨는 “명절에는 가족들이 여기저기서 모이는데 우리는 15명 넘게 모이기도 했다”며 “그러다 코로나19에 감염될까 걱정돼 안 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부모님도 보고 싶고, 과거보다 썰렁할 고향집 생각에 안타깝다고 했다.

직장인 김모(27)씨는 아버지 회사에서 내려온 ‘설 연휴 이동 자제’ 지침으로 이번에도 친척들 보기를 포기했다. 김씨는 “이번 설에 오랜만에 만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버지 회사에서 지침이 세게 내려왔다”며 “할아버지께서 자식들 얼굴 못 봐 아쉽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2년이 넘게 실향민이 된 이들은 가족이 그립다고 입을 모았다. 취업준비생 김예원(26)씨는 “서울에서 혼자 자취해 부모님을 못 본 지 오래됐다. 부스터샷을 맞기도했고, 본가도 수도권이라 마스크 단단히 끼고 조심해서 가겠다”고 했다. 직장인 이모(31)씨는 “친척들은 모이지 않아도 부모님과 동생 등 가족들 얼굴은 봐야 할 것 같다”고 귀성 계획을 밝혔다.

“고향 방문 하지 마세요”…확산세 차단 총력

김부겸 국무총리가 24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부겸 국무총리가 24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미크론 변이 확진자가 급증하며 정부는 고향 방문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24일 “모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고향 방문을 자제해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전라남도와 충청북도 등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고향 방문과 가족‧친지 간 모임을 자제해달라는 호소문을 잇달아 냈다.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교통연구원은 26일 “이번 설 연휴에 총 2877만명, 일평균 480만명이 이동할 것으로 조사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설 연휴 409만명보다 17.4% 늘어난 수치다. 상황이 이러니 설 명절이 끝나고 출근하기 전에 코로나19 검사를 하라며 자가진단키트를 준 회사도 나왔다. 직장인 임모(26)씨는 “회사에서 진단키트를 받은 건 처음”이라며 “오미크론 확산세가 무섭다는 게 피부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바이러스 급증으로 광주지역 검사방식이 고위험군 중심으로 변경된 26일 오전 광주 서구 선별진료소 옆에 설치된 '신속항원검사소'에서 검사자가 자가검사키트를 이용해 스스로 검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바이러스 급증으로 광주지역 검사방식이 고위험군 중심으로 변경된 26일 오전 광주 서구 선별진료소 옆에 설치된 '신속항원검사소'에서 검사자가 자가검사키트를 이용해 스스로 검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가야 한다면…짧게 머물러야”

한국교통연구원이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번 설 연휴 고향길에 승용차를 이용하겠다는 비율이 91%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도의 94%보다는 다소 낮아졌지만, 코로나 이전의 85%대보다 높은 수치여서 감염 우려로 대중교통 이용을 꺼리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오미크론 중증률은 약하긴 해도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며 “특히 백신 접종을 완료하지 않은 고령 부모님의 경우 감염되면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확산세가 심각하니 안 움직이는 게 제일 좋지만, 그럼에도 가야 한다면 짧게 머물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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