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그녀는 패리스 힐튼이 아니라 추락했다, 기괴한 송지아 사태

중앙일보

입력 2022.01.28 00:40

업데이트 2022.02.03 11:01

지면보기

종합 20면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프리지아 짝퉁 착용 논란

럭셔리 패션 유튜버 ‘프리지아’로 활동하는 송지아. [화면 캡처]

럭셔리 패션 유튜버 ‘프리지아’로 활동하는 송지아. [화면 캡처]

프리지아 짝퉁 착용 논란은 여러 가지로 기이한 현상이다. ‘프리지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인기 패션/뷰티 유튜버 송지아는 그녀가 출연한 연애 리얼리티쇼 ‘솔로지옥’이 넷플릭스에서 세계 시청 5위에 오르면서(1월 9일 기준) 국제적인 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의혹과 비난 속에서 17일 자필 사과문을 올린 후 25일 아예 활동을 중단했다. 소셜미디어 시대에나 볼 수 있는 급부상과 급추락이다. 그리고 그 추락의 원인은 다름 아니라 그녀가 ‘솔로지옥’과 유튜브 방송에 걸치고 나온 샤넬·디올 등 소위 ‘명품’ 브랜드 옷과 장신구 다수가 ‘짝퉁’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위조품을 구입하고 방송에서 착용하는 것은 지적 재산권을 무시하고 디자이너의 창작 의욕을 꺾는 잘못된 행위다. 하지만 그렇다고 프리지아가 짝퉁을 제조·유통하거나 음주운전 같은 형사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다. 그런데도 이 사건이 이토록 화제가 되고 비난이 폭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짜 명품 착용한 유튜버 맹폭격
금수저 출신 아닌 것에 더욱 분노
물질만능과 SNS의 기묘한 결합
한국사회의 부실한 토대 드러내

외국 언론들도 큰 관심 보여

프리지아가 “전 세계인이 보는 넷플릭스에서 이런 짓을 저질러서” 분노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솔로지옥’의 인기를 반영하듯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영국의 데일리메일, 미국의 틴 보그 등 여러 해외 매체들이 그녀의 사과 소식을 전했다. 이걸 보며 더더욱 “나라 망신”이라고 격분하는 국내 네티즌과 언론도 있다. 하지만 사실 몇몇 외신은 프리지아의 모조품 착용보다도 그것에 크게 분노하는 한국인의 반응을 더 흥미롭게 보도하고 있다.

미국 온라인매체 버즈피드는 “(사과문이 발표된 후) 팬들의 반응은 엇갈렸는데, 한국인들 대다수는 그녀에게 기만과 현혹을 당했다는 느낌이라고 한 반면 (…) 많은 국제 팬들은 이 절약의 여왕을 옹호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라고 보도했다.

버즈피드는 이것을 문화 차이로 보면서 어느 한국계 미국인의 말을 인용했다. “한국은 극도로 보수적인 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유명인이)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은 격노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과연 버즈피드의 분석이 맞을까. 한국에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일부 정치인도 잘 살아남는데?

버즈피드 기사의 댓글판에도 외국 독자들 간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한 독자는 “문제는 그녀가 가짜 브랜드를 입었다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반복적으로 했다는 거야”라고 주장하면서 프리지아가 한강뷰 럭셔리 아파트를 자신이 소유한 것처럼 소개했는데 알고 보니 월세였다는 점, 어릴 때부터 부유하게 자랐다고 말한 점 등을 지적했다.

또 다른 독자는 그 의견에 반박하며 “프리지아가 자기 지위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진흙탕에 처박아야 한다면 미국 인플루언서와 ‘셀럽’ 90%도 같이 처박아야 할걸. 이 멍청한 온라인 유명인들이 어디 어디에 산다고, 전용 비행기를 타고 다닌다고, 돈 X만큼 가졌다고 거짓말할 때, 우리는 대개 그저 비웃고 우리 갈 길 가잖아. 그들의 도덕성이나 그 거짓말이 업계에 미칠 파문을 문제 삼지 않잖아”라고 하면서 프리지아가 과도하게 화살받이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 독자들의 의견은 프리지아 논란의 핵심을 담고 있다. 그들의 말처럼 이 사건이 화제가 된 것은 그녀가 저작권 침해를 했기 때문보다도 그녀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0.1% 부자인 것처럼 행동했는데 생각만큼 금수저가 아닌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기만당하고 배신당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사람도 있고 그냥 가볍게 비웃고 마는 사람도 있을 텐데 지금 한국사회에 전자의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사건이 커진 것이다. 한국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다음 글들이 그 현상을 요약해준다.

“자존감 높고 고급스러운 삶의 영앤리치 이미지였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고 철저하게 만들어진 컨셉이라는 게 문제.”

“과하게 욕먹는 이유 이거 같음. 그냥 요새 우리나라 금수저 띄워주기 이런 거 너무 심해져서 프리지아가 타깃이 된 것 같음.”

타고난 부가 재능이 되는 시대

만약 프리지아가 연기나 노래·춤으로 명성을 얻은 배우나 아이돌 가수였다면 짝퉁을 걸쳤다고 해도 잠시 웃음거리가 되고 말 뿐 유명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활동의 존속 자체를 위협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프리지아는 어떤 재능을 보여준 게 아니라 오로지 자연스럽고 털털한 태도로 부유한 생활을 하며 럭셔리 브랜드를 사고 걸치는 것으로써 유명해졌다. 즉 부유함을 타고나서 거기에 익숙한 ‘영 앤 리치’함이 일종의 재능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가창력으로 뜬 가수가 립싱크했다는 의혹을 받아 그 재능을 의심받으면 무너지는 것처럼, 부를 타고난 게 재능으로 여겨졌던 사람이 그것을 의심받으면 무너지게 된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요즘 한국사회는, 특히 프리지아에게 열광했던 1020세대는, 타고난 부를 재능처럼 여기며 선망하고 숭상하는 모습을 보인다. 임춘애 육상선수가 너무 가난해서 라면만 먹으면서 훈련했다는 이야기에 전 국민이 감동하며 열광했던 건 이미 아득한 옛날 일이 됐다.

심지어 2000년대에 데뷔한 어느 톱스타 가수의 경우, 한때 그의 인기가 급락했던 이유 중 하나가 그가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과 자신의 노력 이야기를 너무 강조해서, 마치 꼰대 설교 듣는 것 같아서”라는 평도 있을 정도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노오력”의 압박감을 주는 자수성가 성공담보다 부를 타고난 ‘영앤리치’ 유명인이 숨 쉬듯 자연스럽게 럭셔리 소비를 하는 걸 보며 대리만족하는 걸 즐기는 상황이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틴 베블런(1857-1929)이 신랄하게 비판했던, 땀 흘려 일하는 것을 기피하는 유한계급(leisure class)과 그들의 과시를 위한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를 숭배하는 현실이다. 벤처 창업과 전문직이 각광받으며 계층 이동이 활발한 시기에는 ‘열심히 일하는 부자’에 대한 선망으로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이 상대적으로 힘을 잃곤 하는데, 지금은 유한계급론이 다시 힘을 얻고 있는 것은 현재의 경제사회구조가 그렇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게다가 19세기 말의 베블런으로서는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그것은 과시적 소비 자체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돈벌이가 된다는 것이다.

패리스 힐튼과 갈라지는 지점

지난해 11월 결혼한 패리스 힐튼. [중앙포토]

지난해 11월 결혼한 패리스 힐튼. [중앙포토]

‘부자이고 돈을 펑펑 씀으로써 오히려 더욱 돈을 버는’ 대표적인 예는 바로 미국의 패리스 힐튼이다. 힐튼의 경우에는 힐튼 호텔 창업주의 증손녀로서 실제 금수저라고 할 수 있는데, 2000년대 초에 럭셔리하고 자유분방한 자신의 생활을 그대로 노출하는 TV 리얼리티 쇼 ‘심플 라이프’에 출연해서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그녀는 그저 “유명한 걸로 유명한(famous for being famous)” 유명인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주목할 것은 힐튼의 다음 행보다. 그녀는 그저 유명해지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이용해 각종 사업을 벌였다. 특히 그녀의 이름을 딴 향수 라인은 상당한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걸 보면 이 사람이 그냥 ‘철없는 상속녀’가 아니라 ‘다 계획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럭셔리하고 자유로운 ‘영 앤 리치’의 라이프스타일을 사람들에게 내보여서 이름을 알리고 선망의 대상이 된 다음, 그 인지도와 선망을 이용해서 비즈니스를 해서 돈을 버는 것, 이것이 바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이 따라 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그들 모두 힐튼처럼 진짜 금수저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셜미디어에서 인플루언서의 럭셔리 라이프 스타일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사람들은 그 인플루언서가 진짜 금수저여야만 일종의 재능으로 인정하고 인플루언서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파는 비즈니스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프리지아도 힐튼처럼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짝퉁을 걸침으로써 진품 럭셔리 브랜드를 펑펑 살 수 있을 만큼 부자는 아님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배신감을 표하며 그녀를 혹독하게 비난하고 있다. 물론 저작권 침해와 거짓말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진짜 금수저가 아니기에 비난받는 현실, 그리고 진짜 금수저는 그 자격을 인정받아 자신의 럭셔리한 삶 자체로 앉아서 수익을 얻는, 즉 돈 자랑으로 돈벌이를 하는, 그래서 부자가 더욱 부자가 되는 이 현실은 상당히 기괴하지 않은가.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