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경호의 시선

노동개혁 외면하며 청년 표 달라고?

중앙일보

입력 2022.01.28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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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전국민중행동이 1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민중총궐기 대회를 열고 있다.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전국민중행동이 1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민중총궐기 대회를 열고 있다.

2030 청년의 선택이 중요해지면서 이들을 향한 여야 대선 후보의 구애도 뜨겁다. 병사 월급 200만원, 암호화폐 과세 완화를 앞다퉈 발표하며 ‘청년의 대변자’처럼 행세한다. “3040 젊은 장관을 적극 기용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젊은 국민내각을 구성”(이재명), “모든 정부부서에 청년 보좌역 배치”(윤석열) 등 청년을 위한 미래의 자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연 100만원의 청년기본소득(이재명), 청년원가주택 30만 가구(윤석열) 등 솔깃한 정책도 빠지지 않는다.

과잉규제 풀어야 일자리 늘어나
여야 유력후보, 친노동 행보 경쟁
안철수 ‘노동포퓰리즘 비판’ 주목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고 달콤한 당의(糖衣)로 포장한 현금성 지원 공약을 많이 내놓는다고 그게 다 제대로 된 청년 공약, 청년 정책은 아니다. 진정으로 청년을 위한다면 일자리 문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 지난해 구직 단념자는 63만 명으로 관련 통계가 개편된 2014년 이후 최대였다. 실업통계엔 잡히지 않지만 사실상의 실업자가 꽤 많다는 얘기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대남(20대 남성)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할 문제로 일자리를 꼽은 건 자연스럽다.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 정공법은 일자리 과잉규제를 푸는 노동개혁이다. 일하고 싶은 의지와 능력이 있으면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노동력을 파는 당사자인 직원이 원하고 노조도 동의하면 주 52시간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강력한 노조의 영향력 아래 있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일자리만 보호하지 말고 비정규직, 단기 임시직, 아르바이트 일자리도 보호해야 한다. 최저임금 폭주는 잘 조직된 노조의 우산 밑 일자리만 보호하고 노동시장 최약자인 임시직 일자리는 날려버렸다. 인건비 부담에 좋은 일자리일수록 신규 채용이 줄었고, 청년 구직자의 한숨만 늘었다.

 기존 일자리만 보호할 게 아니라 앞으로 생겨날 일자리도 보호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혁신은 기존 일자리를 끊임없이 위협한다. 전통적인 일자리 감소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기존 일자리 노동자들이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하지만 ‘공정한 전환’이라는 깃발이 혁신을 과도하게 짓누르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새로운 일자리는 대부분 순발력 있고 적응력 강한 청년의 몫이다. 따라서 사회적 갈등 상황에서 혁신 편에 서는 게 청년의 편에 서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에 대한 비난 여론에 휘둘려 정부가 빅테크 기업에 너무 센 규제를 도입하는 건 문제 있다. 소비자 편익과 청년 일자리 측면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청년(15~29세)체감 실업률 추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청년(15~29세)체감 실업률 추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대선 후보들의 노동 공약은 어떨까. 엊그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주 4일제·4.5일제 단계적 확산, 상시·지속업무 정규직화, KTX-SRT 통합,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등의 노동 공약을 발표했다. 민주노총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친노동 공약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동안 강성노조를 비판하며 중도 확장을 시도했던 이 후보가 지지율 정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집토끼’인 노동계 끌어안기에 나선 것으로 본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노동개혁 공약은 뚜렷하지 않다. 예전에 “1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발언이 논란이 됐다. 주 52시간제의 현실적 적용이 필요하다는 취지였을 텐데,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도도한 흐름에 무지한 실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제대로 방어하지 않은 걸 보면 노동 개혁에 대한 입장이 과연 있기나 한지 의문이다. 그 후 행보를 보면 보수 후보라는 게 믿기 힘들 정도다. 한국노총이 추진해온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공무원·교원의 타임오프제(근로시간 면제제도)에 덜컥 찬성했다. 이미 지지를 표명한 여당 후보와 한몸처럼 움직였다.

 이런 와중에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발산하는 일련의 노동개혁 메시지는 신선했다. “강성 귀족노조는 기업의 성장과 청년을 위한 일자리 창출의 걸림돌”이라며 코로나 시국에 대규모 집회를 강행한 민주노총을 비판한 데 이어, 타임오프제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에 찬성한 이재명·윤석열 후보를 향해 “노동자 전체가 아닌 기득권 노동계 표만을 노린 노동 포퓰리즘”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대선판을 흔들고 싶은 지지율 3위 후보의 안간힘이라고 평가절하할 일이 아니다. 인기 없는 연금 개혁을 홀로 부르짖는 것도, 재정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도박판처럼 ‘묻고 더블로’ 내지르는 수십조원의 공약 경쟁에서 한발 떨어져 있는 것도 안 후보다. 노동개혁과 연금개혁,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데 미래세대인 청년의 핵심적 이해가 걸려 있다. 기성세대의 청년세대 착취를 외면하면서 청년 표를 애걸하는 건, 참 대단한 후안무치다.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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