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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위기라는 ‘혜성’이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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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경제산업디렉터

김원배 경제산업디렉터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은 재난 영화의 단골 소재다.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도 이를 다룬다. 혜성이 발견되고 지구의 생명체가 멸종할 위기에 놓인다. 남은 시간은 6개월 14일. 그런데 멋지게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없다.

선거를 코앞에 둔 대통령은 혜성 위기를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챙길 생각만 한다. 언론과 대중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혜성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20% 정도는 혜성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TV에서 흘러나온다. 대통령 지지자 그룹에선 ‘하늘을 올려다보지 말자(돈 룩 업)’는 캠페인도 벌어진다. 핵무기로 혜성의 궤도를 바꾸는 방안이 있었음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골든타임을 놓친다.

이대론 90년생 국민연금 못 받아
문재인 정부선 아예 연금개혁 실종
청년 위한다면 푼돈 대신 개혁을

혜성 충돌이란 소재를 빌려왔지만 분열된 미국 사회를 풍자하는 영화다. 혜성보다 무서운 것은 위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회를 날리는 것이다.

2018년 12월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개편안을 마련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가운데)이 제4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12월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개편안을 마련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가운데)이 제4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사회에도 ‘혜성’이 다가오고 있다. 얼마 전 한국경제연구원이 ‘현 제도에선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분석에 따르면 국민연금 재정 수지는 2039년 적자로 전환되고 적립금은 2055년 소진된다. 국민연금을 계속 지급하려면 납부 금액을 올려야 하고 미래 세대가 과도한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다. 지금처럼 내는 돈보다 많이 받은 연금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지속하면 국민연금 고갈 시기는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지난 26일 나온 통계청 인구동향을 보자. 지난해 11월 출생아 수는 2만 명을 밑돌았다. 지난해 1~11월 출생아는 24만4016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3.4% 감소했다. 이런 추세면 출생아 수는 2020년 27만 명대에서 지난해 26만 명대로 내려앉을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과 취업난, 집값 폭등으로 당장 출산율을 끌어올리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연금 개혁은 상당한 저항에 직면한다.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 연금 제도를 손봤다. 이 개편으로 2016년부터 보험료율이 14%에서 18%(본인부담 9%)로 올랐다. 당시 불충분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 정도 개편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 4년 동안(2017년 5월~2021년 6월) 늘어난 공무원 수만 11만 명이 넘는다. 공무원연금은 국민연금과 달리 지급할 돈이 모자라면 세금으로 메워줘야 한다. 공무원연금은 1993년부터 적자를 보고 있다. 연금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적자 규모도 계속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물며 전 국민이 대상이 되는 국민연금을 바꾸는 것은 더 어렵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아예 연금 개혁이 실종됐다. 2018년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마련한 보험료율 인상 개편안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청와대는 개편안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후 보건복지부가 네 가지 안을 제시했지만, 정부 단일안을 요구한 야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논의되지도 못했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압도적 다수 의석을 확보했지만 그해 6월 정부는 야당의 단일안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 연금 개혁은 이렇게 물 건너갔다. 당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대선서 주요 어젠다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선이 4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야 유력 후보는 연금 개혁에 대한 말을 아끼고 있다. 연금 개혁이 어젠다가 되기는커녕, 포퓰리즘 공약만 난무하고 있다. 지금 쏟아지는 달콤한 공약은 사실 청년들에게 푼돈을 약속하며 실제론 엄청난 미래의 짐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청년층을 위한다면 연금 개혁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완벽한 연금 개혁이 어렵다면, 최소 고갈 시기를 늦추는 개편이라도 피하지 말고 해야 한다. 연금 개혁을 한다고 해도 당장 청년들에게 큰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연금 개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정치적 합의 시스템이 갖춰진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래야 희망이 생긴다. 기성 세대가 닥쳐올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자녀 세대에 심어줘야 한다.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