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떡볶이, 손예진 떡볶이…대구의 빨간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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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떡볶이는 매워도 너무 맵다. 청양고추로 만든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후춧가루와 카레가루로 매운맛을 더한다. 대구 사람의 ‘맵부심’은 감히 흉내내기도 힘들다. 사진은 동성로 ‘중앙떡볶이’의 조리 장면. 중떡은 그나마 덜 맵다.

대구 떡볶이는 매워도 너무 맵다. 청양고추로 만든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후춧가루와 카레가루로 매운맛을 더한다. 대구 사람의 ‘맵부심’은 감히 흉내내기도 힘들다. 사진은 동성로 ‘중앙떡볶이’의 조리 장면. 중떡은 그나마 덜 맵다.

대구는 떡볶이의 고장이다. 30년 넘은 노포도 여러 곳이고, 700개가 넘는 가맹점을 거느린 떡볶이 회사도 성업 중이다. 얼추 비슷해 보이나 떡볶이집마다 맛과 재료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대구 토박이라면 각자 선호하는 떡볶이집이 따로 있다. 집마다 먹는 방법도 조금씩 다르다.

대구관광재단의 추천을 받아 대구 떡볶이집 4대 천왕을 추렸다. 설 명절을 앞두고 대구 떡볶이 명가를 소개하는 건, 떡볶이만큼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음식도 없어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대구 떡볶이집도 악전고투 중이었다. 배달 손님이 늘었는데, 배달 어플은 잘 안 쓴다는 얘길 들었다.

윤옥연할매떡볶이

‘윤옥연할매떡볶이’의 기본 차림 ‘천천천’.

‘윤옥연할매떡볶이’의 기본 차림 ‘천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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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떡볶이 원조집이다. 윤옥연(82) 할머니가 1974년 옛 신천시장에서 떡볶이 노점상을 연 게 시작이었다. 대구에선 ‘신천할매떡볶이’나 ‘마약떡볶이’로 더 자주 불린다. 옛 신천시장에서 가까운 곳에 본점이 있고, 대구 시내에 가맹점 10여 곳이 있다. 현재 대표는 며느리 변인자(55)씨. 며느리 경력도 25년이다.

윤옥연할매떡볶이에서 대구 떡볶이 기준이 갖춰졌다. 대구 떡볶이의 특징이라면 넉넉한 국물과 강한 매운맛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두 특징이 이 집에서 비롯됐다. 이 집 떡볶이는 매워도 너무 맵다. 그런데도 대구 사람은 양념장 한 숟가락을 더 풀어 먹는다. 대구 사람의 ‘맵부심(매운 걸 잘 먹는 자부심)’이 이 대목에서 분출한다.

윤옥연할매떡볶이의 두 주인공. 시어머니의 떡볶이 경력은 48년이고, 며느리 변인자씨 경력은 25년이다.

윤옥연할매떡볶이의 두 주인공. 시어머니의 떡볶이 경력은 48년이고, 며느리 변인자씨 경력은 25년이다.

이 집 떡볶이는 날카롭게 맵다. 캡사이신의 자극적인 매운맛도 아니고, 고추장의 텁텁한 매운맛도 아니다. 매운 고춧가루와 후춧가루의 찌르는 듯한 매운맛이다. 냄새도 맵다. 맛보기 전에 재채기부터 하는 사람이 여럿이다. 물엿은커녕 설탕도 안 들어가 매콤하거나 달콤하지도 않다. 오로지 맵다.

이 집 단골은 주문할 때 “천천천!”을 외친다. 떡볶이·어묵·만두 세 메뉴 모두 1000원씩이어서 ‘천천천’이다. 아직도 1000원 가격을 유지하는 게 놀랍다. 가맹점 중에선 떡볶이 가격을 올린 곳도 있다. 어묵과 만두는 떡볶이 국물에 적셔 먹는다. 보통 ‘쿨OO’ 같은 유산균 음료(1500원)를 곁들인다.

대표 메뉴: 천천천(떡볶이·어묵·만두 3종 세트), 떡볶이만 주문 안 됨
특징: 후춧가루의 강력한 매운맛. 전국 택배 가능

달고떡볶이

‘달고떡볶이’는 가게에서 손수 피를 빚은 삼각만두가 별미다.

‘달고떡볶이’는 가게에서 손수 피를 빚은 삼각만두가 별미다.

달서구 신내당시장에 있는 떡볶이집이다. 대구에선 흔히 ‘달떡’이라 줄여 부르는데, 시장에 ‘달떡’ 간판을 내건 떡볶이집이 몇 곳 있다. 골목 제일 안쪽의 가게가 원조 달떡이다. 1980년 김점분(91) 할머니가 문을 열었고, 1998년부터 며느리 배미옥(65)씨가 맡고 있다.

달고떡볶이는 ‘달성고 앞 떡볶이’의 준말이다. 가게에서 큰길 건너 달성고가 있다. 학교 건물에서 가게까지 약 400m 거리라는데, 급식이 없던 시절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달성고 학생들이 우르르 달려나와 줄을 섰단다. 지금은 그 시절 허겁지겁 떡볶이를 삼키던 학생들이 자녀를 데리고 와 떡볶이를 먹고 간다.

달고떡볶이 2대 대표 배미옥씨. 한때 달성고 학생들의 주린 배를 채워준 주인공이다.

달고떡볶이 2대 대표 배미옥씨. 한때 달성고 학생들의 주린 배를 채워준 주인공이다.

달떡도 국물 떡볶이다. 거친 고춧가루를 잔뜩 뿌려 매워 보이지만, 4대 천왕으로 꼽은 떡볶이 중에서 국물이 제일 안 매웠다. 설탕과 물엿이 많이 들어가 달짝지근하다. 매운맛은 고춧가루에서 나온다. 후춧가루와 카레가루는 전혀 쓰지 않는다. 배씨는 “국내산 고춧가루만 고집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양념장은 이틀간 숙성해서 쓴단다. 이 집도 밀떡을 쓴다.

이 집 별미는 손수 피를 빚는 만두에 있다. 당면만 들어간 아무 맛 없는 만두로, 납작만두보다 두껍다. 이 삼각형 만두를 튀겨 떡볶이 국물에 푹 적셨다가 먹는다. 흐물흐물하면서도 쫄깃쫄깃한 식감이 재미있다. 달떡(2000원)을 주문하면 떡볶이와 만두 3개가 함께 나온다. ‘양념만두(2000원)’도 있다. 떡볶이 국물에 떡 대신 만두만 들어가 있다. 아주 맵지 않아서인지 유산균 음료는 없다.

대표 메뉴: 달떡(떡볶이+만두)
특징: 순한 매운맛. 만두만 팔기도

궁전떡볶이

옛 신천시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궁전떡볶이’.

옛 신천시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궁전떡볶이’.

수성구 신천시장은 대구 떡볶이의 명당이었다. 윤옥연할매떡볶이도 여기에서 시작했다.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시장은 사라졌지만, 떡볶이의 전통은 남아있다. 할매떡볶이가 떠난 옛 신천시장을 지키고 있는 떡볶이 명가가 궁전떡볶이다. ‘신천궁전떡볶이’라고도 하고, 줄여서 ‘궁떡’이라고도 한다. 사실 대구에서 궁떡은 ‘손예진 떡볶이’로 더 유명하다. 배우 손예진이 학창시절 단골이었단다.

신천시장이 떡볶이로 뜬 건 입지 조건 덕분이다. 옛 신천시장 주변에 학교가 몰려 있다. 대구중앙고, 청구고, 남산고, 대구여고, 정화여고 등 10개가 넘는 학교가 시장과 지척에 있다(손예진이 정화여고 출신이다). 학교가 끝나면 시장 골목이 학생으로 바글바글했고, 학교에서 배달 주문하고 교문에서 받아가는 학생도 많았단다.

궁전떡볶이의 대표 차림. 과일맛 유산균 음료가 꼭 있어야 한다.

궁전떡볶이의 대표 차림. 과일맛 유산균 음료가 꼭 있어야 한다.

궁떡은 1993년 시작했다. 밀떡에 국물 떡볶이다. 튀긴 만두와 어묵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방식이 할매떡볶이와 비슷하다. 맵기도 꽤 매워 유산균 음료가 있어야 한다. 궁떡만의 특징이라면 카레가루다. 카레가루가 아주 많이 들어간다. 카레가루 때문인지 할매떡볶이보다는 매운맛이 덜하다. 할매떡볶이보다 가격도 비싸고 양도 많다.

궁떡은 남매 부부가 이어서 하고 있다. 현재 대표는 남동생의 아내 서영옥(56)씨다. 1000원이었던 떡볶이 값을 올 초 1500원으로 올렸다. 코로나 사태 이후 배달 주문이 늘었다. 배달 앱은 사용하지 않는다. 퀵서비스 배달만 가능하다. 떡볶이값보다 배달비가 더 비싼 주문도 많다.

대표 메뉴: 떡볶이(1500원), 어묵(1500원), 만두(2000원)
특징: 강한 카레 맛. 퀵서비스 배달 가능

중앙떡볶이

중앙떡볶이 대표 메뉴. 쌀떡볶이+만두 세트와 순대.

중앙떡볶이 대표 메뉴. 쌀떡볶이+만두 세트와 순대.

대구 최고 번화가 동성로에 자리한 떡볶이집이다. 옛날 중앙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어서 중앙떡볶이다. 줄여서 ‘중떡’이라 부른다. 학교가 있었던 자리에 지금은 2·28기념중앙공원이 들어서 있다. 국민타자 이승엽도 중떡을 먹고 컸다. 이승엽이 중앙초등학교 출신이다. 중떡의 역사도 40년이 넘는다. 1979년 시작했고, 현재는 아들 박석규(41)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중떡은 두툼한 가래떡으로 만든다.

중떡은 두툼한 가래떡으로 만든다.

중떡은 대구 떡볶이 4대 천왕 중 유일하게 쌀떡을 낸다. 국산 햅쌀로 빚은 가래떡만 쓴다. 아침마다 방앗간에서 떡을 받아오고 그 떡이 다 팔리면 가게를 닫는다. 평일 영업시간은 오후 7시 30분까지인데, 토요일엔 4시 30분쯤 문을 닫는 이유다. 국물 떡볶이라 할 수 있으나 다른 집보다 국물이 자작하다. 다른 집의 떡볶이는 국에 가까운데, 이 집 떡볶이는 국물이 넉넉한 조림 같다.

대표 메뉴가 ‘쌀떡볶이+만두’ 세트다. 어른 엄지손가락보다 두꺼운 가래떡 2개와 납작만두 7개가 떡볶이 국물에 잠겨 나온다. 어묵을 잔뜩 넣고 떡볶이를 만들어 어묵 메뉴가 따로 없다. 물엿과 설탕에 고추장과 카레가루가 들어가 국물이 매콤하고 진득하다. 집에서 먹을 때 밥을 말면 그렇게 맛있단다. ‘중앙떡볶이’라는 이름이 흔해서 가맹점처럼 속이고 영업하는 집이 많은가 보다. 가게 곳곳에 ‘직영점 분점 체인점을 내준 적이 없다’고 써 붙였다.

대표 메뉴: 쌀떡볶이+만두 세트(4000원)
특징: 쌀떡. 퀵서비스 배달 가능

대구 떡볶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대구 떡볶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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