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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인 미만 기업'서 산재 72% 발생하는데…중대재해법 예외·유예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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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5.6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할 때, 법 적용에 예외를 두거나 미뤄서는 안 될 것이다”(26일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성명)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부터 시행된 가운데 사업 및 사업장 규모가 작을 경우 법 적용에서 제외되거나 유예기간이 길어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대부분의 산업재해가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등 영세기업 근로자의 위험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나서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발생현황’ 보니

사업장 규모별 요양재해자·사망자 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사업장 규모별 요양재해자·사망자 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27일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요양재해자 수는 총 6만5744명으로 전체 요양재해자 수(9만789명)의 72.4%를 차지했다. 요양재해자는 업무상 사고 또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부상자와 질병에 걸린 사람을 뜻한다. 세부적으로는 5인 미만이 2만7174명(29.9%), 5~49인이 3만8570명(42.5%)이었다.

사업 규모가 작을수록 사망자 수도 많았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같은 기간 1076명이 사망해 전체 사망자(1635명)의 65.8%를 차지했다. 상시근로자 50~999인 사업장에서 일어난 사망자 수(472명)의 2.3배에 달한다. 근로자 100명당 요양재해자 비율을 뜻하는 ‘요양재해율’은 5인 미만 사업장이 0.87%로 전체 평균(0.47%)의 1.9배였다.

5인 미만 예외, 50인 미만은 2024년부터 

사업장 규모별 사망만인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사업장 규모별 사망만인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상황이 이렇지만 영세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제외되거나 적용이 유예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3조에 따르면 상시근로자가 5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의 경영책임자·사업주는 예외다. 부칙에 따르면 상시 근로자가 50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은 2024년 1월 26일까지 법 적용이 유예된다.

지난해 재개발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지면서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의 경우 하도급 업체 대부분이 50인 미만 기업이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철거·시공 하청을 준 ㈜한솔기업의 경우 직원 수가 11명(2021년 12월 기준)이다. 학동4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조합이 석면 및 지정물 철거 하청을 준 다원이앤씨는 직원 수가 33명이다.

“법 있어도…학동참사·실습생 사망 예외”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날인 27일 정의당 현대산업개발 화정동 아파트 붕괴사고 대책본부가 서구 화정동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을 찾아 ″현재의 법률은 심사를 거치며 허점투성이가 됐다″며 개정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날인 27일 정의당 현대산업개발 화정동 아파트 붕괴사고 대책본부가 서구 화정동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을 찾아 ″현재의 법률은 심사를 거치며 허점투성이가 됐다″며 개정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학동 참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에 일어나 법 적용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계에선 “법이 시행됐더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지적한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 등 10명은 26일 “학동참사나 지난해 10월 여수시 요트선착장에서 발생한 ‘현장실습생 사망’ 등은 법 적용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사업주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며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상시 근로자 5명 미만인 사업장의 경영책임자도 법 적용 범위에 포함하고, 50명 미만 사업장의 ‘3년 유예’ 규정이 삭제되는 등 내용이 담겼다. 또 중대재해 발생 시 안전 및 보건확보 의무를 위반한 사업주의 법정형을 1년에서 3년으로 상향하고, 종사자의 범위에 ‘현장실습을 받는 교육훈련생’을 추가하는 안도 포함됐다.

“법 모호” VS “올해만 하루 1.5명 사망”

지난 2020년 2월 21대 총선 비례대표 경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 [뉴스1]

지난 2020년 2월 21대 총선 비례대표 경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 [뉴스1]

반면 재계는 다른 이유로 지난해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 보완을 요구해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직접 당사자인 하청은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면책돼 간접 당사자인 원청만 처벌된다”고 우려했다. 또 전경련이 71개 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결과 기업은 모호한 법 조항(43.2%), 경영책임자에 대한 과도한 부담(25.7%) 등을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한편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국회 통과 후 1년의 유예기간이 지났지만, 업무상 사고사망자 수는 크게 줄어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25일 기준 업무상 사고사망자 건수는 38명으로 지난해(43명)와 비슷했다. 지난 11일 발생한 광주 화정 아이파크 외벽 붕괴사고 실종자 5명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로 하루 1.52명꼴이다.

이 의원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대부분의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산재예방 지원을 대폭 확대해서 법을 적용해도 무리 없도록 해야 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는데도 위험요인을 방치하는 등 안전조치의무를 다하지 않고 그 이익을 보는 경영책임자에게는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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