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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승격의 그 순간, 서정원은 하늘을 바라봤다

중앙일보

입력

서울 용산가족공원에서 중앙일보 사진 촬영에 인터뷰에 응한 서정원 청두 룽청 감독. 장진영 기자

서울 용산가족공원에서 중앙일보 사진 촬영에 인터뷰에 응한 서정원 청두 룽청 감독. 장진영 기자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승리가 확정됐을 때 서정원(52) 청두 룽청 감독은 먼저 하늘을 쳐다봤다. ‘어머니, 보고 계시죠?’ 마음속 그 한 마디를 전한 뒤에야 비로소 코칭스태프와, 선수들과 뒤엉켜 기쁨을 나눴다.

중국 청두 부임 후 첫 시즌에 1부 승격 #모친상에도 코로나에 발 묶여 귀국 못해 #"힘들 때마다 어머니 생각하며 견뎠다" #"중국 축구, 거품 걷힌 후엔 성장할 것"

서 감독이 이끄는 청두는 지난 12일 다롄 프로와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1-0으로 이겼다. 앞서 치른 1차전(1-1) 전적을 더해 2-1로 승리하며 중국 수퍼리그(1부) 승격을 확정지었다. 청두 사령탑에 오른 후 첫 시즌에 이룬 쾌거였다. 서 감독은 “목표를 이룬 기쁨에 비로소 어머니 앞에서 면목이 서게 됐다는 안도감이 뒤섞였다.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서정원 감독은 중국 진출 1년 만에 2부리그 소속이던 청두를 수퍼리그(1부)에 올려놓았다. 장진영 기자

서정원 감독은 중국 진출 1년 만에 2부리그 소속이던 청두를 수퍼리그(1부)에 올려놓았다. 장진영 기자

27일 서울 용산구 자택 인근에서 만난 서 감독은 “귀국 후 자가 격리를 어제(26일) 마쳤다. 곧장 어머니를 모신 곳(경기도 광주 선영)부터 다녀왔다”면서 “떠나시는 길을 배웅하지 못한 불효자지만…(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 좋은 성과를 내고 돌아온 막내아들을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고 했다.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서 감독은 지난해 8월 사랑하는 어머니(故석춘옥 씨·향년 95세)를 떠나보냈다. 다롄과 원정경기를 치르기 위해 숙소에 도착한 직후,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그는 “눈앞이 흐려지고, 주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북받치는 감정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고 설명했다.

급히 귀국 일정을 알아봤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만류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항공편이 줄어 장례식 기간 내 건너올 방법이 없었다. 중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거쳐야 할 3주간의 자가 격리도 문제였다. “어머니 잘 보내드릴 테니 팀에 전념하라”는 아내(윤효진 씨)의 당부에 서 감독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전화를 끊었다.

서정원 청두 룽청 감독과 모친 故석춘옥 씨. [사진 서정원 감독]

서정원 청두 룽청 감독과 모친 故석춘옥 씨. [사진 서정원 감독]

어머니는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월남해 9남매(7남2녀)를 건강하게 키워낸 여장부였다. 9명의 자녀 중에서도 막내아들을 가장 예뻐했다. 서 감독은 “이따금씩 동대문 시장에 다녀오시면 외제 깡통 분유를 사서 막내인 나만 먹이셨다”면서 “수십 년 전 어머니가 우유를 타주시던 그 컵을 아직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다시금 서 감독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물고 빨며 예뻐하던 막내아들이 축구선수가 돼 바깥 잠을 자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매일 불공을 드리며 건강과 성공을 빌었다. 서 감독은 “지금은 온갖 좋은 영양제가 많이 나왔지만,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된 건 어머니의 그 우유 한 컵이었던 것 같다”면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합숙소 생활을 하느라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게 아쉽고 죄송하다”고 했다.

청두의 1부리그 승격을 이끈 서정원 감독을 선수들이 헹가래치고 있다. [사진 청두 룽청 홈페이지]

청두의 1부리그 승격을 이끈 서정원 감독을 선수들이 헹가래치고 있다. [사진 청두 룽청 홈페이지]

팀 성적과 경기력 문제로 힘들 때, 서 감독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참고 견뎠다. 다행히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프런트까지 한 마음이 돼 서 감독을 도왔다. 모친상을 당한 직후 치른 경기에서 선수들은 물론, 구단 프런트까지 모두 검은 리본을 달고 경기장에 나섰다. 시나스포츠 등 중국 언론도 "진정한 프로페셔널리즘이 뭔지 보여줬다"며 서 감독의 결정을 칭찬했다.

서 감독에 대해 모기업은 파격적인 지원으로 힘을 실어줬다. 의료기기부터 훈련 장비까지 서 감독이 요청하면 뭐든 ‘OK’ 사인을 냈다. 현재 건설 중인 새 클럽하우스는 17면의 축구장을 갖춘 매머드급 규모다. 벌써부터 중국축구협회가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로 탐을 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 감독은 “1부리그 빅 클럽의 러브콜을 마다하고 청두의 손을 잡은 건 ‘중장기 계획을 세워 중국 축구를 선도하는 구단을 만든다’는 비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면서 “1부리그 승격으로 우리가 그린 큰 그림의 중요한 퍼즐을 맞춘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서정원 감독은 중국에서 또 하나의 '축구 한류' 사례로 주목 받고 있다. 장진영 기자

서정원 감독은 중국에서 또 하나의 '축구 한류' 사례로 주목 받고 있다. 장진영 기자

서 감독은 1부 승격을 이룬 뒤 연고지 청두로 돌아와 느낀 뜨거운 환영 열기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공항 입국장을 가득 메운 수백 명의 축구팬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구단주(싱청그룹 회장)가 직접 나와 꼬옥 안아줬다”면서 “‘축구팀의 1부리그 승격은 우리 그룹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감독님 덕분에 목표를 조기 달성했다’고 말하는 구단주의 태도와 표정에서 축구에 대한 진심을 느꼈다”고 했다.

서 감독은 “최근 들어 중국 축구가 허리띠를 졸라 매며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잠재력이 매우 큰 시장”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거품을 확 걷어내면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실력과 열정, 목표의식에서 모두 아시아 최고로 평가 받는 한국인 지도자와 선수들이 다시금 중국 축구 시장에서 각광 받는 시기가 돌아올 걸로 본다”고 전망했다.

1994 미국월드컵 당시 스페인전에서 기적 같은 동점골을 터뜨린 후 환호하는 서정원. 중앙포토

1994 미국월드컵 당시 스페인전에서 기적 같은 동점골을 터뜨린 후 환호하는 서정원. 중앙포토

◇서정원 감독은…
출생 – 1970년 12월17일 경기도 광주
체격 – 1m73㎝·67㎏
소속팀 – 청두 룽청(중국)
출신교 – 남한산초-연초중-거제고-고려대
선수 이력 – 월드컵 3회 출전(1990·94·98), A매치 88경기(16골)
소속팀 – 안양 LG·스트라스부르(프랑스)·수원 삼성·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리트(오스트리아)
지도자 이력 – 수원 삼성·청두 룽청(중국)

한국축구와 수원을 거쳐 이제는 청두의 푸른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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