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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처법 시행 첫날, 재계 초긴장 “처벌 공포...과잉수사 안 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4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접근 금지를 알리는 인형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접근 금지를 알리는 인형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오늘부터 설 연휴까지 경비원 말고는 아무도 출근하지 않습니다. 대형 크레인은 당연히 가동을 중단합니다. 아예 문 닫는 거라 보면 됩니다.”

27일 한 건설사 직원 이모씨의 말이다. 이처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첫날인 이날, 전국 곳곳엔 잠시 멈춘 건설·제조업 현장이 많았다. ‘중처법 적용 대상 1호’가 되는 것을 피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중처법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고,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물린다. 법인에는 50억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대우건설은 이날부터 설 연휴까지 공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현대건설은 이날 정리정돈을 위한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는 쉬도록 했다. 포스코건설도 사업장에 27일부터 이틀간 휴무를 권장하는 지침을 보냈다.

중대재해처벌법 주요 내용 그래픽 이미지.

중대재해처벌법 주요 내용 그래픽 이미지.

현대차, 협력업체 안전관리비 2배로

일부 기업은 협력업체 안전관리 강화 방침도 내놓았다. 도급·용역·위탁 등 계약 형식과 관계없이 대가(임금)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면 중처법이 적용되는 것을 염두에 둔 조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날 건설·철강 분야 협력업체의 안전 관리 강화를 위해 인건비, 시설과 장비 확충, 안전 점검과 교육 비용으로 870억원을 집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2021년 집행 비용(450억원)의 두 배에 가깝다. 현대차 측은 “중소 협력업체의 안전관리 관련 경영 부담을 완화하고, 안전한 근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올해부터 공사금액 100억원 이상 협력업체의 안전관리자 선임 인건비를 추가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동식 CCTV 설치를 늘려 건설 현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도 강화한다. 현대제철은 작업자들을 위한 웨어러블 카메라, 휴대용 감지 경보장치 등을 도입하기로 했다.

26일 서울 동대문구 건설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건설용 승강기에 탑승해 상승부로 향하고 있다. 이 공사장은 27일부터 건설 작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26일 서울 동대문구 건설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건설용 승강기에 탑승해 상승부로 향하고 있다. 이 공사장은 27일부터 건설 작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요 경제단체는 이날 중처법에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 입장에서는 무엇을, 어느 정도 이행해야 법 준수로 인정되는지 알기 어려운 혼란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만연한 중대 재해를 근절하기 위해 기업의 안전 관리 역량이 강화될 필요가 있음은 경영계도 적극 공감한다”면서 “그러나 과도한 처벌 수준과 법률 규정의 불명확성으로 의무 준수를 위해 큰 노력을 하는 기업조차도 처벌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법률의 불명확성을 해소하기보다 중대 재해 발생 기업에 대한 엄정 수사 기조만을 강조하고 있다”며 “경영계는 심각한 경영 차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앞둔 현장 기업인들 말말말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앞둔 현장 기업인들 말말말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재계 “과잉 수사, 과잉 처벌 안 돼”

경총은 또 “산재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경영자에게만 묻는 중처법의 문제점이 합리적으로 개정되는 입법 보완이 하루 속히 이뤄지기를 촉구한다”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사 범위는 사고 원인과 직접 관계되는 의무 사항으로 한정해 신속히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법 시행 과정에서 경영자에게 명백한 고의 과실이 없는 한 과잉 수사, 과잉 처벌이 이뤄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 제도 개선을 논의해야 한다”며 “선진국처럼 사후 처벌보다 사전 예방 위주로 안전 보건 체계를 확립해 기업 경영 위축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7일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에 따른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고 김용균 씨의 어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중처법은 2018년 12월 태안 한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김용균씨 사고를 계기로 사망산재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제정됐다. [연합뉴스]

27일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에 따른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고 김용균 씨의 어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중처법은 2018년 12월 태안 한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김용균씨 사고를 계기로 사망산재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제정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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