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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군용 헬멧 지원"에 떨떠름한 우크라이나 “다음엔 베개냐”

중앙일보

입력

“우크라이나에 군용 헬멧 5000개를 지원하겠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서방 세계가 일치단결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온 독일이 26일(현지시간) 밝힌 지원책이다. 우크라이나 정규군은 현역 25만5000명, 예비군을 포함하면 115만5000명이다. 무기도 아닌 헬멧 지원인데 그 수가 턱없이 적다. 당장 우크라이나 측에서 “다음엔 베개라도 선물할 것이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독일의 사회민주당 연정 정부의 신임 총리 올라프 숄츠(왼쪽). 지난해 12월 취임했다. [EPA=연합뉴스]

독일의 사회민주당 연정 정부의 신임 총리 올라프 숄츠(왼쪽). 지난해 12월 취임했다. [EPA=연합뉴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크리스티네 람브레히트 독일 국방장관은 군용보호헬멧 5000개 지원 방안을 밝히면서 “이는 독일이 우크라이나의 편이라는 뚜렷한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독일 정부는 위기 지역에 살상 무기를 보내 상황을 악화시키기보단, 다른 방식을 택하고 싶다”며 “우리는 야전병원도 지원할 것이고, 평화적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독일 정부의 이번 발표는 우크라이나를 둔 러시아와 서방 간의 갈등이 일촉즉발로 격화하는 상황에서 독일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 속에서 나온 것이다. 독일은 앞서 에스토니아가 자국에 배치된 구동독산 곡사포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 위해 요청한 동의 절차도 밟지 않고 있다.

유럽-러시아 간 가스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유럽-러시아 간 가스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우크라이나 측은 달갑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비탈리 글리츠코 키예프 시장은 독일 빌트지와 인터뷰에서 “독일 정부의 발표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며 “독일은 우리가 완벽한 장비를 갖추고 언제든지 침공할 수 있는 러시아군과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다음에는 베개라도 지원하겠다는 말인가”라고 반발했다.

안드리 멜리니크 주독일 우크라이나 대사도 “독일의 상징적인 지원 발표는 환영하지만, 헬멧은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방어용 무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독일의 이번 발표는 독일 정부의 태도에 대한 유럽 각국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한 공원에서 정부군과 의용군이 러시아군 침공에 대비해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최근 우크라이나를 3면에서 포위한 형태로 병력과 장비를 집결시켜 양국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AP=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한 공원에서 정부군과 의용군이 러시아군 침공에 대비해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최근 우크라이나를 3면에서 포위한 형태로 병력과 장비를 집결시켜 양국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AP=연합뉴스]

SNS에선 과거 독일 정부가 사이클링 헬멧 착용을 권고한 포스터 사진 등을 공유하는 밈(Meme)이 유행하는 등 풍자가 이어지고 있다.

대러시아 전선에서 주춤거리는 독일 정부의 행보 저변엔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에너지 체계 문제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유로스타트 통계에 따르면 독일은 자국 가스 수요의 50% 이상을 러시아에서 조달하고 있으며, 선박을 통해 액화천연가스(LNG)를 들여오는 설비도 부족한 상황이다. 올해까지 국내에 남은 3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고, 오는 2038년까진 석탄 발전도 중단할 계획이다. 마르쿠스 크레버 독일 에너지공급업체 RWE 이사회 의장은 “러시아에서 천연가스 공급이 완전히 끊긴다면 독일은 수주일 등 짧은 시간 동안만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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