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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투리 안써유~" 당구 캄보디아댁 피아비, 옷 잘 안사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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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설을 앞두고 서울 경복궁 인근 스튜디오에서 한복을 입은 당구 캄보디아댁 스롱 피아비. 2010년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피아비는 당구로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사진 PBA]

설을 앞두고 서울 경복궁 인근 스튜디오에서 한복을 입은 당구 캄보디아댁 스롱 피아비. 2010년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피아비는 당구로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사진 PBA]

“캄보디아에도 명절인 ‘쫄츠남’이 있고, 전통 의상 ‘아우 빡’을 입어요. 한국의 설날을 앞두고 한복을 입어봤는데 어때요? 피부 톤을 생각해서 분홍색을 골라봤는데.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공주님 같지 않나요?”

25일 서울 경복궁 인근 스튜디오에서 한복을 입은 ‘당구 캄보디아댁’ 스롱 피아비(32)가 웃으며 말했다. 충북 청주 집에서 운전해서 3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피아비는 “캄보디아는 오토바이가 많이 다니고 신호가 없는 편이라, 한국이 운전하기 더 편해요. 저 한국에서 운전 경력 10년 차에요. 청주에서 서울은 금방이죠”라며 웃었다.

피아비는 카페 메뉴판을 또박또박 읽고 ‘레몬생강차’를 주문하며 “캄보디아 사람들도 생강을 많이 먹어요”라고 했다. 이후 곰탕집에서 갈비탕을 시키며 “전 가리지 않고 뭐든 잘 먹어요. 청국장도 좋아해요”라고 했다.

2018년 피아비를 처음 만났을 땐 한국어가 어눌한 편이었는데, 4년 사이에 많이 늘었다. 피아비는 “처음에 한글이 꽃게 다리처럼 생겨서 배우기 어려웠거든요. 문법이 어렵긴 하지만, 지금은 쓸 줄도 알아요. 당구장에서 아저씨들과 대화하며 늘었어요”라며 “남편이 ‘그래유~ 알았어유~’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데, 전 사투리 안 써유~”라며 웃었다.

설을 앞두고 서울 경복궁 인근 스튜디오에서 한복을 입은 당구 캄보디아댁 스롱 피아비.[사진 PBA]

설을 앞두고 서울 경복궁 인근 스튜디오에서 한복을 입은 당구 캄보디아댁 스롱 피아비.[사진 PBA]

최근 프로당구 PBA 팀 리그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26일 예정됐던 LPBA 6차 투어가 연기됐다. 설날을 대회장 대신 청주 집에서 보내게 된 피아비는 “한국에 와서 제사를 지냈고, 큰 형님이 음식 만드는 걸 도왔죠. 캄보디아에 살 때 농장에서 야채를 따서 음식 만들었어요. (살림을) 아끼는 걸 좋아하거든요. 소고기국 ‘썸러 므 쭈국’을 잘 만드는데, 맛은 한국 내장탕과 비슷해요”라고 했다. 이어 “한국에서 시어머니가 좀 무섭다고 들었는데 저한테 정말 잘해주셨어요. 용돈도 40만원씩 주시고. 그런데 시어머니가 몸이 약해지셔서 2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라고 했다.

캄보디아 캄퐁참 출신인 피아비는 아버지의 감자 농사를 돕다가 2010년 국제 결혼으로 한국에 왔다. 이듬해 남편 김만식(61) 씨를 따라간 당구장에서 처음 큐를 잡았는데, 그날 남편이 사준 3만원짜리 큐로 인생을 바꿨다. 2018년 세계여자스리쿠션선수권 3위에 오른 피아비는 작년에 프로로 전향해 LPBA를 평정하고 있다.

올 시즌 상금 랭킹 1위(5925만원), 포인트 1위(68300점)고, 유일한 2회 우승자다. 작년 6월 ‘블루원 리조트 챔피언십’을 제패했고, 지난달 ‘에버콜라겐 챔피언십’ 결승에서는 세트스코어 1-3으로 뒤지다가 4-3 역전 우승을 거뒀다. 피아비는 “경기가 잘 안 풀려서 도중에 화장실에 가서 울었어요. 눈이 빨개졌죠. ‘난 강한 스트롱 피아비다. 인생 역전 경험도 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혼잣말을 했어요”라고 했다.

지난달 LPBA 두번째 우승을 차지한 스롱 피아비. [사진 PBA]

지난달 LPBA 두번째 우승을 차지한 스롱 피아비. [사진 PBA]

피아비가 가세한 블루원리조트는 팀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프로당구는 세트제, 뱅크샷 2점제, 서바이벌 등 규정이 다른데도, 워낙 연습량이 많은 피아비는 빠르게 적응했다. 피아비는 “공 무게도 틀려서 처음에 많이 어려웠어요. 2점짜리를 성공하기 위해 이쪽저쪽 길을 찾고 있어요. 원래 샷을 강하게 쳤었는데, 요즘 힘을 빼고 가볍게 쳐요. 근데 당구에서 ‘천천히’가 더 어렵네요”라고 말했다.

피아비는 2년 전 청주에 ‘피아비큐 당구클럽’을 열었다. 피아비는 “부산, 광주 등 멀리 멀리에서 찾아오세요. 너무 감동이고, 더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삼촌들과 셀카도 찍어드려요. (거리 두기로) 당구장은 오후 9시면 닫아요. 10시부터 새벽 3~4시까지 혼자 훈련해요. 한동안 일정이 많았는데, 처음 마음(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라고 했다.

다문화 당구 아카데미에 참석한 스롱 피아비(왼쪽)와 남편 김만식씨가 손 하트를 만들었다. 박린 기자

다문화 당구 아카데미에 참석한 스롱 피아비(왼쪽)와 남편 김만식씨가 손 하트를 만들었다. 박린 기자

남편 김만식씨는 중앙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캄보디아에서는 나이 차이에 크게 비중을 안 두는데, (한국에서는) 안 좋게 보는 분들도 있으세요. 언젠가 제가 먼저 죽을텐데, 피아비가 아이를 혼자 키워가며 선수 생활을 하는 건 무리에요. 그래서 아이를 가지면 안돼요. 만약에 제가 내일 죽는다면 피아비에게 그동안 고된 훈련을 독촉한 걸 사과하고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피아비는 “남편의 잔소리가 심해 마음이 조금 안 좋을 때도 있어요. ‘외국 사람이니까 한국 사람보다 더 잘해야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진짜로 한국 사람들은 하나를 끝까지 파면 정말 잘하잖아요. 저도 다문화가정 아내들에게 당구를 가르치는데 남편처럼 잔소리를 하고 있더라고요(웃음)”라고 했다. 이어 “전 남편을 믿어요. 옆에서 잘해줘요. 프로 전향 전에, 대회 출전비가 30만원~40만원씩 드는데 지원해줬어요. 남편이 벌써 62살일 거에요. 시간이 빨리 가면 걱정이 되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아직 캄보디아 국적인 피아비는 “엄마가 아프세요. 어지러워하시는데, 캄보디아 병원에서는 정확한 진단을 못 내려요. 한국에 모셔와서 치료해드리고 싶은데, 한국에서 아이를 낳으면 어머니를 데려오기 수월한데. 4월에 엄마를 보러 캄보디아를 다녀올 생각이에요”라고 했다.

캄보디아에서 당구는 도박처럼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았지만, 피아비 덕분에 당구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고 있다. 피아비는 캄보디아에서는 유명 인사다. 무더운 캄보디아에서는 한국 자양강장제 박카스를 즐겨 먹는데, 동아제약이 피아비를 후원한다. 피아비는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의 캄보디아 국빈방문 행사에도 참석했다. 피아비는 “훈센 캄보디아 총리가 저한테 ‘너무 고맙다. 나도 옛날에 캄퐁참에 잠깐 살았다’고 말해줬어요. 총리 아들도 소셜미디어로 ‘축하하고, 캄보디아에 오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어요”라고 했다.

캄퐁참 부모님집 앞에서 포즈를 취한 피아비. [사진 피아비]

캄퐁참 부모님집 앞에서 포즈를 취한 피아비. [사진 피아비]

피아비는 “캄퐁참에 부모님이 지내는 나무집에 물이 새는 곳이 있어요. 닭 파는 아저씨가 엄마한테 ‘여기 피아비 집 맞아요? 집이 왜 이래?’라고 했대요. 사실 전 옷도 잘 안 사요. 한국 돈 만원은 캄보디아에서 하루 종일 일해야 벌 수 있는 큰 돈이에요”라고 했다.

피아비의 청주 집에는 ‘나는 이들을 위해 살 것이다’라는 한글 문구와 캄보디아 아이들 사진이 걸려있다. 피아비는 기회가 될 때마다 마스크, 구충제, 학용품을 사 캄보디아에 보낸다. 2020년 12월에 캄보디아 가난한 아이들을 찾아가 나눠줬다. 아이들 앞에서 마이클 잭슨 춤 공연도 했다.

2020년 캄보디아를 찾아 아이들을 만난 피아비. [사진 피아비]

2020년 캄보디아를 찾아 아이들을 만난 피아비. [사진 피아비]

피아비가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나눠줬다. [사진 피아비]

피아비가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나눠줬다. [사진 피아비]

2020년 캄보디아를 찾아 아이들을 만난 피아비. [사진 피아비]

2020년 캄보디아를 찾아 아이들을 만난 피아비. [사진 피아비]

피아비는 “(피겨) 김연아 선수를 좋아해서, 저도 따라서 기부를 많이 하려고 해요. 제가 이만큼 기부하면, 같은 크기로 함께 기부해주는 한국 분들도 있어요. 캄보디아에 치료비를 안 받는 병원이 있는데 그곳에 기부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이어 “적어도 제게는 한국은 뭐든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는 나라에요. 저도 원래 꿈은 의사였지만, 캄보디아에서는 가난 탓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캄보디아에 작은 학교를 세우고 싶어요. 다른 사람을 돕는 건 참 행복한 일이에요. 바다에 가면 파도가 밀려오잖아요. 그런 벅찬 기분이에요”라고 했다.

피아비는 마지막으로 “릭리에 츠남 트메이”라고 했다. 그는 “캄보디아어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의미에요”라며 웃었다.


스롱 피아비는 …
출생: 1990년(캄보디아 캄퐁참)
가족: 한국인 남편 김만식 씨(2010년 결혼해 청주 거주)
당구 입문 계기: 2011년 남편 따라 당구장 놀러갔다가 (2016년 엘리트 등록)
종목: 스리쿠션(주특기는 빗겨치기)
주요성적: 2018 아시아 여자스리쿠션선수권 우승
2018, 2019 세계여자스리쿠션선수권 3위
2021~22시즌 LPBA 2회 우승
별명: 캄보디아 댁, 캄보디아 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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