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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쌀먹’의 시대 흔들리나…P2E 게임에 닥친 2가지 위기

중앙일보

입력

위메이드의 미르4는 대표적인 P2E 게임이다. 지난해 10월 동시접속자 100만명을 넘기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위메이드]

위메이드의 미르4는 대표적인 P2E 게임이다. 지난해 10월 동시접속자 100만명을 넘기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위메이드]

‘쌀먹의 시대’에 브레이크가 걸린걸까. 게임의 미래로 주목받던 ‘플레이 투 언’(P2E·Play to Earn) 모델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쌀먹’은 게임 이용자가 게임에서 얻은 아이템을 팔아 그 돈으로 쌀 사 먹는다, 즉 게임으로 돈 번다는 뜻의 게임 은어다.

무슨 일이야

P2E는 이용자가 게임하는 데 쓴 시간과 노력을 ‘토큰’이라는 가상화폐로 보상해주는 블록체인 게임 경제 시스템. 하지만 올해 들어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성장세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 국내용 P2E 게임, 중지 : 서울행정법원(8부·12부)는 지난 14일 게임사 나트리스가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를 상대로 '게임 등급분류 취소 결정을 1심 판결 선고 전까지 집행 정지해달라'고 낸 신청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트리스는 ‘무한돌파 삼국지 리버스’(이하 무돌) 개발사. 무돌은 이용자가 임무를 수행하면 가상화폐 ‘무돌코인’을 지급하는 게임이다. 신청이 기각된 후 나트리스는 공식 카페에 “1심 판결 전까지 게임을 서비스하지 못 하게 됐다”며 “무돌코인 콘텐트가 제외된 게임 버전으로 이용해 달라”고 공지했다.
● 상장사 위메이드의 코인 매도 : 미르4 개발사 위메이드는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자체 발행한 가상화폐 ‘위믹스’를 대량 매도한 사실이 투자자들에게 알려지면서다. 투자자들이 추정하는 매도 코인 규모는 5000만개(위메이드는 추후 공개 예정). 투자자들은 회사 측 대량 매도로 위믹스의 시세가 떨어진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위믹스당 2만 9000원대까지 올랐던 위믹스는 최근 6000원대 안팎을 오가고 있다.
이에 대해 위메이드는 위믹스 플랫폼 활성화에 쓸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부 코인을 매각했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해외 시장에 위믹스 일부를 장기간 분산 매도한 것은 맞다”며 "위믹스를 플랫폼 활성화 및 블록체인 게임 육성에 쓸 수 있다는 위믹스 정책(백서)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한돌파 삼국지 리버스 게임 장면. [사진 게임 내 캡처]

무한돌파 삼국지 리버스 게임 장면. [사진 게임 내 캡처]

이게 왜 중요해

P2E는 지난해부터 게임산업의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았다. 컴투스, 카카오게임즈 등 중견 게임사들이 P2E형 게임에 대한 새로운 구상들을 쏟아냈다. 주가도 고공 질주했다.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게임 대기업들도 블록체인과 NFT(대체불가능토큰)를 결합한 큰 틀의 P2E 사업 구상을 밝히고 나면 주가가 급등했다. 스카이피플, 나트리스 등은 현행법상 P2E 방식에 불법 소지가 있는데도 관련 게임을 국내에 출시했다. 연초부터 잇따른 논란은 P2E 모델의 확산에 변곡점이 될 전망. 국내 대형 게임사 고위 관계자는 “그간 장밋빛 전망만 나왔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진지한 검증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P2E에 주어진 2가지 질문

스카이피플이 개발한 파이브스타즈 포 클레이튼 캐릭터. [사진 스카이피플]

스카이피플이 개발한 파이브스타즈 포 클레이튼 캐릭터. [사진 스카이피플]

① 법 문제, 국내에선 가능해?

스카이피플이 개발한 ‘파이브스타즈 포 클레이튼’은 지난해 4월 P2E 기능을 넣어 국내에 출시됐다. 게임 속 아이템 일부를 NFT로 만들어 글로벌 NFT 거래소 오픈씨(OpenSea) 등에서 팔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게임위는 사행성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 게임의 등급분류를 취소했다. 이에 회사 측은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지난해 6월 등급분류 취소 처분의 효력을 정지하고 스카이피플 손을 들어줬다. 회사는 현재 게임을 서비스하면서 본안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스카이피플 관계자는 “새로운 기술을 접목해 재출시한 게임인데 등급이 취소 돼 당시 어려움이 컸다”며 “소송에 대응하면서 글로벌 출시 등 다양한 대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행정법원은 유사한 건인 나트리스의 무돌의 집행정지 신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P2E 기능을 뺀 버전인 무돌L 등 대체재 유무가 차이를 갈랐다. 서울행정법원 8부와 12부는 결정문에서 “해당 처분으로 인한 손해의 내용과 정도, 나트리스가 문제 기능을 삭제한 유사한 게임을 현재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감안하면 처분의 집행을 정지해야할 정도로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게임업계에선 이번 법원 결정으로 국내 P2E 서비스가 사실상 막혔다고 보고 있다. 게임위는 무돌 이후 추가로 2개 P2E게임에 대해서도 등급분류 결정을 취소했다. 또 구글 등 게임 앱의 등급을 자체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업자들에 공문을 보내 P2E게임 유통에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게임위 관계자는 “향후 면밀하게 검토해봐야겠지만 현재 나온 P2E 게임은 사행성 문제가 있어 등급을 부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임 아이템과 캐릭터 NFT가 거래되는 미르4 XDRACO 홈페이지. [사진 위메이드]

게임 아이템과 캐릭터 NFT가 거래되는 미르4 XDRACO 홈페이지. [사진 위메이드]

② 신뢰 문제, 믿어도 돼?

P2E 게임 대부분은 국내를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유통된다. 하지만 선두주자 위메이드가 자체 발행 코인을 대량 매도해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 코인의 가치를 결정하는 변수는 ‘희소성’과 사용처의 ‘다양성’. 위메이드는 총 10억개의 위믹스 발행 물량 중 74%를 위믹스 성장 지원을 위해 쓴다고 백서에 기재해놨다. 이번에 드러난 위믹스 대량 매도도 장기적으로 위믹스가 통하는 사용처를 늘려 생태계 전반을 육성하기 위한 투자라는 게 회사 측 해명.

반면 위믹스 시세 하락으로 손해 본 투자자 해석은 정반대다. 희소성을 해쳐 위믹스 가격을 떨어뜨리는 행위라는 것. 또 백서에 기재했다고 해도 대규모 물량을 시장에 풀면서 명시적으로 이를 알리지 않았던 터라 비판의 강도가 크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이 한국은행처럼 발권력을 가지게 된 상황. 기업이 자금이 필요하면 유상 증자를 하는 대신 자체 코인을 발행해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다는 점을 위메이드가 실제로 보여줬다. 현재 위메이드는 위믹스 전체 물량 중 83%를 가지고 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백서에 기재했다고 하지만 명확하게 매도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경영진과 코인 투자자 간 정보 격차에 의해 손해가 발생했다”며 “가상자산 관련 공시 의무 등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지만 코인 투자자 입장에선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메이드는 논란이 커지자 2가지 대책을 내놨다. 첫번째는 위믹스 소각이다. 주식회사가 자사주를 소각해 주식 가치를 보전하듯이 위메이드가 코인을 소각해 코인의 가치를 유지하겠다는 방안이다. 또 회사가 보유한 위믹스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보여 줄 ‘위믹스 가계부’도 조만간 공개할 계획이다. 위메이드 관계자는 “코인 투자자들과 더 투명하게 소통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메이드는 지난해 말 미르4에 캐릭터 NFT(Non-Fungible Token)를 정식 도입했다. 이용자들이 자신이 키운 게임 캐릭터의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사진 위메이드]

위메이드는 지난해 말 미르4에 캐릭터 NFT(Non-Fungible Token)를 정식 도입했다. 이용자들이 자신이 키운 게임 캐릭터의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사진 위메이드]

앞으로는?

전문가들은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선 ‘규제 공백’ 상태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식시장처럼 공시 등을 통해 투자자와 기업 간 정보 격차를 줄이는 여러 제도를 도입할 수 있게 제도권에 안착시켜야 한다는 의미. 조정희 법무법인 디코드 대표변호사는 “현행법상 코인 발행회사에 대해선 가이드라인이 없고 공시할 의무도 없다”며 “국회에 계류 중인 가상자산업권법 등을 제정해 필요한 제도를 만들어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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