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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통公, 중대재해 급한데 최악적자…18조 곳간에 쏠린 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7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과거 ‘구의역 김군’ 사고가 발생한 서울교통공사의 만성 적자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재정적자가 자칫 인력 확충 등 안전 투자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서울교통公, 중대재해 예방에 4914억 투입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사망한 '구의역 김군' 5주기인 지난해 5월 28일 오전 서울 광진구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김군을 추모하는 글이 적힌 메모지가 붙여져 있다. 김경록 기자.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사망한 '구의역 김군' 5주기인 지난해 5월 28일 오전 서울 광진구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김군을 추모하는 글이 적힌 메모지가 붙여져 있다. 김경록 기자.

26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공사는 최근 ‘중대산업재해‧중대시민재해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노후 전동차 교체 및 시설 개선에 총 4914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또 산업안전처에 중대재해팀을 신설하고 지난 8월부터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한 ‘중대재해 예방추진단’도 운영을 시작했다. 질식·추락·끼임·접촉·감전 등을 예방하기 위해 밀폐공간, 승강장 안전문, 고소공사장 등도 주기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이 같은 조치는 그간 공사가 관리하는 수도권 전철역에선 중대재해가 잇따른 탓이다. 지난해 9월 지하철 6호선 공덕역~효창공원앞역 구간에서는 환풍구에서 집진기를 설치하던 20대 노동자가 추락사했다. 지난해 3월엔 7호선 상동역에서 불이 나 50대 남성이 장애인 화장실에서 이산화탄소에 중독돼 숨지기도 했다. 2016년엔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던 외주업체 직원이 전동열차에 치여 숨졌다.

공사, ‘1조7000억’ 역대 최대 적자 전망 

서울교통공사 당기순손실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서울교통공사 당기순손실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공사가 안전투자를 늘리기로 했지만 수년간 누적된 적자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올해 중순 발표되는 지난해 공사의 당기순손실은 1조7000억 원대로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5년부터 6년째 전철 요금이 동결된 데다 고령화로 인해 65세 이상 무임승차자가 증가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2020년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승객 감소에 당기순손실이 1조1137억 원으로 크게 뛰었다.

서울시 안팎에선 “산업재해를 예방하려면 결국 안전관리, 점검 등 인력·시설 투자가 핵심인데 적자가 발목을 잡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9월 공사가 적자해소를 목적으로 인력 구조조정 카드를 내놨을 때도 같은 비판이 나왔다. 당시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은 “재정위기는 인력감축, 안전관리 외주화, 교통복지 축소라는 극약처방이 아닌 사회 공공의 책임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교특회계 ‘곳간’ 열어야” 지자체 목소리

교통시설특별회계 공공자금관리기금 예탁 규모.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교통시설특별회계 공공자금관리기금 예탁 규모.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 때문에 “매년 수조 원이 남는 중앙정부의 교통시설특별회계(교특회계)를 무임수송 손실보전 재원으로 활용해달라”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목소리가 힘을 받을지도 관심사다. 주요 지자체는 매년 수 조원이 남는 중앙정부의 ‘교특회계’를 적자 해소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답보상태다.

지난해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 등 6개 특·광역시(전국 도시철도 운영 지자체 협의회)는 “도시철도 무임수송은 노인, 장애인, 유공자의 보편적 이동권 보장을 위해 1984년 대통령 지시로 시작됐다”며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해야 한다”는 건의문을 냈다.

전국 도시철도 운영 지자체 협의회는 지난해 11월 정부에 무임수송 비용 보전을 위한 건의문을 냈다. [서울시]

전국 도시철도 운영 지자체 협의회는 지난해 11월 정부에 무임수송 비용 보전을 위한 건의문을 냈다. [서울시]

2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2020회계연도 결산 위원회별 분석’을 보면 국토교통부가 2017년부터 공공자금관리기금에 예탁하고 있는 교특회계 여유재원은 약 17조9449억 원(2021년 1회 추경 기준)이다. 교특회계는 휘발유·경유 등에 매겨지는 ‘교통·에너지·환경세’의 일부를 재원으로 하는데 전입 비율을 80→73→68%로 계속 줄였는데도 지난해 5조 원 이상의 여유재원이 발생했다.

여유재원이 쌓였지만 교특회계에서 ‘철도계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법정 기준 이하로 떨어진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교특회계는 도로계정 43~49%, 철도계정 30~36%, 교통체계관리계정 0~10% 등으로 나눠써야 하는데 여유재원이 도로계정에 계상되면서 도로계정이 차지하는 비율이 59.4~66.8%로 4년 연속 기준을 초과했다. 반대로 철도계정은 19.5~25.5%로 법정 배분비율을 밑돌았다.

법 기준 벗어난 ‘교특회계’ 재원배분.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법 기준 벗어난 ‘교특회계’ 재원배분.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정부, 교통 운영비 상승 방치해선 안 돼”

정부가 교특회계를 서울시에 전혀 지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국토부의 2022년도 예산안을 보면 서울시 도시철도 노후시설·노후차량 개선에 각각 534억 원과 912억 원을 투입한다. 서울교통공사가 ‘중대재해 제로’를 위해 내놓은 주요 내용이 노후시설·차량 개선에 편중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부 교수는 “건설은 정부가 지원하되, 운영은 지자체 책임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기획재정부의 입장인데 만들어만 놓고 방치하는 식”이라며 “고령화로 인한 무임수송 부담에 안전 투자까지 운영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인 만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계기로 지방교통공사의 재정운영 방식을 재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11월 9일 서울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시민들이 개찰구를 통과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지난 2017년 11월 9일 서울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시민들이 개찰구를 통과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한 수도권 지자체 고위관계자는 “운임 조정, 교특회계 지출 등 정치·행정적 이유로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유 교수는 “사물 인터넷(IoT)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건비를 안전감시장비, 센서 등으로 돌리는 등 구조조정을 할 여력도 생겼다”며 “공사의 자구 노력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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