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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채찍만으로는 중대재해 못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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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사흘 앞둔 지난 24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한양건설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접근 금지를 알리는 인형이 설치돼 있다. 한양건설 관계자는 ″안전 관리 체계와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사흘 앞둔 지난 24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한양건설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접근 금지를 알리는 인형이 설치돼 있다. 한양건설 관계자는 ″안전 관리 체계와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외벽이 찢겨 나간 광주광역시 화정동 HDC현대산업개발 아파트 공사 현장은 ‘산재 공화국’의 생생한 현장이다. 이런 사고가 발생할지 누가 알았겠나. 정몽규 회장이 사퇴하고 완전 철거까지 고려한다고 했는데 현대산업개발의 책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앞서 지난해 광주시 학동 건물 해체 붕괴사고로 최대 8개월 영업정지에 이어 최대 1년이 추가될 수 있다고 한다. 사태를 수습하고 천신만고 끝에 건설사업을 계속하게 되더라도 현대산업개발은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안전’ 하면 '현대산업개발'로 인식될 정도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처벌로는 안전사고 줄이기 어려워 #예방과 감독 강화를 병행해야 효과 #기업은 속도 줄이고 안전 중시해야

이번 사건을 개별 기업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것은 한국에서 안전 불감증에서 자유로운 기업이 얼마나 되겠느냐 하는 문제 때문이다. 급기야 오늘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끊이지 않는 안전사고를 이제는 처벌로 다스리겠다는 얘기다. 산재 사망자는 한 해 900명에 육박한다. 하루에 2~3명이 기계에 빨려들고 공사 현장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꼬리를 문다. 2018년 12월 한국서부발전 태안사업장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목숨을 잃은 김용균(당시 24세) 사망사건 역시 기업의 안전 불감증이 문제였다.

지난해 말 검찰은 원청 한국서부발전 사장과 하청 한국발전기술 사장에게 각각 징역 2년과 1년6월을 구형했다.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다. 기업엔 비상이 걸렸다. 올 게 왔다는 반응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사업장에서 한 명이라도 사망하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기업은 안전·현장관리 조직을 신설·확대하거나 법률 대응을 위한 안전 전문가 모시기로 비상이 걸렸다. 로펌에는 큰 장이 섰다. 대형 로펌은 최대 100명 규모의 중대재해 대응팀을 신설하고 변호사와 고용노동부 출신 전직 관료를 동원해 오너를 비롯한 최고경영자(CEO)가 처벌을 피해갈 수 있도록 대응책 수립에 나섰다. 하지만 이 정도로 문제가 해결될까. 왜 그런지는 지난해 828명이 어떤 경로로 사망했는지 보면 알 수 있다. 건설 및 발전회사의 첨단 시설과 장비, 오래된 사업 경험 같은 외형만 보면 사고가 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빈틈이 어디 있을까 싶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국내 모든 기업 활동은 원청과 하청 관계로 이뤄진다.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도 예외가 아니다. 협력사로 불리는 하청 기업들이 부품을 공급한다. 문제는 건설사를 비롯해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 업종이다. 1층 아래에 지하실이 있듯 원도급과 하도급에 이어 끝없이 불법 재하도급이 이어진다. 왜 그럴까. 원청은 사업 기획과 하청 감독 같은 일을 담당한다. 하청 단계가 내려갈수록 노동집약적인 일을 맡게 된다. 콘크리트 타설이 대표적이다.

기업은 이익을 남겨야 하니까 하청 단계가 내려갈수록 관리감독이 느슨해진다.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예상컨대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해도 안전사고는 당분간 크게 줄어들기 어려울 것 같다. 꼬리를 무는 하청 관계가 지속하는 한 바뀔 게 없다. 정부는 이번에도 전가의 보도를 꺼내들 모양이다. 일벌백계하듯 처벌하고 강력한 제재에 나설 게 틀림없다. 하지만 처벌한다고 엄포만 놓을 뿐, 구체적 기준과 대상이 여전히 모호하다. 이래선 달라질 게 없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선 정부가 흥분하지 말고 냉철해져야 한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빠졌다면서 건물주를 처벌할 수 있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예방과 감독을 철저히 해 실효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안 보인다. 채찍만 휘두르겠다는 공포 행정으로는 세상이 안 바뀐다. 기업의 책임도 무겁다. 한국은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후 60년을 초고속으로 달려 왔다. 이젠 속도를 줄이고 질적 성장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윤 못지않게 안전을 중시해야 한다. 이런 변화가 있어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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