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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퍼스펙티브

누가 되든 비호감, ‘대통령권한 축소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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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1972년 유신헌법으로 제8대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을 '국가원수' '국법의 수호자'로 규정하면서 행정, 입법, 사법이란 3권 분립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위치에 올려놓았다. 대통령의 제왕적 위상은 현행 헌법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여야 정치권이 개헌협상을 하면서 그대로 이어받았다. 당시 대권후보들은 제왕적 절대권력을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출처=중앙포토

1972년 유신헌법으로 제8대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을 '국가원수' '국법의 수호자'로 규정하면서 행정, 입법, 사법이란 3권 분립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위치에 올려놓았다. 대통령의 제왕적 위상은 현행 헌법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여야 정치권이 개헌협상을 하면서 그대로 이어받았다. 당시 대권후보들은 제왕적 절대권력을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출처=중앙포토

역대급 비호감 대선 후보들,

제왕적 절대권력 맡길 수 있나.

제왕적 대통령제는 독재 유산..

87년 헌법에도 그대로 유지돼.

한국정치문화연구의 고전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저자 그레고리 헨더슨은 1948년부터 1961년까지 한국에 근무했던 미국 외교관이다. 당시 경험을 정치학적으로 정리한 개념이 ‘소용돌이’다. 한국정치판은 ‘모든 사람이 권력의 정상을 향해 돌진하는’ 상승기류(vortex)에 휘말리는 모양새란 의미다.
헨더슨은 40년이 지난 88년 전두환정권과 민주화운동 이후 개정판에서 ‘한국정치는 여전히 소용돌이’라 평가했다. 다시 34년이 지난 지금 헨더슨이 살아있다면 어떤 평가를 할까. ‘아직도 소용돌이’일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헌법(권력시스템)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권’이라는 권력정상을 향해 무한질주하는 대선판의 난투극은 과거와 다를바 없다.

〈비호감 대선에 잦아지는 개헌론〉
이번 대선의 두드러진 특징은 ‘비호감 후보’다. 여야 막론하고 후보 비호감도가 역대급이다. 유권자 입장에선 ‘마음에 들지않는 정치인에게 절대권력을 주어야한다’는 점이 내키지 않는다.
최근 개헌론이 속속 등장하는 건 이런 여론과 무관치않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권력시스템을 제안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개헌론자는 국회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이다. 정계원로인 국회의장은 정치인생을 마감하면서 정치발전을 위한 고언을 남기고 싶어한다. 박병석 국회의장 직속 국민통합위원회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결과보고서’의 핵심메시지는 개헌이다. 김형오ㆍ정의화ㆍ정세균 등 역대 국회의장 모두 개헌 보고서를 내놓았다.
행정부 대표격인 총리출신도 개헌을 외치고 있다. 판사출신으로 감사원장과 총리를 지낸 김황식 삼성문화재단이사장은 최근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이란 책을 내놓았다. 독일식 내각제, 즉 주요정당이 연합정권을 이루는 권력시스템으로의 개헌을 주장하기 위해서다. 정치학자 출신 이홍구 전 총리는 최근 중앙일보 칼럼에서 ‘초헌법적인 대권정치의 폐해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내각책임제를 제안했다.
정치학자들의 개헌주장도 주목된다. 장훈 중앙대교수는 “이번 대선후보의 비호감은 물론 지난 10년간 박근혜ㆍ문재인 정부를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현행 대통령제에서 좋은 민주주의는 어렵지 않는가’란 의문을 갖게 됐다. 개인적으로도 대통령제를 선호해왔는데, 최근 내각제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임중이던 2013년 9월 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공화·민주 양당 지도부를 초청해 시리아 사태에 대한 대응방안을 설명하며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왼쪽이 야당인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의장. 오바마의 정적이자 협력자였다. 미국 대통령은 주요 정책을 모두 의회로부터 승인받아야 관련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기에 대통령이 야당 의회지도자를 상대로 로비를 해야 한다.  [로이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임중이던 2013년 9월 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공화·민주 양당 지도부를 초청해 시리아 사태에 대한 대응방안을 설명하며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왼쪽이 야당인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의장. 오바마의 정적이자 협력자였다. 미국 대통령은 주요 정책을 모두 의회로부터 승인받아야 관련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기에 대통령이 야당 의회지도자를 상대로 로비를 해야 한다. [로이터]

〈미국 대통령과 비교해본 한국 대통령〉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다. 대통령이 왕조시대 임금처럼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현행 헌법상 권력구조가 비정상적이다. 대통령제의 원조이자 교과서는 미국이다.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 대통령제는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초월한 권력이다.
미국이 1787년 필라델피아 헌법회의에서 대통령제를 채택한 것은 ‘왕을 대신할 강한 리더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민은, 강력한 리더십이면서도 왕정과 같은 폭정이 되면 안된다는 딜레마. 이를 풀어낸 묘수는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원칙이며, 이를 구현한 권력시스템이 ‘3권 분립’이다.
대통령(행정부) 의회(입법부) 대법원(사법부)이 권력을 공유하면서 서로 견제한다는 정신이 제도에 정확히 반영돼 있다. 예컨대 의회는 대통령을 견제하기위해 행정부의 인사ㆍ예산ㆍ입법을 모두 좌우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인사. 장관은 물론 고위공직자에 대한 임명동의권을 가지고 있다. 청문회에서 탈락하면 임명할 수 없다. 둘째 예산. 의회가 정부예산을 사전심의ㆍ사후감사한다. 행정부는 주요 사업과 정책을 사전에 의회에 설명하고 승인을 받아야 예산을 받을 수 있다. 셋째 입법. 행정부는 법안제출권이 없고, 의회는 뭐든 법으로 정할 수 있다. 입법을 위해 행정부는 입법부에 로비해야 한다.
한국은 완전히 다르다. 미국 의회가 대통령을 견제하기위해 보유한 주요권한을 한국 대통령은 본인이 다 가지고 있다. 첫째 인사. 총리의 경우 임명동의가 필요하지만, 장관은 국회가 청문회에서 비토해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면 그냥 넘어간다. 문재인 정부에서 야당 동의 없이 임명된 장관급 인사는 30명이 넘는다. 둘째 예산. 국회심의를 받지만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국회에 실질적인 예산결산심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예산을 제대로 감사하려면 대통령직속 감사원이 국회로 옮겨와야 한다. 셋째 입법. 행정부가 법률제출권이 있고, 필요하면 여당의원 이름을 빌려 제출하는 ‘청부입법’도 많다. 일단 제출되면 여당이 무조건 통과시켜주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행정부가 입법을 주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민주화와 대통령직선제를 요구하며 시위하는 모습. 그 결과 6.29선언이 나왔고 정치권은 개헌협상에 들어갔다. 그러나 87년 헌법은 직선제와 5년 단임이란 골자 외엔 이전의 3공화국과 유신헌법 체계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대통령의 제왕적 위상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유다. [중앙포토]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민주화와 대통령직선제를 요구하며 시위하는 모습. 그 결과 6.29선언이 나왔고 정치권은 개헌협상에 들어갔다. 그러나 87년 헌법은 직선제와 5년 단임이란 골자 외엔 이전의 3공화국과 유신헌법 체계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대통령의 제왕적 위상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유다. [중앙포토]

〈민주화운동 성과인 87년 헌법이 왜 문제인가〉
1987년 민주화로 군부정권(5공화국)을 청산하면서 만든 헌법이 현행 헌법이다. 민주화의 성과물인 헌법이 왜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제일까. 1987년 당시 졸속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집권여당인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6ㆍ29선언으로 ‘대통령직선제’를 수용함에 따라 개헌논의가 시작됐다. 민정당과 제1야당(민주당)이 ‘8인 정치회담’을 시작한 것이 8월 3일, 개헌안에 합의한 것이 8월 31일. 달랑 한달만에 개헌이 이뤄진 셈이다. 비공개로 진행돼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이렇게 서두른 표면적 이유는 1988년 2월 대통령선거를 치러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면적 이유는 여(노태우) 야(김영삼 김대중) 대권후보가 모두 제왕적 권력을 놓고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미 국민적 합의사항인‘직선제’외에 ‘5년 단임’만 합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등을 없앴다고 하지만, 사실상 박정희 군사정권이 1962년 만든 3공화국 헌법의 골격을 이어 받았다.
대통령과 위상과 관련해선 ‘유신헌법’유산까지 물려받았다. 현행 헌법66조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한다’(1항)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2항)는 대목이다. 유신헌법에서 대통령을 ‘국가원수’‘헌법수호자’라는 제왕적 지위를 부여한 대목이다.
박정희 군부가 만든 3공화국 헌법만 해도 대통령에 대해 ‘행정부 수반’‘외국에 대해 국가 대표’라는 조항만 있다. 대통령은 3권 분립의 한 축으로만 인정한 셈이다. 유신헌법 이후 대통령이 ‘3권 분립’을 뛰어넘는 존재가 됐으며, 지금까지 당연시돼왔다.

〈여러가지 개헌론의 공통점은 권력분산〉
논의되고 있는 개헌의 방향성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내각제. 대통령제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지만 쉽지 않다. 내각제가 되면 정권을 담당할 정당의 수준이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1960년 4ㆍ19 직후 내각제를 도입했던 2공화국 당시 정국혼란의 기억도 있다.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은 적지만, 2공화국의 혼란상을 쿠데타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박정희 정권의 정치선전은 아직도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아 있다.
다른 하나는 분권형 대통령제.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국무총리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대폭 넘겨주는 방식이다. 예컨데 대통령은 외치, 국무총리는 내치를 맡는 방식이다. 이 경우 총리는 국회에서 뽑아야 힘을 갖는다. 사실상 다수당의 대표가 총리가 되기에 내각제적 성격이 강하다. 여전히 정당정치의 수준이 문제가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권한을 분산하는 부분수정안이다. 예컨대 인사권 제한을 위해 장관까지 ‘국회임명동의’를 의무화한다. 실질적인 예산감사를 위해 감사원을 국회로 옮긴다. 정부의 법률제출권을 없앤다 등등.

박병석 국회의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2 신년 기자회견을 하면서 '개헌'을 강조하고 있다. 역대 국회의장 대부분이 개헌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대통령이 관심이 없을 경우 개헌은 힘을 얻지 못한다.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해야하는데, 그 주도권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은 치명적인 권력시스템의 결함이다. 김경록 기자

박병석 국회의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2 신년 기자회견을 하면서 '개헌'을 강조하고 있다. 역대 국회의장 대부분이 개헌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대통령이 관심이 없을 경우 개헌은 힘을 얻지 못한다.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해야하는데, 그 주도권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은 치명적인 권력시스템의 결함이다. 김경록 기자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힘들다〉
개헌이 어려운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어렵기 때문이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26일 “국민과 국회 추천받는 총리추천제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발언이다. 하지만 개헌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도 총리는 국회동의를 받는다. 임명권 자체가 대통령에게 있는한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역시 개헌엔 생각이 없다. 이재명 후보가 지난 18일 ‘4년 중임제 개헌’을 언급했을 때 윤 후보는 ‘뜬금없다’고 말했다. 대선 직전이란 타이밍도 안맞고,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보자면 ‘4년제 중임’은 오히려 역방향이기 때문이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신년회견에서 “국회의원 93%가 개헌에는 동의하면서도 논의하자면 안한다. 정권초기엔 개헌이 블랙홀이 돼 정책노선 흐려진다며 안하고, 정권말기엔 대선에 영향 준다며 안한다. 그래서 35년을 미뤄왔다”며 “대선 끝나면 본격적인 개헌논의를 하자”고 호소했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축소하는 개헌의 주도권이 대통령 본인에게 있다는 점은 치명적 결함이다. 권력시스템의 자체 업그레이드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결국 유권자들의 의지가 작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