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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유튜브 중계소’된 MBC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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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공영방송사 MBC가 ‘유튜브 중계소’ 역할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었다. 유튜브 매체가 당사자 몰래 녹음한 야당 대선후보 배우자와의 통화 내용을 공공의 소유인 전파를 통해 중계했다. 사적 통신이지만 공익적 목적에 부합하니 방송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취재윤리는 지키면 좋고 안 지키면 그만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디어 과잉시대다. 한계가 없는 듯한 날 선 공방이나 관점이 뚜렷이 드러나는 논평과 다양한 영역의 비평에 이르기까지 유튜브 ‘요술 상자’에는 없는 것이 없다. 주류 언론사에서 볼 수 없는 것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파편화한 정보의 홍수가 소모적 논쟁과 혼란을 가중한다.

공영방송이 소셜미디어 퍼 날라
언론윤리와 책무는 어디로 갔나

이슈가 생기면 온라인에는 즉석에서 양산된 정보가 추천 알고리즘을 타고 “충격” “실화”를 시끄럽게 외친다. 클릭이 곧 이윤인 이 세계에는 자율규제도 취재윤리도 없다. 이렇다 보니 더 많이 주워듣기는 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세상을 읽어내기가 점점 어려워만 진다.

서로 다른 구조의 매체에 같은 잣대를 적용하자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주류 언론사가 이들의 중계소 역할에 나서는 것이 문제다. 이들은 소셜미디어 콘텐트가 저널리즘 취재의 기본을 갖추지 못했다고 낮춰 본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열심히 모니터하고 퍼 나르며 부정확하고 일방적인 내용을 증폭시킨다. 주류 언론의 이중적 행태다.

공영방송 시사프로그램이라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제보를 받는 것이 맞다. 하지만 취재를 통해 사실 여부를 검증하고 여과해 책임 있는 자신들의 목소리로 보도해야 한다. 공공의 전파를 공영방송사가 쓰도록 국민이 위탁한 것은 진위를 검증하는 전문성과 정당한 절차에 따라 정제된 정보를 전달할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법원이 어떤 정보를 증거로 채택할지 엄격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공정한 재판을 하지 못한다. 같은 이치로 언론이 어떤 기준으로 정보를 정확히 가려내 보도한다는 기준이 없어지면 언론 수용자가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취재 윤리는 낡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공적인 사안을 어떤 절차와 기준에 따라 보도해야 공동체 유지를 위해 온전히 역할 할 수 있는지를 오래 고민한 경험의 결과다. 미디어 과잉의 시대에 언론의 책무는 무엇을 알려야 하는가 못지않게 무엇을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에 있다.

물론 개인의 통신비밀 보호보다 통화 내용에 담긴 공적인 가치를 더 인정한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지만, 온전히 지지하지는 않는다. 사적 통화 내용이 그대로 방송을 통해 중계될 수 있다면, 도처에 깔린 디지털 기기들에 의해 언제든지 녹화되는 세상에서 누구든 심각하게 개인의 자유를 훼손당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스몰 브라더(Small Brother)’에 둘러싸여 만인이 만인의 감시자가 되는 세상이 ‘빅 브라더’가 설치는 감시사회보다 덜 위협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적인 대화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극도의 자기 통제로 자신을 보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사적 대화와 교류를 움츠리게 하는 사회적 비용은 과연 무엇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차라리 예정됐다던 2차 보도를 하기를 바랐다. 공영방송을 표방해온 MBC가 이번 방송이 시민들의 알 권리를 특별히 충족시킨다고 판단한 데에는 깊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라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과 실천 요강을 찾아봤다. ‘정확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며 엄정한 객관성을 유지한다. 확증을 갖지 않는 내용에 대한 추측 보도를 지양한다. 공익이 우선하지 않는 한 모든 취재 보도 대상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이 원칙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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