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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신의 방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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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사회에디터

장주영 사회에디터

그리스 신화에는 아이기스(Aegis)라는 ‘신의 방패’가 나온다.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제작한 것으로 한가운데에 고르곤(메두사)의 머리가 붙어 있다. ‘신들의 신’인 제우스가 자신의 딸이자 전쟁의 신인 아테나에게 준 무적방패로 유명하다. 아이기스는 한번 휘두르면 천둥과 폭풍을 일으키며, 제우스의 번개마저 거뜬히 막아낸다고 한다.

무적방패의 군함으로 불리는 ‘이지스함’도 아이기스의 영어식 발음(이지스)에서 따왔다. 미국이 개발한 이지스 시스템은 고성능 레이더와 중장거리 대공미사일을 이용한 통합전투체계로, 목표 탐색부터 공격까지 전 과정을 첨단 기술로 묶는 개념이다. 이 시스템이 탑재된 군함을 이지스함이라고 한다. 한국은 2007년 세종대왕함을 시작으로 현재 총 3척의 이지스함을 보유하고 있다. 이지스함 보유국은 미국과 일본 등 6개국에 불과하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핵심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구속)씨는 자신을 ‘이지스함’이라 칭했다. 회계사 정영학(천화동인 5호 소유주)씨와 나눈 대화에서다. 최근 공개된 녹취록에서 그는 “김만배 방패가 튼튼해. 별명이 이지스함이야”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에 이 큰 사업을 해서 언론에서 한 번 안 두드려 맞는 거 봤어?”라고도 했다. 녹취록에는 50억을 받기로 약속받은 것으로 알려진 ‘50억 클럽’의 이름도 차례로 언급된다.

김씨의 변호인은 녹취록이 공개되자 “일종의 블러핑”이라고 해명했다. 친한 사이의 과장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대장동 사업의 민낯을 보면, 김씨의 이야기가 단순한 허풍으로 들리지 않는다. 유력인사 연루와 수백억원의 수익, 의원 아들의 50억원 퇴직금까지,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모두 믿지 못할 허풍이라고 묻힐 법한 이야기였다.

김씨가 이 모든 일의 몸통이고 설계자일까. 대장동 수사의 핵심은 윗선 규명이지만 검찰 수사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25일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두 달 전 기각된 영장을 재청구한 것이다. 수사 착수 4개월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이러니 부실 혹은 봐주기 수사 지적이 나온다. 검찰이 의지만 있다면 부패한 권력의 방패는 뚫리게 돼 있다. 신(神)은 그들에게 방패를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