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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 없어 퇴짜, 전당포로 간다…얼어붙은 '마지막 급전창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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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해 7월부터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연 20%로 인하됐다. 대부업체는 신용대출 비중을 줄이고 담보대출을 늘리고 있다. 수익성 악화로 영업형태를 바꾸는 것이다. 뉴스1.

지난해 7월부터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연 20%로 인하됐다. 대부업체는 신용대출 비중을 줄이고 담보대출을 늘리고 있다. 수익성 악화로 영업형태를 바꾸는 것이다. 뉴스1.

가게 운영자금 2000만원을 빌려야 하는 자영업자 A(46)씨는 대출 걱정에 피가 마른다.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은 물론 대부업체에서도 번번이 퇴짜를 맞아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가게가 어려워지면서 1억원 넘게 불어난 빚 때문이다.

A씨는 “요즘 대부업체에서도 담보가 없으면 대출이 어렵다는 걸 처음 알았다”며 “이러다 사채시장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게 아닐지 두렵다”고 토로했다.

저신용자 등 금융 취약계층은 혹독한 대출 한파를 맞고 있다. ‘급전창구’ 역할을 했던 신용카드 장기대출(카드론) 평균 금리는 15%대에 육박하고, 합법적인 대출의 마지노선인 대부업체마저 아파트 등 담보 지닌 대출자를 선호하고 있어서다.

카드론 평균 금리 15% 육박  

중·저신용자가 신용카드사에서 빌리는 대출(카드론) 평균 금리는 상단 기준 15%에 다다르고 있다. 26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7개 전업 카드사(롯데·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카드)와 NH농협카드의 카드론 평균 금리는 12.1~14.94%로 나타났다. 평균 금리가 12%대인 카드사는 지난해 11월 3곳에서 현재 한곳으로 줄었다.

금융권은 카드론 평균 금리가 조만간 15% 선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이자(카드채 금리)가 비싸진 데다 정부의 대출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면서다. 올해부터 대출자의 빚 갚는 능력을 깐깐하게 따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에 카드론이 포함됐다.

일반인이 찾을 수 있는 제도권 내 ‘마지막 급전창구’인 대부업체마저 담보를 요구하는 등 대출 문턱을 높이는 것도 저신용자들에게는 어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대부업체가 신용대출 취급을 줄이고, 부동산이나 자동차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담보대출에 주력하고 있다.

대출자 소유의 아파트나 오피스텔, 상가 등을 담보로 시세에 따라 대출(한도)을 책정하거나 자동차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방식이다. 담보 없는 차주는 대부업체에서도 퇴짜(대출승인 거절)를 맞을 확률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담보대출 비중 증가하는 대부업.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담보대출 비중 증가하는 대부업.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대부업체의 영업 형태가 바뀐 건 수치로도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대부업체의 담보대출액(7조5390억원)이 전체 대출액(14조5141억원)의 51.9%를 차지했다. 신용대출(48.1%) 비중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8년 말 담보대출 비중(32.2%)과 비교하면 2년 반 만에 19.7%포인트 증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대부업체 관계자는 “2019년부터 부동산 담보대출을 취급했는데 현재 전체 대출 잔액의 절반이 담보대출”이라며 “그동안 소규모 신용대출을 해온 대부업체 특성상 이례적이긴 하다”고 말했다.

전당포에 휴대폰 맡기는 젊은 층 증가

대부업체가 담보대출을 선호하다 보니 최근 활기를 띠는 곳은 전당포형 대부업체다. 전당포는 귀금속이나 명품가방 등 부동산보다 상대적으로 담보가치가 낮은 물건을 맡겨도 돈을 빌려주기 때문이다. 1999년 전당포영업법이 폐지된 뒤로 전당포는 대부업권에 포함됐다.

전국에 10여개 지점을 둔 C전당포대부 실장은 “지난해 중순부터 명품가방과 시계 등을 맡기고 돈을 빌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면서 “특히 젊은 층 중심으로 노트북을 비롯해 태블릿PC, 최신 스마트폰 등 고가의 전자기기를 맡기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법정 최고금리 어떻게 변했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금융위원회]

법정 최고금리 어떻게 변했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금융위원회]

법정 최고금리 인하가 불씨  

대부업체가 ‘고객 고르기’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다. 문재인 정부 임기 초 연 27.9%였던 최고금리는 2차례 인하로 지난해 7월 20%로 낮아졌다. 최고금리는 더 낮아질 수 있다. 대선을 앞두고 법정 최고금리를 10% 중반대로 낮추자는 법안이 쏟아지고 있어서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는 ‘양날의 검’이다. 금리 인하는 이자 부담을 줄여주지만, 신용카드사와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은 물론 대부업체마저 수익성 악화로 대출 문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부업계 관계자는 “(대부업체는) 다중채무자 등 취약계층 수요가 워낙 많다 보니 연체 우려가 크다”며 “낮아진 최고금리에 맞춰 적자를 줄이려면 부실 우려가 낮은 담보를 가진 대출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쪼그라드는 대부업 시장.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쪼그라드는 대부업 시장.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대부업 시장은 이미 쪼그라들고 있다. 대형업체는 신규 대출을 중단하거나 2금융권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웰컴금융그룹 계열 대부업체인 웰컴크레디라인대부와 애니원캐피탈대부는 지난해 말 철수했다. 저축은행 인수 조건으로 2024년 철수한다는 당초 계획을 앞당겼다. 자산 규모 5위 수준인 조이크레디트대부는 2020년 1월부터 신규대출을 중단했고, 산와머니는 2019년 이후 기존 대출만 회수하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는 대출규제 등 정부의 각종 정책으로 취약계층이 피해를 보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고금리가 더 낮아지면 급전이 필요한 저신용자가 불법사채시장으로 내몰리는 부작용도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는 최대한 취약계층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면밀한 분석을 통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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