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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얼음 국채시장…30~40조 추경하려다 이자 폭탄 더 맞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까지는 감당이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국채를 추가로 발행한다면 이자율이 어떻게 될지, 시장이 받아낼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한다.”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국채시장에 대한 기획재정부 당국자의 평가다.

26일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5년물 금리는 연 2.156%를 기록했다. 하루 전보다 0.018%포인트 내리긴 했지만 1년 전 1%대 초반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올랐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2.367%로 2%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국채금리를 더 상승하게 할 요인은 산적해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이 초읽기에 들어간 데다, 한국은행도 금리 추가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곽병열 리딩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미 Fed의 통화정책 변경 리스크는 직전 인상 사이클(2015~2018년)에 비해 압축적이고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며 “금융시장에 사전 신호 전달은 원활하지 않았고, 이에 따른 충격파가 (시장에) 빠르게 반영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퍼주기’ 추가경정예산 공약이 가뜩이나 불안한 국채시장을 더 흔들어놓고 있다. 국채 발행으로 수십조 빚을 더 내 추경을 편성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국채의 금리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시중에 풀리는 물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국채의 상대적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금리 상승).

국고채 금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국고채 금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 25일 여야 추경 증액 요구와 관련해 “돈을 어디서 가져오냐. 금리 영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24일 국회에 제출한 올해 추경 규모는 14조원이다. 이에 반해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는 20조원에서 최대 33조원에 이르는 추경안을 구성해 놓은 상태다. 여당은 소상공인ㆍ자영업자는 물론 특수형태근로종사자ㆍ프리랜서 등 지원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300만원 방역지원금 지급 대상을 320만 명(정부안)에서 최대 550만 명으로 늘리는 방향이다. 국민의힘은 여당보다 더 많은 45조원 추경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안 14조원 가운데 11조3000억원은 적자국채 발행으로 메우기로 돼 있다. 여야 어느 쪽으로 의견이 수렴하든 수십조 적자국채 추가 발행은 피할 수 없다. 여기에 대통령선거 이후 2차 추경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국가채무 이자 지급 예산은 20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액을 경신했다. 1인당 25만원 전 국민 재난지원금(12조2000억원)을 2번 지급할 수 있는 돈에 육박한다. 국가채무 이자 지급액은 2020년 18조9000억원, 지난해 19조8000억원으로 늘고 있다. 채무가 증가하고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은 더 불어날 수밖에 없다.

국가채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국가채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더 큰 문제는 민간으로의 '후폭풍'이다. 국채금리는 각종 시장금리의 지표 역할을 한다. 은행과 기업에서 은행채ㆍ회사채 등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때 기준이 된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시장금리 상승으로 은행채 등 각종 조달 비용이 늘어나면서 민간 대출금리 추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 연구에 따르면 대출금리 1%포인트 상승시 가계에서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이자는 12조원에 이른다. 이번 추경 지원 대상인 소상공인ㆍ자영업자 역시 추경 증액에 따른 금리 인상 ‘나비 효과’를 피할 수 없다. 금융 당국이 이들을 대상으로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혜택을 주긴 했지만 오는 3월 말이면 끝난다. 한은 통계를 보면 지난해 11월 잔액을 기준으로 가계대출 75.7%, 기업대출 67%가 금리 상승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변동금리 상품이다. 빚과 이자 부담을 을 감당하지 못하는 가계·기업이 늘면 금융권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 내부의 경계감은 크다. 기재부 관계자는 “똑같이 추경을 한다 해도 저금리가 유지됐고 다른 국가에서도 돈을 풀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시장 환경은 크게 악화했다”고 짚었다.

여당 일각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추경 재원 조달 방법으로) 지금은 국채 발행 말고는 불가능하다”며 “국채를 이렇게 대거 발행하면 국채금리가 올라가고, 그럼 또 시장금리가 올라가는데 결국 그 부담을 지는 건 서민과 자영업자ㆍ소상공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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