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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돈 빼가도 몰랐다…강동구 공무원 115억 횡령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강동구청 공무원이 업무비 11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긴급체포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최근 일단락된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건’에 이어 한 직원이 아무런 제재 없이 수억원 대의 공금을 빼돌린 사건이 공공기관에서도 벌어진 것이다. 이에 구청의 허술한 관리·감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공금 115억 원을 횡령한 강동구청 공무원 김모씨가 26일 오전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금 115억 원을 횡령한 강동구청 공무원 김모씨가 26일 오전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77억 행방 묻자 “주식으로 날렸다”

서울동부지법은 26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업무상 횡령 혐의를 받는 김모(47)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했다. 강동구청 소속 7급 주무관인 김씨는 2019년 1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약 14개월간 투자유치과에서 근무하며 115억원 상당의 기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24일 긴급체포됐다. 구청은 김씨의 마지막 횡령 이후 1년여가 지난 뒤인 이달 22일 직원 제보를 통해 횡령 사실을 확인하고, 이튿날 강동경찰서에 김씨를 고발 조치했다.

김씨가 투자유치과에 근무하던 당시 강동구청은 자원순환센터 건립사업을 위해 서울주택도시공사(SH)로부터 설치 비용을 일부 지원받았는데, 기금을 관리하던 김씨가 이 돈을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발적으로 복구한 38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77억원을 “주식 투자로 전부 날렸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강동구청에 따르면 김씨는 구청 업무용 계좌로 들어온 돈을 개인 계좌로 빼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SH에 미리 공문을 보내 출금이 불가능한 기금관리용 계좌 대신 자신이 관리하는 구청 업무용 계좌로 기금을 보내달라고 한 것으로 파악됐다. 구청 관계자는 “이번에 업무를 넘겨받은 직원이 기금 결산 처리가 안 된 부분을 의심해 제보했다”며 “공직 비리 특별조사반을 편성해 자체 원인분석 중”이라고 했다.

강동구청사. [사진 강동구]

강동구청사. [사진 강동구]

뿔난 구민들 “태만 넘어선 방조”

김씨가 1년여에 걸쳐 115억원을 횡령하는 동안 구청이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자 구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강동구청 앞을 지나던 주민 이모(60)씨는 “일개 공무원이 공금 빼돌리는 걸 1년 동안 몰랐다는 건 구청이 업무 태만을 넘어서 방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날 온라인 구청장실 민원게시판에는 “횡령한 돈을 찾을 수는 있냐” “개인의 일탈이 아닌 구청장과 시스템의 문제”라는 내용의 글이 여러 개 올라오기도 했다. 이정훈 구청장은 성명문을 통해 “민·형사상 모든 조치를 강구해 피해액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시스템 허점인가, 주도면밀한 범행인가

한편 김씨가 구청 업무 계좌에서 손쉽게 돈을 빼돌릴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한 의문도 증폭되고 있다. “공적 사업 기금이 ‘눈먼 돈’처럼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구청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김씨가 회계시스템 허점을 이용해 기금을 횡령했다"고 설명했으나, 시스템상 어떤 허점이 드러났는지에 대해선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일각에선 김씨가 ‘제로페이 계좌’를 통해 기금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제로페이 운영을 총괄하는 서울시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법인용 제로페이 계좌는 이체 한도가 0원으로 설정돼 있어 개인 계좌로의 이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A씨가 정식 회계 시스템을 우회해서 횡령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이다.

다른 구청 관계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회계 시스템의 허점이 아닌 김씨 개인의 주도면밀한 범행으로 볼 수도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공금을 개인계좌로 이체하는 건 시스템상 불가능하다. 매년 결산을 하는데, 안 걸렸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며 “구체적인 수법이 확인돼야겠지만, 특수한 케이스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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