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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불량국' 북한, 유엔 군축회의 의장국 맡는다…이게 뭔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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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북한이 오는 5월 말부터 한 달동안 유엔 군축회의(Conference on DisarmamentㆍCD) 의장국을 맡을 예정이다. 국제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불법적 핵무기를 개발해 '핵 불량국'으로 찍힌 북한이 세계 각국의 군비 축소와 비확산 의제를 다루는 회의를 주재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논란이 불거질지 주목된다.

2017년 8월 유엔 군축회의에서 북한 핵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관련 브리핑이 열리는 모습. UN Photo/Violaine Martin.

2017년 8월 유엔 군축회의에서 북한 핵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관련 브리핑이 열리는 모습. UN Photo/Violaine Martin.

유엔 "北, 올해 군축회의 의장국"

스위스 제네바 소재 유엔 본부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발표한 올해 유엔 군축회의 관련 성명에서 "북한이 5월 30일부터 6월 24일까지 순회 의장국을 맡는다"고 밝혔다. 유엔 군축회의는 65개국이 가입한 세계 유일의 다자간 군축 협상 기구로, 한국과 북한은 1996년에 동시 가입했다.

의장국은 65개 회원국이 알파벳 순서로 돌아가며 맡는다. 매년 6개국이 4주씩 맡는데 올해는 중국을 시작으로 콜롬비아, 쿠바, 북한, 콩고민주공화국, 에콰도르 순이다.

스위스 제네바 소재 유엔 본부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발표한 올해 유엔 군축회의 관련 성명. 올해 유엔 군축회의 의장국은 중국(1월 24일~2월 18일), 콜롬비아(2월 21일~3월 18일), 쿠바(3월 21일~4월 1일 및 5월 16일~27일), 북한(5월 30일~6월 24일), 콩고민주공화국(6월 27일~7월 1일 및 8월 1일~19일), 에콰도르(8월 22일~9월 16일)순으로 맡는다. 강조한 부분은 북한의 의장국 일정으로 기자가 표시. 제네바 유엔 본부 홈페이지 캡쳐.

스위스 제네바 소재 유엔 본부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발표한 올해 유엔 군축회의 관련 성명. 올해 유엔 군축회의 의장국은 중국(1월 24일~2월 18일), 콜롬비아(2월 21일~3월 18일), 쿠바(3월 21일~4월 1일 및 5월 16일~27일), 북한(5월 30일~6월 24일), 콩고민주공화국(6월 27일~7월 1일 및 8월 1일~19일), 에콰도르(8월 22일~9월 16일)순으로 맡는다. 강조한 부분은 북한의 의장국 일정으로 기자가 표시. 제네바 유엔 본부 홈페이지 캡쳐.

11년 전 논란 '데자뷔' 되나

북한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군축회의 의장국을 맡았던 건 지난 2011년 6월이다.

당시 캐나다는 북한이 의장국을 맡는 기간 내내 회의 자체를 보이콧하며 적극 반발했다. 존 베이드 당시 캐나다 외무장관은 같은 해 7월 "북한은 핵무기를 수출하는 핵확산의 주범이며 군축 의무를 어기고 있다"며 의장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미 의회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일래애나 로스-레티넨 당시 미 하원 외교위원장은 같은 달 "여우에게 닭장을 맡기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유엔을 감시하는 비정부기구인 '유엔 워치' 등 28개 민간 단체도 같은 해 8월 제네바에서 반대 기자 회견을 열었다.

미 행정부 차원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북한의 의장국 수임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빅토리아 눌런드 당시 미 국무부 대변인은 그해 7월 브리핑에서 "군축회의는 컨센서스(표결 없는 합의) 기반이기 때문에 의장국 마음대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는 없다"며 "(북한의 의장국 수임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조병제 당시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같은 달 브리핑에서 "알파벳 순서에 따라 북한 차례가 된 것으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2년 1월 서세평 당시 주 제네바 북한 대표부 대사가 유엔 군축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UN Photo/Jean-Marc Ferre.

2012년 1월 서세평 당시 주 제네바 북한 대표부 대사가 유엔 군축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UN Photo/Jean-Marc Ferre.

2011년엔 논란 속 임기 마쳐

이같은 논란 속에 북한은 4주 간의 의장국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쳤다. 당시 주 제네바 북한 대표부 차석이 회의를 주재하며 "전 세계 핵무기의 완전한 폐기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등 실제 행보와는 거리가 있는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올해도 북한의 의장국 자격 논란이 11년 만에 다시 불붙을 수 있다.

특히 북한의 핵 능력은 그 사이 급격히 고도화했다. 2017년 핵 무력 완성을 선포한 뒤 이제는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노리고 있다. 올해 들어 한 달 새 네 차례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모라토리엄(핵실험ㆍ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유예)을 깨겠다고 위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북한이 군축회의 의장국 역할을 핵보유국 지위를 강조하거나 체제를 선전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과거 북한은 유엔 군축 회의장에서 핵ㆍ미사일 관련 지적을 받을 때마다 말 폭탄을 서슴지 않았다.

2013년 2월엔 서방 국가들이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규탄하자 전용룡 당시 주 제네바 북한대표부 1등 서기관이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며 한국을 향해 "최종 파괴(final destruction)"를 언급하며 위협했다. 이보다 앞서 천안함 피격 사건 후 한반도에 긴장이 높아졌던 2010년 6월엔 이장곤 주 제네바 북한대표부 공사가 "한반도에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1일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를 참관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1일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를 참관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한국 파괴하겠다"던 회의장서 회의 주재?

2011년 당시 북한 다음으로 의장국 역할을 이어받았던 나라는 쿠바였는데 미 의회에선 "김정일이 (쿠바의) 카스트로 형제에게 의장석을 물려주는 터무니 없는 일이 유엔에서 벌어지고 있다"(로스-레티넨 미 하원 외교위원장)는 비판이 나왔다. 알파벳 순서로는 쿠바(Cuba)가 북한(DPRK)에 앞서야 하지만, 그 때는 쿠바의 사정 상 순서가 바뀌었다고 한다. 올해는 쿠바 다음으로 북한이 의장국의 바통을 넘겨받게 된다.

북한 외에도 국제 비확산 체제에 도전해온 국가들이 군축회의 의장국을 맡을 때마다 논란은 반복됐다. 2019년 베네수엘라, 2018년 시리아, 2013년 이란 등이 의장국을 수임했을 때다. 미국 등 서방에서는 회의 자체를 보이콧하거나 회의 참석자의 급을 낮추는 방식으로 반발했다. 이와 관련, 군축회의 의장국 수임 규정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고 한다.

한편 유엔 군축회의 자체가 수십 년째 별다른 성과 없는 사실상의 '식물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꾸준히 나온다. 지난 1996년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채택했지만 여전히 발효되지 않았다.

이후 다른 사안에서도 서방그룹과 비동맹그룹 간 이견 등으로 회의가 공전을 거듭하는 경우가 많았다. 의장국을 어느 국가가 맡느냐 보다 회의 자체의 실효성을 높이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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