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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주방'은 되는데, 공유'미용실'은 왜 안돼?…황당 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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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019년 7월 서울 용산점 창업→2020년 9월 규제 샌드박스 통과, 신촌점 확대→법 개정(지난해 12월)→연내 20곳으로 확대 추진.

배달 전문 공유 주방 키친엑스가 걸어온 길이다. 키친엑스는 전국의 여러 맛집을 찾아 입점시킨 뒤, 해당 음식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로 2019년 문을 열었다. 하지만 사업은 출발부터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 당시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한 개의 주방 시설을 다수 영업자가 공유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 회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규제 샌드박스’ 문을 두드렸다. 규제 샌드박스는 모레 놀이터처럼 기업들이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규제를 풀어주는 제도다.

그 결과 2020년 9월 과기정통부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로부터 실증 특례를 받았다. 실증 특례를 받으면 현행법상 금지되는 경우라도 규제를 유예하고 일정 기간 제한 구역에서 테스트할 수 있다.

2020년 정부로부터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를 받아 오픈한 키친엑스 신촌점. 지난해 말부터 관련 법이 개정돼 올해부턴 여러 지점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게 됐다. [사진 키친엑스]

2020년 정부로부터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를 받아 오픈한 키친엑스 신촌점. 지난해 말부터 관련 법이 개정돼 올해부턴 여러 지점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게 됐다. [사진 키친엑스]

샌드박스 통과해도 또 규제…법 개정만이 살길 

키친엑스는 실증 특례를 받는데 성공했지만, 영업 범위가 ‘신촌점’으로 한정됐다. 하지만 지난해 식품위생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앞으로는 마음껏 지점을 넓힐 수 있게 됐다. 이승환 키친엑스 대표는 “실증 만료 후 사업이 중단될까 걱정했는데 부처의 선제적 법제도 개선 덕분에 한시름 놓았다”고 말했다.

샌드박스 과제 법 개선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샌드박스 과제 법 개선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대한상공회의소 샌드박스 지원센터가 26일 발표한 ‘샌드박스 승인과제 제도 개선 현황’에 따르면 키친엑스처럼 실제 법 개정을 완료한 경우는 137건 중 24건에 불과했다. 비대면 이동통신 가입 서비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반 앱 미터기, 시각장애인 보행 경로 안내 서비스, 선결제 택시 등이 실제 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대한상의 측은 “샌드박스 혜택이 산업 전반으로 퍼지려면 법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라며 “샌드박스의 완성은 법령정비”라고 밝혔다.

제도 개선 진행중 30건, 미완료 과제 83건  

그러나 여전히 제도 개선이 진행 중인 사례가 30건, 미완료 과제가 83건에 달한다. 법 개정이 진행 중인 대표적인 사례가 전기차의 배터리를 재활용하는 사업이다. 기존 전기차의 폐배터리는 지자체에 반납해야해 재활용이 어려웠지만, 2020년 말 대기환경법이 개정되면서 이런 의무가 사라졌다. 하지만 재제조 대상 품목 목록에 전기차 배터리를 추가하고, 성능 기준을 마련하는 부처 차원의 제도 개선이 남아있다. 남준희 굿바이카 대표는 “폐배터리 안전기준 등 다른 관련 법 제도도 빠르게 개선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자동차관리법·공중위생관리법 등 첩첩산중 

규제 샌드박스는 통과했지만, 제도가 개선되지 않아 언제 사업이 중단될지 모르는 위기에 놓인 사업은 83건이다. 송우경 산업연구원 지역정책실장은 “승인 기업의 사업 중단 우려를 해소하고 혁신을 확산하기 위해 안전성이 검증된 과제에 대해선 정부·국회가 법제도 개선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역 근처 공유미용실 '팔레트h' 내부 모습.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를 받아 영업을 하고 있지만, 관련 법(공중위생관리법) 등은 개선되지 않은 상황이다. [사진 제로그라운드]

서울 강남역 근처 공유미용실 '팔레트h' 내부 모습.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를 받아 영업을 하고 있지만, 관련 법(공중위생관리법) 등은 개선되지 않은 상황이다. [사진 제로그라운드]

대한상의는 정부와 국회, 올해 3월 출범 예정인 인수위 등에 조속한 법제도 정비를 지속적으로 건의할 계획이다. 사회·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과제를 우선적으로 요청하겠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전자제어장치 업데이트 시 정비소를 방문하도록 돼 있는 자동차관리법, 한 개 미용실에서 복수 사업자가 영업하지 못하도록 한 공중위생관리법, 비대면 진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의료법 등이다.

강민재 대한상의 샌드박스관리팀장은 “법제도 개선을 위해 관련 부처는 물론 국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며 “차기 정부에서도 법제도가 개선될 수 있도록 대선 이후 인수위 건의 등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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