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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권리금 놓고 6번 재판벌인 자영업자와 건물주…승자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50)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영업자의 고난의 행군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상권이던 명동 공실률이 40%를 넘어서고, 대출 원리금을 갚을 엄두가 나지 않아 폐업조차 못 하고 손실보상금으로 겨우 유지하던 사업자는 상가임대차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장사를 계속할지 고민일 겁니다. 이제 끝나는 임대차 계약의 세입자는 종전의 세입자에게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을 겁니다. 임대차 기간이 종료돼도 만약 신규 세입자를 유치해 기존에 투입한 권리금을 조금이라도 회수하면 그나마 다행일 테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우리 상가임대차법에는 2015년부터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다. 임대차 기간이 만료되는 상가 건물의 임차인이 새로운 임차인을 주선해 권리금 계약을 체결하려고 하면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면 안된다. 사진 pxhere]

우리 상가임대차법에는 2015년부터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다. 임대차 기간이 만료되는 상가 건물의 임차인이 새로운 임차인을 주선해 권리금 계약을 체결하려고 하면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면 안된다. 사진 pxhere]

그래서 우리 상가임대차법에는 2015년부터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임대차 기간이 만료되는 상가 건물의 임차인이 새로운 임차인을 주선해 권리금 계약을 체결하려고 하면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면 안됩니다(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1항 제4호). 즉, 임대인은 정당한 거절 사유가 없다면 종전 임차인이 데리고 온 신규 임차인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해야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종전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물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임대인은 종전 임차인이 데리고 온 신규 임차인을 의도적으로 거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임차인을 유치해 직접 권리금을 챙길 수 있습니다. 종전 임차인으로서는 자신의 권리금을 회수할 길이 없게 되는 것이죠. 위 규정은 임대인이 임차인의 권리금을 가로채는 경우를 막기 위해 마련된 겁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임대인인 건물주의 입장에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내용입니다. 임대차계약도 계약이고, 그 계약의 당사자는 임대인과 신규 임차인입니다. 상대방인 신규 임차인을 고를 수 있는 자유 또한 계약 당사자인 임대인에게 있음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위 규정 때문에 임대인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종전 임차인이 정한 신규 임차인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물론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임대인은 종전 임차인이 데리고 온 신규 임차인과의 임대차계약 체결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전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에게 보증금이나 월세를 지급할 자력이 없거나, 임대인이 적극적으로 신규 임차인을 유치해 종전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지급하도록 한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상가임대차법에는 그 외에도 ‘임대차 목적물인 상가건물을 1년 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아니한 경우’도 정당한 사유에 포함하고 있습니다(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2항 제3호).

그런데 이 조항은 명확하지 않아 상당히 논란이 되었습니다. ‘1년 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라는 과거형인데, 일단 주어가 빠져 있어서 누가 상가건물을 사용하는 경우인지부터 혼란스러웠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임대차 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상가를 사용했던 사람은 임차인입니다. 그런데 위 규정을 ‘임차인이 1년 6개월 이상 상가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경우’라고 보면 잘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임차인이 임대차보증금이나 월세를 꼬박 지급하면서 1년 6개월 이상 상가를 비워두는 경우는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때 임대차 종료 시 종전 임차인이 권리금을 받아갈 여지도 없을 겁니다.

종전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에게 보증금이나 월세를 지급할 자력이 없는 등 정당한 사유에서는 신규 임차인과의 임대차계약 체결을 거절할 수 있다. [사진 flickr]

종전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에게 보증금이나 월세를 지급할 자력이 없는 등 정당한 사유에서는 신규 임차인과의 임대차계약 체결을 거절할 수 있다. [사진 flickr]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위 규정은 ‘임대인이 1년 6개월 이상 상가건물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물론 종전 임차인과의 임대차가 종료되는 시점에 임대인이 상가 건물을 사용하는 상황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 규정은, ‘임대차기간이 종료된 후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임대인이 임대차건물을 다른 곳에 임차하거나 스스로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도 않은 경우’에 한해 적용됩니다. 임대인이 1년 반 이상 건물을 비영리 목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는 임차인의 권리금을 가로챌 의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최근 대법원 또한 동일한 취지로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19다285257 판결). 사례를 보겠습니다.

A는 2010년부터 당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 보장된 5년(현재는 10년) 동안 2015년까지 상가건물에서 음식점을 운영해 왔습니다. 그리고 2015년 임대차계약 종료 무렵 음식점을 넘길 생각으로 새로운 임차인 B를 주선해 B와 권리금 계약도 체결하고 건물주에게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체결해 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냈지요. 그런데 뜻밖에 건물주는 건물을 재건축 또는 대수선할 계획이 있다면서 B와의 임대차계약 체결을 거절했는데요. 그러자 A는 건물주를 상대로 권리금 회수를 방해했다면서 권리금 상당액인 약 1억3500만원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건물주는 A와의 임대차 계약이 종료된 후 실제로 1년 6개월 동안 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기에 손해배상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고, 파기환송심인 2심은 이 경우는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2항 제3호가 적용된다면서 건물주가 B와의 임대차계약을 거절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건물주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대법원은 위 규정에 따른 상가사용의 주체가 임차인이 아닌 임대인이라는 점은 2심과 동일하게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임차인의 손을 들어준 셈입니다. 실제로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2항 제3호 규정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임대인이 임대차 종료 시에 향후 1년 6개월 이상 상가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대차계약 체결을 거절하고, 실제로도 1년 6개월 이내 상가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건물주는 그런 사유가 아니라 건물을 재건축 또는 대수선할 계획이 있다면서 B와의 임대차계약 체결을 거절했습니다. 따라서 실제로 건물주가 1년 6개월 동안 상가건물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점을 A에게 임대차종료 시에 고지하지 않은 이상 B와의 임대차계약을 거절할 정당한 사유가 인정될 수 없다는 게 법원 취지입니다.

참고로 이 대법원 사건은 벌써 이미 2019년에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어서 재상고 되었다가 또 파기환송된 사건으로 현재까지 6번, 재재상고될 경우 7번의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3번째 재판인 종전 대법원 사건에서도 ‘임대차 기간이 지난 경우에도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 있는 판결이 내려졌는데요(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7다225312, 2017다225329 판결), 이 사건 분쟁으로 권리금에 관한 논의가 진일보했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습니다(물론 한 사건으로 수많은 소송비용을 들여가며 무려 6번이나 재판을 해야 하는 당사자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건물주는 건물을 재건축 또는 대수선할 계획이 있다고 임차인 A에게 고지했는데, 이처럼 재건축 또는 대수선하는 경우도, ‘1년 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경우’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1년 6개월의 조항은 임대차목적몰이 그대로 존치됨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철거 후 재건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 관한 규정은 아닙니다. 결국엔 건물주는 A에게 권리금을 배상해주어야 할 겁니다.

이렇게 대법원 판례로 논란이 있었던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2항 제3호 규정에 대한 해석이 정리되었습니다. 다만 판례 취지에 따르더라도 건물주가 1년 반 건물을 비워둘 각오를 하면, 1년 반 후에는 임대인이 직접 주선한 신규 임차인에게 직접 소위 말하는 ‘바닥권리금’(또는 ‘지역권리금’)을 챙기는 것은 막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물론 그러려면 1년 6개월 동안의 보증금과 월세를 모두 포기해야 하는데, 건물주 입장에서도 실제로 그리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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