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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다 똥된다"…나이 들면 좋은 것만 써야 하는 이유 [더오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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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213)

출근길 라디오를 켜면 소소한 선물쿠폰이 나를 유혹한다. 새해라 더 푸짐하고 당첨 확률도 좋다. 나도 가끔씩 갓길에 차를 세워가며 보냈더니 짧은 문자가 줄줄이 당첨되었다. 커피, 케이크, 음료수, 책, 마사지 쿠폰 등등 갑자기 쿠폰부자가 되었다. 딸도 주고 지인에게도 나누니 기분도 덩달아 좋다.

라디오에 보낸 짧은 문자가 당첨돼 선물쿠폰을 받은 적이 있다. 쿠폰을 이리저리 나눠주고 나면 괜시리 기분이 좋다. [사진 Manish Das on Unsplash]

라디오에 보낸 짧은 문자가 당첨돼 선물쿠폰을 받은 적이 있다. 쿠폰을 이리저리 나눠주고 나면 괜시리 기분이 좋다. [사진 Manish Das on Unsplash]

그런데 며칠 전 한 앱에서 문자가 왔다. 3개월 전 친구가 보내준 고급 선물이다. 사용할 유효기간이 지났다며 처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런 낭패가 있나. 벌써 두 번째다. 고급은 아까워서 아무도 안 주고 숨겨 놓은 놀부 심보가 들통 났다. 그 친구는 내게 안부를 물어볼 때마다 가끔씩 그날의 상황에 맞는 뜻깊은 선물을 보내주었다. 돈이 많다고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진정한 부자의 모습이다. 나는 돈을 어처구니없는 종이로 만들고, 내 돈으론 사 먹을 엄두도 못 내는 고급 음식을 아끼다가 썩혀 버렸다. 남들에게 보이는 나는 착한여자인데 내면의 나는 스쿠루지영감 꼴이다. 이런 나를 늘 격려해주는 멋진 친구에게 너무 미안하다.

얼마 전 비 오던 날 사과를 출시하느라 바쁜 과수원 지인의 호출이 왔다. 공판장을 지날 때면 늘 사과를 갖다 줘서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빚 갚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몇 시간이 안 되어 일이 끝났다. 일은 쥐꼬리만큼 도왔는데 차 휘발유도 가득, 이웃과 나눠 먹으라며 사과도 가득 실어 주신다. 그분을 만나면 귀거래사의 주인공 같다. 나도 본받아 자연을 사랑하고 아낌없이 나누는 마음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미안한 마음에 흠과를 주섬주섬 담으니 나를 나무라신다. 아끼고 아끼는 건 젊을 때 해야 하는 행동이라며 나이가 들면 그 어떤 것도 가장 깨끗하고 좋은 것을 자신에게 주란다. 지금은 그럴 나이란다.

과분한 사랑에 미안해하는 내게, 내가 도운 작은 시간이 10시간을 마무리한 것과 같은 효과를 주었다고 추켜 세워주신다. 보조자의 자리와 값어치도 설명하며 고마워한다. 한 계단만 올라가면 정상인데 다리를 삔 것 같은 상태에 누군가가 손잡아 주면 올라갈 수 있는 그 단계가 지금이란다. 돌아오는 내내 일당백의 가치가 생각났다. 아주 작은 봉사도 할 수만 있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해야겠다. 누군가에겐 일당백의 큰 의미가 있다. 노인정으로, 앞집으로, 싱싱한 사과를 배달하며 욕심을 나누니 몸도 마음도 가볍다.

외할머니는 내가 해준 한복을 곱게 보관만 하시다가 관속까지 가지고 가시고, 시어머니는 내가 사준 몇 벌의 내복을 고이 끌어안고만 사시다가 관속에 가지고 가셨다. 살아있을 때 받은 선물은 살아있을 때 활용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아까워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지인이 선물해준 최고급 이불도 꺼내 나를 덮어줘야겠다.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손에 쥐여 줘도 못 먹는 바보’는 되지 말아야지.

언젠가 카톡에 전해 도는 의미 있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중국 절강성 경제계의 왕 모 회장은 38세에 죽었는데 그 부인이 19억 위안(한화로 약 380억)예금을 가지고 그 회장의 운전기사와 재혼을 했다고 한다. 운전기사가 행복에 겨워 말했다. “전에 나는 내 자신이 왕 회장님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왕 회장님이 날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는. 운전기사는 그 공짜 선물을 유용하게 잘 쓰며 살다 갔을까나 궁금하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남에게 보여주는 삶으로 산 것 같다. 그것이 잘사는 삶이라 착각하며 살았다. 아직도 많은 것을 보물이라 부둥켜안고 아끼는 나를 바라본다. 올해는 남에게 보이는 나보다 내 안의 나를 최고로 대우하고 대접하는 해로 살아야겠다. 이렇게 하나하나 깨달아 가는 나를 크게 격려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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