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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밖에 법 없다, 내겐 마음밖에 없다" 무덤서 깨우친 원효 [백성호의 한줄명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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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바깥에 법이 없다(心外無法).”

#풍경1

34세의 원효는 당나라 유학이 좌절됐습니다.
고구려를 거쳐 요동까지 갔으나
당나라 입국은 하지 못했습니다.
고구려 국경수비대에 붙잡혀 다시 신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원효 대사는 고구려 국경수비대에게 발각돼 당나라 유학이 좌절된지 11년만에 의상과 함께 다시 뱃길로 당나라행을 시도헀다. [중앙포토]

원효 대사는 고구려 국경수비대에게 발각돼 당나라 유학이 좌절된지 11년만에 의상과 함께 다시 뱃길로 당나라행을 시도헀다. [중앙포토]

 (中)원효는 왜 무덤 속에서 깨달았나…“마음 바깥에 법이 없다.”

그로부터 1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삼국의 치열한 쟁탈지였던 서해의 당항성을
신라가 차지했습니다.
당항성에는 중국으로 가는 항구(지금의 경기 화성)가 있습니다.
당나라로 가는 뱃길이 열린 셈입니다.

45세의 원효는 의상과 함께
다시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10년 세월이 흘렀지만 진리에 대한 원효의 갈망은
조금도 시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원효와 의상은 당항성으로 가다가
어두운 밤에 큰비를 만났습니다.
인가를 찾아 헤매다가 길가 언덕에서
땅막(땅을 파서 만든 토굴)을 겨우 찾았습니다.
얼른 들어가 비를 피하고
거기서 하룻밤 잠을 잤습니다.

원효 대사(왼쪽)와 의상 대사의 진영. 원효는 의상보다 8살 위였다. 의상 대사는 당나라 유학를 마치고 신라로 돌아와 화엄종을 열었다. [중앙포토]

원효 대사(왼쪽)와 의상 대사의 진영. 원효는 의상보다 8살 위였다. 의상 대사는 당나라 유학를 마치고 신라로 돌아와 화엄종을 열었다. [중앙포토]

이튿날 아침에 일어난 원효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곳은 그냥 땅막이 아니라 무덤 안이었습니다.
그때가 장마 철이었까요.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습니다.
두 사람은 무덤 안에서 하룻밤을 더 보내야 했습니다.

#풍경2

첫날밤, 땅막 안에서 원효는 단잠을 잤습니다.
이튿날 밤은 달랐습니다.
무덤 안이라는 걸 안 원효는 밤에 자꾸 귀신 생각이 났습니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요.
만약 우리에게 무덤 안에서 하룻밤을 자라고 한다면
밤새 그런 생각에 뒤척이지 않을까요.
찝찝한 생각에 숙면을 취하기가 힘들지 않을까요.

신라의 수도 경주에는 황룡사라는 거대한 사찰이 있었다.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지만, 전각의 주춧돌만 봐도 당시 사찰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진 경주시]

신라의 수도 경주에는 황룡사라는 거대한 사찰이 있었다.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지만, 전각의 주춧돌만 봐도 당시 사찰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진 경주시]

원효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지난밤에는 땅막이라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오늘 밤은 무덤이라 귀신의 장난에 잠을 잘 수가 없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땅막과 무덤은 분명 하나의 장소인데,
어젯밤은 왜 번뇌가 없었고
오늘 밤은 왜 번뇌가 생겼을까.
그건 대체 무엇 때문일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지 않았을까요.
원효는 마침내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대각(大覺ㆍ큰 깨달음)을 이룹니다.
죽음의 공간인 무덤 안에서
원효는 오도(悟道ㆍ진리를 깨달음)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 나고(心生卽 種種法生)
 마음이 멸하면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니다(心滅卽 龕墳不二)
 삼계는 오직 마음이요, 만법은 오직 앎이라(三界唯心 萬法唯識)
 마음 바깥에 법이 없으니 무엇을 따로 구하리오. (心外無法 胡用別求)”

원효 대사가 '금강삼매경'에 주석을 단 금강삼매경론의 표지.

원효 대사가 '금강삼매경'에 주석을 단 금강삼매경론의 표지.

원효는 깨달았습니다.
땅막 때문에 잠을 잘 잔 것도 아니고,
무덤 때문에 잠을 설친 것도 아니구나.
둘 다 마음 때문에 그리된 것임을
원효는 크게 깨쳤습니다.

이건 그저 땅막과 무덤에 국한되는
깨달음만은 아닙니다.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아는 순간,
번뇌와 보리(菩提ㆍ깨달음의 지혜)가 둘이 아니고,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님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원효에게는 그 모두가 통하는
마음 하나만 남습니다.

원효는 그걸 “일심(一心)”이라고 불렀습니다.

원효 스님이 수행자의 마음가짐에 대해 설한 '발심수행장'. [중앙포토]

원효 스님이 수행자의 마음가짐에 대해 설한 '발심수행장'. [중앙포토]

우리의 일상에도
온갖 파도가 칩니다.
슬픔과 기쁨, 괴로움과 즐거움의
파도가 수시로 몰아칩니다.
그때마다 우리의 삶은
출렁거립니다.
솟구쳤다 가라앉고, 솟구쳤다 가라앉으며
우리는 멀미를 합니다.

원효는 그 모든 파도가 실은
하나의 바다임을 깨쳤습니다.
슬픔의 파도든, 기쁨의 파도든
그게 실은 하나의 바다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걸 “일심(一心)”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아무리 희로애락의 파도가 몰아쳐도
원효의 바다는 그저 고요할 뿐입니다.

#풍경3

이쯤되면 아쉬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니, 원효의 깨달음 일화에서
왜 해골물 이야기가 안 나오지?
이런 물음표를 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임간록'에는 원효 스님이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화가 수록돼 있다. 반면 '송고승전'에는 해골 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셨다는 기록은 없다. [중앙포토]

'임간록'에는 원효 스님이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화가 수록돼 있다. 반면 '송고승전'에는 해골 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셨다는 기록은 없다. [중앙포토]

그건 기록에 따라서 좀 다릅니다.
『송고승전』에는 땅막이 아니라 무덤임을 알고서 깨쳤고,
『종경록』에는 시체 썩은 물을 마시고 깨쳤고,
『임간록』에는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깨쳤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원효의 깨달음, 그 핵심은
해골바가지가있느냐, 없느냐에 있지는 않습니다.
쏟아지는 비를 피하고 곤히 잠을 청했던 평온한 마음과
밤새도록 귀신 생각에 잠을 설쳤던 번뇌의 마음이
본질적으로 하나의 마음(一心)임을 깨달은 겁니다.
그게 원효의 깨달음입니다.

‘일심(一心)’을 뚫은 원효는 달라집니다.
그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가 되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됩니다.

왜냐고요?
그는
무덤과 땅막,
삶과 죽음,
그물과 바람이
둘이 아님을 깨쳤으니까요.

원효 대사는 경주 분황사에서 불교의 숱한 경전을 깨달음의 안목으로 풀어냈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중앙포토]

원효 대사는 경주 분황사에서 불교의 숱한 경전을 깨달음의 안목으로 풀어냈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중앙포토]

원효는 여덟 살 아래인 의상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나라로 가지 않겠다.”
10년 넘는 세월을 기다렸던 당나라 유학을
원효는 기꺼이 포기합니다.
당나라 유학에서 얻고자 했던걸
이미 얻었기 때문입니다.

의상은 배를 타고 당나라로 갔습니다.
훗날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의상은
신라 화엄종의 개조(開祖)가 됐습니다.

원효는 다시 신라의 서라벌(경주)로 돌아갔습니다.

〈'백성호의 한줄명상'은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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