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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감옥 갈 각오, 엄마 몰래 봤다" 병원 잠입한 어느 딸의 통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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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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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대구 북구에 이번 설에 고향 방문 자제를 요청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현수막을 볼 수 있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대구 북구에 이번 설에 고향 방문 자제를 요청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현수막을 볼 수 있다. [연합뉴스]

회사원 정모(36)씨는 다가오는 설에 부산 부모님께 갈지 말지 망설이고 있다. 오미크론 때문이다. 어머니(61)는 "오미크론 심한데, 오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아내는 "위험한데 굳이 가야 하느냐"며 안 갈 태세다. 정씨는 "며느리 마음이야 그럴 테지만 웬만하면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추석에는 부산에 갔다 왔고 그 전의 명절에는 가지 않았다. 매년 서너 번 넘게 부산에 갔으나 코로나19 이후에는 통틀어서 두 번에 그쳤다. 부모님이 가끔 역귀성 하거나 평소에 상경하지만, 수도권 코로나19가 심각하자 발길을 거뒀다. 정씨는 "부모님이 속으로는 '그래도 잠깐 왔다 갔으면'하고 바랄 텐데…"라고 말끝을 흐린다.

이번 설은 2020년 1월 2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다섯 번째 맞는 명절이다. 오미크론 때문에 여느 때보다 위험성이 높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24일 담화문에서 "이번 설에 모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고향 방문을 자제해 주시라고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경기·대구·전북·완도·장흥 등 지자체도 귀향 자제를 호소한다. 일부 지자체는 ‘불효자는 옵니다’ ‘며늘아 이번 설은 너희 집에서 알콩달콩 보내렴’ 등의 현수막을 지난해 추석과 이번 설에 내걸었다.

명절마다 준동하는 코로나19.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명절마다 준동하는 코로나19.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20년 추석, 지난해 설·추석에도 코로나19는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추석(10월 1일) 2주 전부터 신규 확진자가 오름세를 유지했다. 설(2월 12일)에도 가라앉지 않았다. 지난해 추석 이동 여파로 신규 확진자가 38% 증가했다. 이번 설은 예년보다 더 부모·자식, 형제의 만남이 얼어붙을 듯하다. 경기도 조사에서 드러난다. 경기도가 지난 15일 여론조사기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경기도민 1000명에게 고향·친지 방문이나 여행계획이 있는지 조사했더니 53%가 없다고 했고, 취소하거나 그럴 예정인 응답자가 22%였다.

부모방문 빈도 3분의 1로 줄어

3년마다 시행하는 노인실태조사를 분석하면 부모·자식의 왕래는 점점 줄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가 촉매 역할을 한다. 2020년 거의 매일 부모를 방문하는 비동거 자녀의 비율이 2.5%이다. 2011년 9.6%에서 약 4분의 1로 줄었다. 주 2~3회 방문 자녀 비율도 15.1%에서 3.5%로, 주 1회는 23.9%에서 10.9%로 떨어졌다. 반면 분기에 1~2회는 14.5%에서 30.4%로, 연 1~2회는 4.2%에서 17%로 늘었다. 손자녀의 조부모 방문도 줄었다.

7000여 곳의 요양병원·요양원 노인 38만여 명에게 이번 설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 같다. 손을 잡거나 안을 수 없다. 유리창이나 비닐을 사이에 두고 비대면 면회만 가능하다. 면회 가는 자녀도 줄어들 것 같다. 대구 달서구 상록수요양원 김후남 원장은 "귀향하는 자녀가 많아야 형제·자매가 부모님 면회를 오는데, 이번 설은 발길이 뜸할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요양원이 설날 연휴 면회 예약을 받았더니 입소자(140명)의 20~30%만 신청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입소자의 30%는 연휴에 집에 갔고, 50%는 가족이 면회 갔고, 아무도 안 오는 노인은 20%에 불과했다.

요새는 다른 도리가 없어서 자녀들이 보낸 동영상을 틀어준다. 그런데 동영상을 보내는 자녀도 10명이 안 돼 요양원 측이 어르신의 모습을 찍어서 자녀에게 보낸다. 고육지책이다. 가족과 단절되면 스트레스가 크게 올라간다고 한다. 상록수요양원에 입소한 지 4년째를 맞는 70대 후반 여성 환자는 하루에도 수차례 고함을 친다. 어떨 때는 손으로 벽이나 침대를 친다. 직원이 달려가면 그친다. 뭘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김 원장은 "찾아오는 가족이 끊겨서 그런지 사람이 그리운 듯하다"고 말했다.

비동거 자녀 왕래 빈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비동거 자녀 왕래 빈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딸이 병원 잠입해 노모 만나기도

설이 다가오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자식들의 애절한 사모곡이 줄을 잇는다.

"어느 날 새벽 KF94 마스크 두 장을 끼고 온몸에 소독제를 바르고 병원에 몰래 숨어 들어가서 엄마를 보고 온 적도 있습니다. 들키면 감옥 갈 각오로 갔습니다. (중략) 서로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자식이 약이었나 봅니다. 회복이 빨라졌습니다."

"4인 식사가 가능하다면 요양원도 일부라도 대면 면회가 될 수 있도록 청원 드립니다. 2년 동안 한 번도 생활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고연령이라 위험도가 높아 그렇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건 너무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식들은 "1인실에서 따로 대면 면회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방역 당국은 요지부동이다. 요양병원·요양원 환자가 고위험군인 데다 오미크론 폭풍을 앞두고 항변해봤자 통할 리 없다.

17일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직접 뵙고 싶습니다'라는 청원을 올린 자녀는 "2020년 설 이후 대면면회·외출·외박을 비롯해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 증세(치매)가 점점 심해지는데 가족을 알아볼 때 만나고 싶다"며 "사실상 감옥이랑 다를 바 없는 처사가 너무하다"고 호소했다. 자식이 특효약이라고 하는데, 이번엔 쓸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