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동호의 세계경제전망

소득·일자리 양극화, 미·중 경제전쟁 후폭풍 커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한국 경제 둘러싼 5대 관전 포인트

새해 글로벌 경제의 관전 포인트는 다섯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드러낸 것들로, ▶일본의 임금 고민 ▶일자리 양극화 ▶애플의 위력 ▶전략물자 확보 전쟁 ▶금리 인상 여파다. 시간과 공간의 벽을 넘는 세계화와 디지털 경제의 여파로 전 세계가 동시에 영향을 받고 함께 고민하는 현안들이다.

주요국의 최근 경제 현안

주요국의 최근 경제 현안

1. 일본에서 임금 못 올리는 이유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일본 기업은 왜 임금을 올리지 않나?’라는 제목의 분석기사를 게재했다. 급여를 올려주면 법인세 공제 한도를 40%까지 높여주겠다고 해도 호응하는 기업이 거의 없다는 내용이다. 일본의 임금은 1991년 버블경제가 붕괴한 뒤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코로나 여파로 양극화 민낯 드러나
빅테크가 임금 격차 더 크게 벌여놔
애플의 힘은 미국의 혁신능력 증명
미국 리쇼어링, 일본 수출통제 강화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30년째 5조 달러 주변에 머물고 있다. 2010년에는 중국에 세계 2위 경제대국 자리를 내주더니 지금은 중국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경제 성장이 멈췄다는 것은 결국 기업의 성장과 투자는 물론 고용 여력과 임금 지불 능력도 제자리에 멈췄다는 의미다.

그래서 역대 일본 총리의 최대 관심사는 기업의 임금 인상이다. 기업인을 만날 때마다 임금을 올려주라고 간곡히 호소한다. 하지만 일본 기업은 꿈쩍도 안 한다. NYT는 도쿄의 한 대형 양복점에서 그 ‘비밀’을 새삼스럽게 다시 확인했다. 100년 넘게 가업을 이어온 이 양복점은 자동화된 재고관리 시스템을 설치하고 종업원을 재교육하면서 공장을 업그레이드해왔다.

하지만 이 양복점 사장은 “임금 인상은 양복점 경영에 치명적”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고객과 시장을 더 확보하지 못해 간신히 유지하는 상황에서 임금 인상은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종신고용의 관행이 깊은 일본에서 사람은 자르지 않지만, 임금 인상은 터부가 된 이유다. 매출이 늘고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는 한 임금을 올릴 수 없다. 반면교사가 되기에 충분하다.

빅테크는 기술 발전과 생활 편의를 가져왔지만, 소득과 일자리 격차를 가속하고 있다. 빅테크가 사람을 위해 일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인간과 기술의 공존이 지속될 수 있다.

빅테크는 기술 발전과 생활 편의를 가져왔지만, 소득과 일자리 격차를 가속하고 있다. 빅테크가 사람을 위해 일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인간과 기술의 공존이 지속될 수 있다.

2. 일자리 양극화 가속하는 빅테크

임금 문제는 결국 일자리 양극화와 직결된다. 코로나가 일자리 양극화의 민낯을 드러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팬데믹이 근로자들에게 더는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지 말라는 경종을 울렸다”고 진단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4개 선진국에서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임금 성장은 기업의 생산성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와중에 팬데믹이 터지면서 재택근무가 일상화하고 이주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근로자 부족사태가 발생했다. FT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저임금 근로자들은 정당하게 임금을 받지 못한 걸 자각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회사로 복귀하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일자리 부족이 극심해졌다. 특히 근로자 대사직(great resignation)은 미국에서 극심하다. 지난해 11월에는 450만 명이 일을 그만둔 것으로 집계됐다. NYT는 “새해 들어 위드 코로나에 익숙해지면서 근로자들이 돌아오고 있지만, 여전히 대사직 직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예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도 분다. 미국의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에는 ‘취업반대’(antiwork) 인증자들이 북적대고 있다. 저임금을 받느니 실업급여나 받으면서 창업 등 다른 일을 찾아보려는 청년들이 많아지면서다. 결국 미국에선 임금 인상 붐이 일어나고 있다. 인력 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일손 확보를 위해 근로자 처우 개선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여파로 일자리에 복귀하는 근로자가 늘어나면서 팬데믹 직후 15%까지 치솟았던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해 12월 3.9%까지 떨어졌다. 한때 2000만 명을 넘어섰던 실업자가 속속 일터로 복귀하면서 실업자 수도 급격히 떨어졌다. 특히 팬데믹을 계기로 라이더를 포함한 플랫폼 노동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임금이 계속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4차 산업혁명에 부합한 혁신 기술과 역량을 갖지 못했거나 생산성이 낮은 사양산업에 종사한다면 임금도 늘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용회복 계속되는 미국 경제

고용회복 계속되는 미국 경제

전문가들은 세계화와 기술 혁신으로 기업이 갈수록 숙련된 소수의 근로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몰아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능한 사람이 임금을 더 많이 차지하는(winner takes most) 현상이다. MIT대 노동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는 NYT 인터뷰에서 “기술 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우리는 기술이 사람을 위해 일하도록 사회 제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3. 애플 앞에 초라한 도쿄·런던 증시

임금 문제는 결국 기업의 경쟁력과 연결된다. 일본과 영국의 언론 매체들은 애플의 위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애플 시가총액 3조 달러는 도쿄증권거래소 1부의 절반에 육박한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세계 증시 비중도 5%로 쪼그라들었다. FT는 “애플 3조 달러는 FTSE 대표 주 100종목을 웃도는 가치”라며 “런던이 글로벌 금융센터로서의 체면을 구겼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영국도 기업들이 배당에만 치중하고 리스크를 회피하는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야 기업의 투자의욕이 살아나 애플 같은 대형 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주문했다.

충격과 위기감에 빠진 일본은 60년 만에 도쿄증시 전면 개편에 나선다.오는 4월 4일부터 기존 1부·2부·자스닥·마더스 등 4개 증시를 프라임·스탠더드·그로스 등 3개로 재편한다. 상장과 퇴출 기준을 강화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려는 충격 요법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 기업의 평균 시가총액은 미국·유럽 기업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며 “애플 같은 강력한 기업이 나오지 않으면 개편 후에도 전망은 밝지 않다”고 내다봤다. 일본은 시가총액이 1980년대 말 미국을 앞지르며 미 경제를 삼킬 듯 위력을 떨쳤다. 그러나 기업 경쟁력이 뒤처지면 국가 위상이 어떻게 되는지 일본의 쇠락이 보여주고 있다.

4. 전략물자 확보와 디커플링 가속

요소수 사태 같은 문제는 한국만의 걱정이 아니다. 미국·유럽연합(EU)은 물론 일본에서도 미·중 무역 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디커플링’(분리)에 대비하는 움직임이 가속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달 중 ‘경제안전보장추진법안’을 중의원에 제출한다. 이 법안은 2019년 7월 한국 첨단 제조업의 숨통을 조였던 수출 통제보다 더 강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NHK는 그 주요 내용이 ▶수출 통제 강화 ▶특허 비공개 ▶비밀취급 인가제도 도입 ▶신흥기술 수출 통제 등 4대 방안이라고 소개했다. 일본 기술의 해외 유출을 사실상 원천봉쇄한다는 방침이다.

일본은 그동안 전략물자 확보를 위해 중국에 진출한 자국 기업의 리쇼어링에 초점을 맞춰왔으나 이 법안을 제정해 반도체·배터리·의약품 등의 자국 내 생산을 강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 같은 변화에 따른 불안감도 존재한다. 니혼게이자이는 아키타(秋田) 현에 본사를 둔 도코(東光)철공의 현장 분위기를 스케치했다. 산업용 드론을 제조하는 이 회사 부사장은 “모터 같은 범용 부품조차 중국제라는 이유로 심사가 까다로워지면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의욕이 넘치는 분위기다. 중국과의 기술 전쟁이 불가피한 만큼 차제에 미국 내 생산 능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자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NYT는 “중국으로부터의 미국 기업 리쇼어링이 활발해지면,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기 전 1700만 명에 달했다가 2010년 무렵 1150만 명까지 줄어들었던 제조업 일자리가 다시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금리 내리는 중국

금리 내리는 중국

물가 오르는 일본

물가 오르는 일본

5. 인플레와 금리 인상 파문 확산

코로나 충격과 공급망 대란 여파로 미국에선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가 40년 만에 최대치를 찍었다. 일본조차 1980년대 이후 처음으로 올 1분기 소비자물가 2% 현실화 가능성이 커졌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전격적으로 금리 인상을 앞당길 것으로 보이자 달러가 급등하면서 수입물가가 치솟은 여파다. 중국은 지난해 3분기부터 경제 체력이 급격히 약화하면서 올해는 5% 달성도 어려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금리 인상 여파로 미 나스닥의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세계 증시가 연초부터 급락세를 보인다. 코스피 지수는 어느새 2700도 위태롭게 됐다. 과거 어느 때보다 글로벌 경제 지형이 급격히 요동치는 한 해가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