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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30대 탈북민은 왜 다시 북으로 넘어 갔을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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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장·탈북여성 1호 박사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장·탈북여성 1호 박사

30대 탈북민 김모씨가 지난 1일 강원도 동부전선 군사분계선(MDL) 철책을 넘어 월북했다. 2020년 11월에 탈북한 그가 불과 1년여 만에 월북한 배경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임대료와 보험료 등이 몇 달째 밀려있었고 이웃 간에 교류도 거의 없이 고립된 생활을 했다고 한다. 2019년 8월 아사 상태로 발견된 한성옥·김동진(당시 6세) 모자도 임대료와 각종 공과금이 몇 달째 밀려있었다.

대량 탈북 사태가 벌어진 1990년대 말부터 탈북민의 대량 입국이 시작된 이래로 탈북민들은 지금도 한국사회 정착에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최우선 과제가 되면서 상황이 더 나빠졌다. 북한 정권의 눈치를 보는 저자세 대북정책 기조가 고착됨에 따라 탈북민을 대하는 시선이 싸늘해졌고 많은 탈북민이 생활고를 호소할 지경이다.

통일부 일방 주도 방식은 바꾸고
선·후배 탈북민 자활 체제로 가야

최근 조사에 따르면 탈북민의 고독사는 4배 이상 증가했고, 극단적 선택은 한국인 평균보다 3배 이상 높다. 탈북민이 한국사회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일자리다. 그러나 탈북민의 실업률은 20%로 한국인 평균 실업률보다 6배나 된다. 대부분의 탈북민은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취업에 성공한 경우도 이직이 잦다. 남북한은 정치 체제, 경제 시스템, 언어와 문화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단기간 직업훈련 및 교육만으로는 취업과 적응에 어려움이 많다.

탈북민은 한국사회에 아무런 연줄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취업은 사회적 연결망을 만드는 통로 역할을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정규직은 고사하고 일용직조차 얻지 못한 탈북민은 박탈감과 절망감을 느끼고 사선을 넘어온 북녘으로 다시 떠밀리고 있다.

필자는 탈북민으로서 자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며 탈북민들을 고용해 함께 일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에 따르면 정착 초기의 탈북민은 같은 탈북민이 운영하는 기업이나 탈북민들이 많이 모여있는 기업에서 일할 경우 존재감·소속감 등 심리적 안정을 얻기 쉽다. 앞서 정착한 선배 탈북민들이 터득한 다양한 경험을 전수하면 후배 탈북민은 한국사회를 더 빨리 이해할 수 있다. 탈북민들의 한국사회 적응에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탈북민들이 더 조기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하려면 탈북민 커뮤니티와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세계 각국의 이민과 난민이 모여드는 미국의 사례를 보면 난민과 이민 사회의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들이 미국 정부 시스템과 잘 연결돼 있어 효율적인 정착과 사회 통합을 유도하고 있다.

이제 탈북민 3만5000명 시대다.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서도 지역마다 탈북민 커뮤니티를 만들고 새로 입국하는 탈북민을 선배 탈북민이 맞이해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요령을 알려 주고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지금같이 정부가 탈북민 정착 및 지원 사업을 독점하는 방식보다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남북하나재단은 탈북민 정착지원 명목으로 책정된 세금 300억원 중 약 3분의 1을 직원 인건비로 쓴다. 탈북민 정착을 명목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지은 남북통합문화센터도 탈북민과는 상관없는 건물이 되고 있어 탈북민의 원성이 자자하다.

이제 탈북민 문제는 탈북민 공동체가 스스로 해결하도록 정책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통일부는 탈북민을 지원 대상에서 자활 대상으로 관점을 확 바꿔야 한다. 남북하나재단 이사장과 사무총장 등 재단의 인적 구성을 탈북민 80% 이상으로 교체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하나센터에는 정착에 성공한 10년 이상 된 탈북민을 전면 배치해 후배 탈북민에게 한국사회 경험을 전수할 기회를 줘야 한다. 이렇게 해야 탈북민의 충격적인 재입북 사건은 물론 아사·고독사·자살 같은 비극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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