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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음 읽기

꽃 피고 지는 것도 보시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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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임선기 시인이 최근 펴낸 신작 시집에 ‘음악’이라는 시가 실려 있다. 시는 이러하다. “초인종을 누르면/ 늦게 도착한 이에게도// 환히 켜지는 집.// 내려오는 계단 소리//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대화// 귀 쫑긋하고 듣는 채마밭”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경험은 아마도 있을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 바깥일을 하고서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온 식구를 맞이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초인종이 울리고 집에는 등이 곧바로 켜진다. 집 전체가 꽃송이처럼 활짝 핀 듯 환하다. 반기느라 계단을 서둘러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리듬처럼 일어난다. 그리고 이 집에서는 밤이 늦도록 반가운 대화가 선율처럼 흐르고 이어진다. 이 불빛과 이 말은 집에 늦게 도착한 사람이 살아가는 미래의 날에 오래 남아 마음에 한층 온기를 보탤 것이다. 가족 사이에서 뿐만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환대하는 일은 따뜻하고도 멋진 일이다. 어떤 환대에는 큰 감동에 눈시울을 적시게 되기도 한다.

사람을 환대하는 일은 근사한 일
꽃 피고 지는 것 보며 살라는 당부
가족 그리운 마음도 표현했으면

최근에 나는 시인 황청원 선생님으로부터 손으로 직접 쓴 편지와 함께 선물을 받았다. 선생님은 편지에 이렇게 적으셨다. “기쁜 일 많으라고 기쁠 이(怡) 자와 시 한 줄 쓰고 달과 집 그려 새겨 보내네. 사는 일, 시 쓰는 일 모두 눈부신 꽃이시게.”

전화를 드렸더니 요즘 기쁠 이(怡) 자가 마음에 들어서 새겼고, 시 한 줄도 함께 새겼다고 하셨다. 병세에 운신이 좋지 않아서 글씨는 선생님이 쓰셨지만, 나무에 새기는 일은 함께 사는 매제가 했고, 글씨에 색을 입히는 일은 누이가 했다고 하셨다. 서각을 한 나무는 집 마당에 살다 세상을 떠난 느티나무의 한 부분이라고 일러주셨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데도 불구하고 정성을 듬뿍 담아 보내온 이런 선물을 새해에 받고 나니 눈물이 핑 돌았다. 한 자 한 자 힘겹게 써내려가셨을 것을 생각하니 몸 둘 데를 모를 정도였다. 기쁠 이(怡)가 새겨진 나무에는 피는 꽃과 지는 꽃이 함께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꽃 피고 지는 것도 보시게.”라고 마지막으로 당부하셨다. 그 말씀은 너무 바쁘게만 살지 말고, 시절이 가는 것도 느끼면서, 고되고 바쁜 생활이지만 숨도 좀 고르면서 살라는 말씀일 것이었다. 그 말씀은 꽃 피면 꽃 피는 대로, 꽃 지면 꽃 지는 대로 받아들이고 평소에 늘 기쁜 마음을 잊지 말라는 말씀일 것이었다.

황청원 선생님의 시편들 가운데 ‘빈방-꽃과 나비 1’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는데, 이 시는 내가 참 좋아해서 때때로 애독하는 시이다. “내가 고요를 주마/ 너의 빈방 허허롭지 않게/ 필 데 없는 꽃들 들르거든/ 갈 데 없는 나비들 들르거든/ 돌멩이 단단하듯 사랑하고 살아라/ 더 비워져도 좋으니 고요하게 살아라/ 사랑도 고요가 필요할 때 있더라”

살면서 우리에겐 고요가 부족할 때가 아주 많다. 세상살이에 견디고 감당해야 할 일들이 그만큼 여러 가지로 많기도 하지만, 고요가 어색하고 고요가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시를 쓴답시고 사는 내게도 따지고 보면 한적한 때가 별로 없다. 한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가 있고, 참기 어려워 근질근질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 시에서 사람들에게 고요를 선물하겠다고 쓰셨다. 고요가 부족할 테니 이 신선한 공기의 고요를 받으라는 뜻이겠다. 그 고요로 마음의 방을 채워놓으면 꽃이며 나비가 더러는 들를 것이니 그때에는 꽃도 나비도 기쁘게 보라는 말씀일 테다. 필 데를 못 찾은 꽃과 갈 데 없는 나비를 환대하는 고요의 방이 꽃과 나비에게 의지처가 되게 하라는 당부이실 테다.

어제는 미국의 현대시인 조이스 젱킨스(Joyce Jenkins)의 시를 읽었다. 시인은 사랑의 감정에 대해 노래하면서, 사랑을 하는 순간에는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또 그때에는 내가 나를 발견할 수 있고, 어떤 빛을 감지하게도 되며, 내 곁에 그 사람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고도 했다. 이런 생각이 드는 때는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는 물론이고 누군가로부터 온정을 받을 때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이제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도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일이 마땅하지 않을 듯하다. 보고 싶은 얼굴을 멀리서 떠올리며 그리워해야만 할 것 같다. 온가족이 각처에서 모여들어 깨끗한 설빔으로 갈아입고, 차례를 지내고, 둥근 상 둘레에 앉아 떡국을 나눠 먹던 때가 더없이 그립다. 모두가 정이 그리울 테니, 모자라지 않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푸근하게 사랑의 마음을 나눴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