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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 이름이 김대중…너무 부담돼 다른 이름 쓰자 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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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설 개봉 영화 ‘킹메이커’로 처음 한 작품에 출연한 배우 설경구.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설 개봉 영화 ‘킹메이커’로 처음 한 작품에 출연한 배우 설경구.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극 중 공화당 선거전략가 이 실장(조우진)이 이런 대사를 해요. ‘당신이 김운범이 대의를 믿었듯이 저도 각하의 대의를 믿습니다’ ‘정의라는 게 원래 승자의 단어 아닙니까’ 무서운 말이죠. 서로 인정 안 하지만, 진영마다 대의가 있고, 그걸 정의로 만들기 위해 대립하는 과정이 선거인 것 같아요.”(설경구) “출신지로 차별받는 게 트라우마가 된 주인공 서창대가 오히려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네거티브 전략을 만드는 배후가 됐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죠.”(이선균)

1970년대 선거판을 되짚은 영화 ‘킹메이커’(감독 변성현)의 주연 설경구(55)·이선균(47) 말이다. 지난달 29일 개봉하려던 영화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설을 앞둔 오는 26일로 일정을 늦췄다. 그래서 3월 대선과 가까워졌다. 화상 인터뷰로 지난 18일 만난 설경구는 “완성은 2년 전 했는데 코로나로 개봉 시점을 못 잡았다”고, 지난 14일 만난 이선균도 “정치영화라기보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설 개봉 영화 ‘킹메이커’로 처음 한 작품에 출연한 배우 설경구와 이선균(아래 사진). “이선균은 흔들림 없는 배우”(설경구) “경구 형은 저의 롤모델”(이선균)이라며 두 사람은 끈끈한 호흡을 드러냈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설 개봉 영화 ‘킹메이커’로 처음 한 작품에 출연한 배우 설경구와 이선균(아래 사진). “이선균은 흔들림 없는 배우”(설경구) “경구 형은 저의 롤모델”(이선균)이라며 두 사람은 끈끈한 호흡을 드러냈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영화는 1970년 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경선을 전후로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참모이자 네거티브 선거전의 귀재 엄창록의 실화가 토대다. 두 사람이 모델인 정치인 김운범(설경구)과 선거전략가 서창대(이선균)가 처음 만난 1961년 강원도 인제 선거 승리를 시작으로, 1971년 김운범이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되기까지 10년을 다룬다. 설경구와 ‘불한당: 나쁜놈들의 세상’(2017)으로 칸영화제 심야상영 부문에 초청됐던 변 감독이 실화에 상상을 보태 각본을 썼다.

“옳다고 믿는 목적을 위한 옳지 않은 수단은 정당한가.” 변 감독이 던진 주제에 배우들은 노련한 연기로 생생한 인물을 새겨냈다. 급변하는 정치 상황과 당시 분위기를 되살린 미술·세트도 몰입을 거든다. 전반이 역사적 사건을 숨 가쁘게 좇는다면, 후반은 이선균의 감정연기가 관객을 빨아들인다. ‘기생충’(2019) 때보다 더 정밀한 연기다. 이선균은 “엄창록은 알려진 게 많지 않다. 이북 출신이란 것도 정확한 기록은 아니고 풍문”이라며 “변 감독과 거기에서부터 시작했다. ‘선거판의 귀재’ ‘선거판의 여우’라는데 왜 국민은 모를까. 이 양반이 왜 정면에 나서지 못했을지 감독님과 함께 만들어갔다”고 했다.

영화에서 서창대는 “똑똑하고 통찰력 있지만, 어린 시절 이북 출신 아버지가 ‘빨갱이’로 몰려 죽는 것을 목격한 트라우마가 있다”(이선균)는 설정. 이선균은 “(후일담 장면까지) 20~60대에 걸쳐 연기해야 하고, 시대에 맞는 톤을 찾는 게 숙제였다”며 “특히 서창대가 처음 김운범 선거본부에 나타나 자신을 달가워하지 않은 사람들을 제 편으로 만드는 장면의 부담이 컸다”고 했다. “감독님과 의논해 바닥에 드러눕는 쇼맨십부터, 말할 때 다른 사람과의 거리감, 속도감, 대사 높낮이까지 동선을 체크했다”고 돌이켰다.

설 개봉 영화 ‘킹메이커’로 처음 한 작품에 출연한 이선균.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설 개봉 영화 ‘킹메이커’로 처음 한 작품에 출연한 이선균.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설경구는 ‘불한당’ 때 이 영화 대본을 동시에 받았다고 한다. 당시 배역명이 ‘김대중’이었다. 설경구는 “너무 부담스러워 감독님한테 바꿔 달라고 했다. 원래 이름이었다면 연기도 실존 인물을 모사하려 했을 텐데, 바뀌면서 캐릭터도 중간 지점을 찾았다”고 했다. 지난해 개봉한 ‘자산어보’의 정약전, 영화 ‘나의 독재자’(2014) 속 김일성 대역배우 등 실존 인물을 빼닮은 연기도 여러 번 했던 그다. 이번 역할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모두가 아는 근현대사 인물이어서 부담감이 컸다”고 했다.

평소 “정치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설경구는 “김운범 역을 여러 의미에서 피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운범이란 캐릭터가 굉장히 외롭다. 영화를 보면 주도적으로 뭘 하는 것 같지만, 연설 빼곤 강렬한 대사가 없다. (서창대를 위해) 큰 판을 깔아주는 캐릭터지 감정의 기복이 있는 인물이 아니다”며 “변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연기했다”고 했다. 변 감독과 함께한 전작 ‘불한당’은 관객 100만이 채 안 됐지만, 공동 주연 임시완과 뜨거운 감정선으로 그를 ‘불혹 아이돌’로 부상시켰다.

데뷔 초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2000) ‘오아시스’(2002) 등 사실적인 연기로 출발한 설경구는 “변 감독을 만나 ‘영화적’ 재미도 알게 됐다”며 “제 생각과 반대 해석을 줄 때가 있다. 같은 감정인데 한번 꺾는다고 해야 하나. 변 감독과 다음 작품(넷플릭스 영화 ‘길복순’)까지 세 편을 함께하며 ‘아’ 할 때가 많다”고 했다. “영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죠. 그러나 연기의 기본은 놓치지 않죠. 이창동 감독님, 한양대 연극영화과 최형인 선생님, 극단 학전 김민기 선생님이 늘 하신 말씀이죠. ‘연기하(려 하)지 말라.’”

설경구·이선균이 처음 함께한 작품이란 점도 ‘킹메이커’의 볼거리다. 이선균은 데뷔 초부터 설경구를 ‘롤모델’이라 했다. “저한테 영향을 줬던 작품 안에 경구 형이 매우 많아요. 1994년 대학로 가서 ‘지하철 1호선’ 초연 때 경구 형을 보며 2시간이 행복했죠. 저런 연기하고 싶다, 하는 가이드가 돼주신 것 같아요. 리스펙트합니다.” 설경구는 “저는 기억을 못 했는데 이선균 씨는 제가 연극을 할 때 포스터 붙이는 것도 봤다더라”라고 돌이켰다. “저는 이선균씨를 공연 뒤풀이 때 만났는데 같이한 배우마다 그를 욕하는 걸 들은 적이 없어요. 실제로 보니 사람 자체가 쿨하고 흔들림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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