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만 2년 걸린 840쪽짜리 음악 이론서…“놀랍게 잘 팔린다”

『고전적 양식』의 저자인 고(故) 찰스 로젠. 음악 학자이자 피아니스트였다. [사진 풍월당]

음악학자 찰스 로젠(1927~2012)은 이야기꾼답게 장면 하나로 책을 시작했다. 22세의 베토벤이 수첩을 들고 고향을 떠나는 모습이다. 수첩에는 후원자 발트슈타인 백작의 메모가 있었다. “이제 빈으로 가서 오랫동안 좌절된 꿈을 펼치게. 하이든의 손을 통해 모차르트의 정신을 이어받게.”

하이든(1732~1809), 모차르트(1756~1791), 베토벤(1770~1827)은 서양 음악사에서 고전주의 삼총사다. 바흐로 대표되는 바로크 양식을 이어받아 낭만주의로 연결했다.

로젠은 1971년 미국에서 펴낸 책(『The Classical Style』)에서 고전주의를 파고들었다. “고전적 양식의 창조는 하나의 이상을 실현한 것이라기보다 상충하는 이상을 절충한 것에 가깝다. 최적의 균형점을 찾은 것이다.” 그는 극적 효과와 논리성의 결합을 성공시킨 하이든에서 시작해, 음악으로 문학의 수준을 뛰어넘은 모차르트, 18세기 전통을 거부하지 않은 채 양식을 유달리 확장한 베토벤까지 짚어나간다. 수많은 자료·악보·논의가 분석의 바탕이다.

이 책의 한국어판인  『고전적 양식』이 최근 출간됐다. 서양음악에서 한 시대의 양식을 정의하고 특성을 입증한, 그야말로 고전(古典)이다. 국내 음악대학에서 원서로 공부하던 책이다. 840쪽의 이론서로, 학술적이고 자세한 음악 분석이 빼곡하다. 책을 출간한 풍월당 측은 “판권 계약 후 출간까지 3년이 걸린 프로젝트”라고 소개했다. 번역에 2년, 교정·감수에 1년 걸렸다고 했다.

판매가 5만5000원에 내용도 꽤 어렵지만, 독자 호응이 좋다. 풍월당 최성은 실장은 “한 달여 만에 1300부 정도 판매됐다”며 “지적 자산을 남긴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연주자·연구가·청중이 책을 예상보다 더 반긴다”고 했다. 진지하고 체계적인 학술서인데도, 세 작곡가의 발전 과정을 추적하는 전개 방식으로 흥미롭다.

피아니스트 제러미 덴크는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의 스릴러를 읽는 듯 페이지가 넘어간다”(2012년 뉴요커)고 평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