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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알렸는데 美당국 끌려갔다…미중싸움에 삶 파탄난 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MIT의 첸강 교수. 스파이 누명을 썼다 최근 풀려났다. 사진은 MIT 홈페이지의 그의 공식 프로필 사진. 이젠 이런 미소는 잘 짓지 못한다고 한다. [MIT]

MIT의 첸강 교수. 스파이 누명을 썼다 최근 풀려났다. 사진은 MIT 홈페이지의 그의 공식 프로필 사진. 이젠 이런 미소는 잘 짓지 못한다고 한다. [MIT]

미ㆍ중 간 대립의 골이 깊어지면서 애꿎은 새우등 터지는 이들도 늘고 있다. 미국 명문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공학 박사 첸강(陳剛)이 대표적. 중국에서 1964년 태어나 10대를 보냈지만 20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온 뒤 시민권도 취득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를 친중이라고 의심하고, 중국은 그를 미국에 귀화한 배신자 취급하는 상황에 놓였다. 발단은 2020년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셴젠의 한 대학의 초청을 받았던 일이다. 귀국길에 그는 봉변을 당했다. 보스턴 로건공항에서 세관 및 국경 수비대 공무원들이 그를 따로 불러내 그의 노트북과 핸드폰을 압수한 뒤 “중국에서 진짜로 무슨 일을 한 거냐”고 묻기 시작한 것.

그는 “MIT 유학을 꿈꾸는 중국 학생들 및 현지 학자들과 연구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지만 약 1년 뒤인 지난해 1월, 체포됐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미 당국에 “미국 정부에 연구지원금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숨겼다”는 혐의였다. 그리고 약 1년 뒤인 올해 1월,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는 2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기자에게 “열심히 연구하고 우수한 (중국) 학생들을 MIT로 유치하려고 했을 뿐인데 결국 나는 스파이가 됐다”고 씁쓸함을 토로했다.

첸 교수를 인터뷰한 뉴욕타임스(NYT) 캡처 사진. 얼굴에 수심이 깊다. [the New York Times]

첸 교수를 인터뷰한 뉴욕타임스(NYT) 캡처 사진. 얼굴에 수심이 깊다. [the New York Times]

NYT에 따르면 그의 석방을 축하하기 위해 MIT 동료 교수들은 그의 연구실로 격려 및 응원 방문을 왔다고 한다. 일부는 그에게 “공동 연구를 하자”고도 제안했지만 첸 교수는 거절했다. “나와 엮이면 결국 또 스파이 누명을 쓸지 모를 일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WSJ도 첸 교수의 사연을 전하며 당시 미국 정부가 일부 중국계 및 지중(知中) 인사들에 대해 과도한 스파이 혐의를 적용해 무리한 수사를 했다고 지적했다. 2020년은 미ㆍ중 갈등이 첨예화하면서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틱톡 등 중국 기업에 대해 공개적으로 으름장을 놓았던 때였다.

2019년 미국과 중국이 무역 등 경제 분야에서 뾰족히 갈등하던 때.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일본에서 열린 G20정상회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신화망 캡처]

2019년 미국과 중국이 무역 등 경제 분야에서 뾰족히 갈등하던 때.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일본에서 열린 G20정상회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신화망 캡처]

학자 데이터베이스인 구글 스칼라에 따르면 첸 교수는 열전기(thermoelectric) 분야의 전문가다. 그런 그가 중국이라는 태생적 뿌리 때문에 후천적으로 선택한 모국인 미국에서도 스파이 혐의를 받고 있는 것. 아이러니컬한 것은 수학 교사였던 그의 부모는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마오저둥(毛澤東)에 의해 핍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부모는 중국에, 그걸 피해 미국에 이민 온 아들은 미국에서 피해를 입은 셈이 됐다. 그는 NYT에 “부모님이 (문화혁명에서) 숙청됐기에 나는 학자가 될 꿈도 꾸지 못했었다”며 도미(渡美) 동기를 설명했다.

그는 NYT에 “(미ㆍ중) 갈등이 더 심해질 게 뻔한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솔직히 모르겠다”며 “결국 (내가 당한) 이런 식의 조사는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면) 자살골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사람들은 정부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믿게 되어 있다”며 “하지만 이제 나는 아무도 절대로 믿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ㆍ중 패권 싸움이 한 학자의 삶을 파탄 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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