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난 김보름

중앙일보

입력 2022.01.25 16:10

업데이트 2022.01.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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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는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김보름. 남양주=강정현 기자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는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김보름. 남양주=강정현 기자

모든 게 어색했던 첫 올림픽, 기쁨과 눈물을 함께 얻었던 두 번째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간판 김보름(29·강원도청)이 환한 미소로 세 번째 올림픽을 준비한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매스스타트(400m 코스를 여러 명이 경쟁해 메달을 가리는 경기) 은메달리스트인 김보름을 25일 경기도 남양주시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보름은 2021~22 월드컵 시리즈 랭킹 8위에 오르며 2022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김보름은 "선수로서 올림픽이라는 무대를 세 번이나 출전하는 자체가 큰 의미다. 첫 번째, 두 번째 올림픽 못잖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김보름은 중2 때 빙상을 시작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그의 꿈은 컸다. 같은 대구 출신인 2006 토리노 올림픽 쇼트트랙 3관왕 진선유가 롤모델이었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다는 게 쉽진 않았고, 2010년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 종목 변경은 '신의 한 수'였다. 2014 소치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고,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큰 경험을 쌓았다.

김보름은 "내 인생 첫 도전이었다. 주변에선 무모하다고 했지만, 잃을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다행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소치에선 세계적인 선수들이 어떻게 경기하는지를 배운다는 생각만 했다"고 떠올렸다.

4년 뒤 평창 올림픽에서 그는 큰 아픔을 겪었다. 여자 팀 추월에서 동료 노선영을 일부러 뒤처지게 했다는 오해를 샀다. 대회 이후 문화체육관광부가 감사를 통해 의도적인 왕따는 없었다는 사실을 밝혔지만 이미 비난의 화살은 김보름을 향한 뒤였다. 그는 무거움 마음으로 나선 주종목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뒤 빙판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룬 쾌거지만, 축하해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런 논란이 없었다면 더 좋은 성적이 났을까'란 질문에 김보름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경기에 임했다. 경기 결과에 대한 안타까움은 없다"고 답했다. 이어 "물론 선수로서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이었지만, 은메달도 내게는 소중하다"고 했다.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김보름에 대한 오해는 많이 해소됐다. 김보름은 "그래도 내가 메달을 따낸 소중한 대회다. 힘든 일도 있었지만 감사한 무대였다"고 떠올렸다.

김보은 코로나19 탓에 2년 가까이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국내 훈련도 여의치 않았다. 쇼트트랙과 비슷한 매스스타트 특성상 경기 감각이 중요한데 되찾기가 쉽지 않았다. 20개월만에 나선 월드컵 시리즈에서 랭킹 8위에 오르긴 했지만 메달은 한 번도 따지 못했다. 김보름은 "예전보다 경기 속도가 빨라졌다. 선수들이 레이스를 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메달 도전이)쉽지 않다는 것도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매스스타트는 6400m를 달려야 한다. 힘과 체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고 한다"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김보름. [사진 대한체육회, 네이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김보름. [사진 대한체육회, 네이버]

올림픽에서 값진 메달을 따냈지만 김보름의 가슴엔 큰 상처가 남았다. 평창 대회 이후엔 어머니와 함께 심리 치료를 받기도 했다. 꾸준히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자신을 응원해주는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평창을 잊으려고도 했지만 생각이 났다"던 김보름은 "더 강한 마음으로 스케이트를 타게 됐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 김선옥씨는 "한 명이라도 너를 응원하면 달려야 한다. 엄마가 응원해주겠다"고 응원했다.

좌절 대신 다시 일어나는 것을 선택한 김보름의 가슴엔 스케이팅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지난해 월드컵 시리즈를 앞두고 직접 골랐다. "좋다가도 싫고, 싫다가도 좋은 게 스케이트다. 선수로서 고마움이나 감사함 같은 것"이라고 웃었다. 김보름은 "부담감을 가지면 더 긴장하고 몸이 굳는 편이다. 이번엔 목표를 설정하기보다는 후회하지 않는 경기를 하려고 한다. 그러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라고 했다.

일주일 뒤면 베이징으로 떠나는 그에게 가장 큰 응원단인 어머니에 대한 메시지를 부탁했다. "전화는 매일 해도 영상통화는 안 하는데…"라고 쑥스러워하던 김보름은 한참 있다 입을 뗐다. "엄마가 나를 위해서 노력해주신 만큼 이제는 내가 노력해서 앞으로 계속 웃을 수 있도록,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베이징 갔다와서 만나요." 누구보다 스케이트에 진심인 그를 우리 모두가 응원해줄 시간이다. 남양주=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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