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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위해 람보르기니 버렸다, 모닝 타는 '필드의 노랑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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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허인회, 육은채 부부. 가수 지망생이었던 육은채씨는 허인회를 만난 후 남편의 가방을 멘다. 김현동 기자

허인회, 육은채 부부. 가수 지망생이었던 육은채씨는 허인회를 만난 후 남편의 가방을 멘다. 김현동 기자

“평강공주와 온달 장군이요? 우리 오빠 바보 아닌데요.”

프로골퍼 허인회(34)의 부인 육은채 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 허인회가 바보는 아니다. 풍운아일 뿐이다. 한국 골퍼 중 가장 뛰어난 재능을 허비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경기했다. 드라이버 거리에 대한 욕심도 너무 많았다. 그는 “드라이브샷 거리를 재는 홀을 앞두고는 그 전 홀부터 어떻게 하면 더 멀리 칠 지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결정적인 건 연습을 안 했다는 거다. 그런 그가 육은채 씨와 결혼 후 변했다. 노랑머리 부부를 최근 만났다.

럭셔리카 4대, 슈퍼 바이크 2대 보유

2016년 군에서 제대한 허인회는 경차인 모닝을 타고 다녔다. 모닝은 실용적인 차지만. 부인과 함께 골프 투어를 다니기엔 좀 작았다. 허인회는 “당시 집이 없던 때여서 큰 짐 가방 두 개를 차에 넣으면 꽉 차서 드라이버 등 골프채는 구겨 넣어야 할 정도였다”고 했다.

허인회는 부잣집 아들이다. 자동차도 좋아했다. 아버지 도움도 받고 직접 번 상금으로 슈퍼카를 사서 대회장에 나왔다. 그는 한때 마세라티, 람보르기니, BMW M6, 벤츠 AMG C 63를 동시에 가지기도 했다. 오토바이도 야마하 R1 등 경주용 바이크 2대를 탔다. 그런 그가 경차를 타고 투어를 다녔다.

사연은 이렇다. 사업을 하는 그의 아버지 허천욱 씨는 축구 선수 손흥민의 부친처럼 운동선수는 여자친구를 절대 만나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허인회는 2014년부터 가수 지망생 출신인 육은채 씨를 몰래 만났다.

허인회는 장인 될 분에게 “제가 딸을 책임지겠습니다. 일본 투어에 나가는데 한 번 같이 가게 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해 어렵사리 허락을 받았다.

일본 여행 갔다가 딱 걸린 커플

정작 자신의 부모님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무서웠다. 그때 일본에서 우승했다. 일본 사진기자가 “따라다니는 여성이 누구냐”고 물어봐 “약혼녀”라 답했고 사진을 몇장 찍었는데 그 사진이 일본 신문에 나왔다.

허인회 부부. [허인회 인스타그램]

허인회 부부. [허인회 인스타그램]

일본에 있는 지인들이 “인회 약혼자가 예쁘던데 결혼은 언제 하느냐”고 허인회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허인회는 “아버지가 화가 많이 나셨다. 부모는 경기에 방해된다고 오지 못하게 하면서 여자친구를 데리고 다녔으니 화나실 만했다”고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허인회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아빠가 이렇게 반대하면 나는 무엇을 위해서 운동을 하느냐. 여자 친구도 안 만나고 골프도 안 치겠다”고 버텼다. 아들이 이겼다.

사건이 하나 더 있다. 육은채 씨가 군 시절 한 번도 빠짐 없이 매주 면회를 가니 부모님 마음이 누그러졌다. 제대 후 둘은 함께 살겠다고 했다.

그의 부친은 “결혼도 안 하고 같이 살면 모양이 좋지 않으니 혼인 신고를 먼저 하라”고 했다. 허인회는 “이미 했다”고 했다.

“호적 파 가지고 나가버려라”

허인회 부친은 “너희는 아비, 어미도 없느냐 호적 파 가지고 나가라”고 했다. 허인회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도움 필요 없고 은채랑 살겠습니다”고 했다. 아버지는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고 너는 안 준다”고 했다.

그때 모닝을 탔다. 육 개월 여 처가살이도 했다. 육은채 씨는 “남편 제대 직후라 대출도 안 됐다. 친정에서 준 혼수비용과 상금, 스폰서 계약금 등을 탈탈 털고 대출을 받아서 겨우 전세를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한참 후 허인회가 일본 대회에 나갔을 때 육은채 씨가 시댁에 찾아가 사과했다. 허인회는 “처가 공황장애가 있는데 그 무서운 시댁에 혼자 가서 인사를 하니 아버지가 용서해주셨다”고 했다.

최다언더파 재능, 한 홀 16타 오기

허인회는 걸물이다. 2014년 도신 토너먼트에서 28언더파로 일본 투어 최다언더파 기록을 세웠다. 나쁜 기록도 있다. 그해 일본 투어 한 홀에서 16타를 친 적도 있다.

허인회가 군인시절 육은채씨가 보낸 편지들. [JTBC골프 매거진]

허인회가 군인시절 육은채씨가 보낸 편지들. [JTBC골프 매거진]

우승 경쟁을 하다 파 5홀에서 2번 아이언으로 아일랜드 그린에 2온을 시도하다 거리가 조금 모자라 계속 물에 빠졌다. 순위가 50계단 떨어졌다. 허인회는 “순위가 밀려서가 아니라 2번 아이언으로 그 한 뼘을 극복하지 못해서 화가 났다”고 했다.

안전하게 돌아가면 안 될까. 허인회는 2016년 기자와 인터뷰 때 “인생의 마지막 경기가 아니라면 잘라가지 않겠다. 경기 때 잘라가고 돌아갈 거면 연습 때도 잘라가야 한다. 그러면 기가 빠진다. 골프는 운칠기삼이라고 하는데 난 기칠운삼이라고 본다”라고 했다.

중요한 순간 긴장감에 몸이 굳어 경기를 망치는 선수들이 있는데 허인회는 “긴장 좀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동차로 시속 330km, 오토바이로 300km로 달렸으니 골프 드라이버는 하나도 두렵지 않다. 긴장이 안 되어서 일부러 심장박동수를 늘리기 위해 제자리 점프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스트레칭은 1번 홀 걸어가는 걸로 충분”

2013년 국내 투어에서 두 번째 우승할 때다. 허인회는 연습 그린에서 퍼트를 몇 번 해 보고 나갔다. 우승 후 그는 “연습은 경기 날 아침이 아니라 평소에 해야 한다. 스트레칭은 1번홀 티샷 뒤 걸어가면서 하는 거로 충분하다”고 했다.

이 말 중 스트레칭 얘기는 진실이지만, 연습 얘기는 거짓이다. 그는 평소 연습을 하지 않았다. 겨우내 연습을 안 하니 매년 첫 두세 개 대회는 워밍업으로 생각했다.

허인회는 어릴 때 축구 선수를 했다. 최근 운동선수 축구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제대로 뛰지 못해 망신을 당했다. 그는 “달리기 자체를 10년 만에 했다. 군대에서도 배 아프다, 다리 아프다 핑계로 안 뛰었다”고 말했다. 당연히 웨이트는 안 한다.

허세도 있다. 허인회는 어려운 1번 아이언도 썼다. 마스터스 우승자인 일본 최고 선수인 마쓰야마 히데키와의 자존심 싸움 때문이었다.

허인회, 육은채 부부. [허인회 인스타그램]

허인회, 육은채 부부. [허인회 인스타그램]

그는 “평소 드라이버 거리가 비슷했는데 한 홀에서 마쓰야마가 아이언을 써서 내 거리와 비슷하더라. 기분이 나빠 한 동안 1번 아이언을 썼다”고 말했다.

“330km로 달려도 허전함 채워지지 않아”  

재능은 적지만 성실히 연습하는 선수들이 보면 허인회는 오만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는 우승 후 “원래 연습을 잘 안 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연습을 안 했기 때문에 우승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우승해 나도 신기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아직도 “연습 안 하고 볼 잘 치는 게 최고다. 누구나 일 안 하고 돈 벌거나, 연습 안 하고 골프 잘 치는 걸 원하지 않느냐"라고도 했다.

원래 그런 건 아니다. 허인회는 어릴 때 축구를 좋아했다. 아버지 영향으로 골프를 하게 됐는데 본인 결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릴 땐 연습을 열심히 했다. 천재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2006년 아시안게임 대표선발 규정이 갑자기 바뀌어 탈락하면서 흥미를 잃었다. 억지로 한 골프라 잘 안 될 때는 더 화가 났다. 허인회는 “슈퍼카를 타고 레이싱 트랙에서 달려도 허전함이 채워지지 않았다”고 했다.

허인회는 결혼식을 올린 2019년 성적이 나빴다. 허리가 아팠다. 일본 투어에서는 대부분 컷탈락했다. 국내 투어에서 받은 상금은 1600만원으로 113위였다.

상금 113위에서 살아난 허인회

게으른 천재의 새드 엔딩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매경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살아났다. 캐디를 맡은 부인 육은채씨의 도움이 있었다.

첫날 첫 홀 더블보기로 시작해 8번 홀까지 5오버파였다. 그 정도라면 그냥 끝난 대회다. 그런데 아내가 “오늘 이븐파로 마치면 용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허인회는 5연속 버디를 잡더니 결국 우승했다. 허인회는 “다섯 홀 연속 버디가 안 되는 어려운 홀인데 운 좋게 됐고 그러자 내 마음에 불이 붙어 우승했다. 이후 재미가 생겨 연습장을 가고 그다음 대회에서 3위를 하고 그다음 톱 10에 들고 하다가 또 풀어져서 연습을 2~3주 안 하니까 예선 탈락하고….”

지난해 GS칼텍스 매경오픈 우승 재킷을 입은 허인회와 캐디를 맡은 부인 육은채씨. 김현동 기자

지난해 GS칼텍스 매경오픈 우승 재킷을 입은 허인회와 캐디를 맡은 부인 육은채씨. 김현동 기자

허인회는 육은채 씨를 만나면서 마음속 허전함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서 가방 엄청 무거운데도 부탁했다. 와이프가 캐디해서 안 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지만 오기로 이겨내려고 했다. 우리가 함께 해내고 싶었다. 결국 지난해 우승을 해냈다”고 했다.

육은채 씨도 “남편과 다니면 캐디백이 무겁지 않다”고 했다.

“오빠 오늘 쉴거야?” 물으면 스트레스

허인회는 요즘엔 연습도 한다. 육씨는 “오빠는 다른 사람이 연습 얘기하면 신경 안 쓰는데, 내가 ‘오빠 오늘 쉴 거야’라고 물으면 스트레스 받더라. 피곤해 보여서 묻는 건데도 그런다. 오빠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연습장에 간다. 아침 열 시에 가서 저녁 열 시에 온다”고 했다. 예전에 비하면 100배도 넘는 연습량이다.

무모함도 줄었다. 육은채 씨는 “매 경기 한 두 홀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치다가 벌타를 받거나 더블보기를 해 한 두 타 차로 컷탈락하더라. 그래서 일단 예선에서는 지르지 못하게 하고 예선 통과하고 나면 마음대로 하게 놔둔다”고 했다.

허인회는 “요즘은 코스 변별력이 떨어져 공격적인 경기가 별로 유리하지 않아 좀 더 신중하게 경기한다”고 했다. 예전엔 변별력 상관없이 공격하던 그다. 드라이버 1등에 목을 매지도 않는다. 지난해 평균 드라이버샷 거리는 13위(293야드)였다.

드라이버를 멀리 치고 퍼트감도 뛰어난 천재도 나이를 느낀다. 그는 “예전엔 한 달 연습을 안 해도 다시 감 잡는데 한 시간 정도면 충분했다. 요즘은 한 달 연습 안 한 적 없지만, 만약 그랬다면 다시 감 찾는데 한 일주일은 걸릴 것 같다”고 했다.

“더 이상 드라이버 1등에 목 매지 않아”

골프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육 씨는 “오빠가 골프를 치고 싶은 적도 없고 골프에 대한 꿈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결혼하면 골프 하지 말고 다른 거 하자고 했다”고 회고했다.

허인회는 “투어 카드를 잃을 위기가 왔을 때 느꼈다. 내가 싫어서 안치는 것과 자격이 안 돼 못 치는 것과는 다르더라. 장인께서 '스트레스가 많으면 골프를 접어두고 내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까지 하셨을 때 내가 골프를 치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허인회, 육은채 부부. [허인회 인스타그램]

허인회, 육은채 부부. [허인회 인스타그램]

그는 또 “마음대로 안 되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골프만큼 재미있는 운동이 없다. 또 나이 들면서 돈 버는 게 어려운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조금 잘하면 1년에 몇 억 원 벌 수 있는, 골프 같은 것이 거의 없더라”고 했다.

육은채 씨는 “예전에는 오빠가 자동차나 명품을 좋아했는데 행복의 기준이 바뀌었다”고 했다. 허인회는 “예전엔 큰 바다였다면 지금은 작은 강이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더 노력해서 유럽투어도 가고 미국 투어도 가라고 하는데 결혼을 하면서 목표는 낮아졌다. 그냥 나는 가늘고 길게 시니어 투어까지 죽을 때까지 골프를 치면서 은채와 놀고 싶다”고 했다.

“남자는 세상을, 여자는 사랑을 선물”

평강공주 같은 현명한 캐디 육은채 씨가 허인회에겐 한 라운드 몇 타 도움이 될까. 허인회는 “내 인생 가치관이 달라졌으니 이건 몇 타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해 매경오픈에서 우승하고 컵에 입을 맞추는 허인회, 육은채 부부. [사진 매일경제]

지난 해 매경오픈에서 우승하고 컵에 입을 맞추는 허인회, 육은채 부부. [사진 매일경제]

육씨는 “경기 잘 안 풀려도 ‘오빠,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면서 풀자. 다들 힘든데 그래도 우린 행복한 거 아니냐’ 그렇게 얘기한다”고 했다. 허인회는 “그 한 마디에 에너지가 올라간다. 내일 잘 치고 못 치고가 아니라 내 인생 자체의 에너지가 다시 끓는 것이다. 그 도움을 골프 몇 타로 표현하기엔 너무 미미하지 않나”라고 했다.

부부는 “남자는 여자에게 세상을 선물했고, 여자는 남자에게 사랑을 선물했다”는 영화 문구를 얘기했다. 딱 자기들 얘기라면서.

참고로 허인회, 육은채 부부는 요즘엔 벤츠를 탄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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