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송호근의 세사필담

첫 발자국

중앙일보

입력 2022.01.2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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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첫 발자국만큼 가슴 설레는 말이 있을까. 눈 덮인 오솔길에 찍힌 첫 발자국, 그걸 따라 난 종종걸음 흔적은 미지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 발자국의 주인공은 봄을 그리며 겨울을 나고 있을 거다. 갓난아기의 첫걸음은 가족의 환호성과 함께 추억에 접혀 있다. 삼십이립(三十而立)을 향한 대장정의 첫발을 누가 잊으랴.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호는 태양계 바깥 담장에 도달했다. 지구에서 228억 ㎞란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첫발을 내디딘 건 1987년, 필자가 30대 초반의 일이다. 그 설렘과 벅찬 감동을 가슴 한 켠에 지피며 35년 세월을 지냈다. 그해 6월의 함성은 귀에 쟁쟁하다. 절대 권력이 물러갔다! 낯선 민주주의는 곧 오랜 친구처럼 친숙해졌다. 민주화의 공신인 노조, 학생운동권, 재야(在野)가 민주주의의 운동장에 결집했다. 새로운 세상을 펼칠 전위부대는 듬직했다. 35년이 지난 지금 그 설렘은 사라졌다. 노조는 이익동맹의 전초부대가 됐고, 학생운동권은 이념정치를 이식했고, 재야는 고인이 됐거나 뒷방에 물러앉았다.

민주화 35년, 이립을 지나 불혹
첫 발자국의 설렘과 감동은 실종
정권은 리바이어던의 족쇄 풀어
시민 양심에서 생동력 분출될 것

민주주의의 성숙에는 지성의 훈수와 양심 훈련이 필요하다. 민주화 초기 15년 동안은 긴장이 있었다. 그런데 지성적 설계도를 고뇌할 대학은 시대적 과제를 포기했다. 대학은 교육부 감시에 갇혀 학력발급과 논문제작에 여념 없는 소인 왕국이 됐다. 신문고 민원으로 들끓는 광장에서 종교는 성찰의 종을 울리지 않는다. 무릎 꿇고 고백하고 싶은 성인은 사라졌다. 언론은? SNS제국 한국에서 언론의 사망선고는 시간문제다. 대학, 언론, 종교가 권위를 반납한 사이 시민단체는 이익투쟁에 여념이 없고, 정권은 개혁푸드숍을 신장개업하고 재빨리 팔아치운다. 우리가 이런 걸 원했었나? 그 해 첫 발자국은 어디로 향했을까. 첫 발자국을 이은 종종걸음은 어디서 끊어졌을까.

올해로 민주화 35년, 짧은 세월이 아니다. 무소불위 국가와 정권의 의기투합을 응징하는 것이 민주화의 요체라고 믿었다. 시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정권이 국가연(然)하는 것을 감시하면 민주주의는 활짝 개화하리라 믿었다. 그런데 첫 발자국의 설렘은 무거운 신음으로 가라앉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일곱 차례의 정권은 대체로 국가였다. 문재인 정권에서 그 절정에 달했을 뿐이다.

민주화 35년 여정이 도달한 지점이 그렇다. 정권은 국가의 마스크를 쓰고 리바이어던(Leviathan)의 욕망을 한껏 표출했다. 시민운동은 치어리더, 기업은 죄수, 청년세대는 대체로 인질이었다. 정권은 권력기관을 휘하에 정렬했고, 국가기구를 내무사열했으며, 현란한 명목의 세금을 주물렀다.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은 정권을 거듭할수록 훼손됐다.

홉스의 저서 『리바이어던』의 속표지 그림은 사뭇 상징적이다. 1651년 초판본에 나온다.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짐승인 리바이어던은 수많은 개별 인간들로 채운 몸을 가졌다. 이 괴물이 공공선이라면 좋겠는데 개인들의 눈, 입, 귀를 감시하고 군림하는 위압적 존재다. SNS와 유튜브, 사적 메일을 무차별로 검열하는 정권의 원형이 거기에 있다. 370년 지속된 홉스의 시민사회적 경고를 내치는 데에 고작 35년이 걸렸다. 민주화 첫 발자국이 여기에 이를 줄이야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리바이어던에 족쇄 채우기’가 민주주의다. 정권들은 국가의 족쇄를 풀고 등에 올라타 정권욕을 한껏 채웠다.

지금이 절정이다. 여야 대선후보가 내놓는 기상천외 공약들은 모두 족쇄 풀린 리바이어던의 포효다. 장년, 면접, 입학, 농민수당 등 국가의 선심 리스트가 이렇게 길 줄 몰랐다. 기왕에 탈모가 나왔으니 주름살, 비만관리로 치달을 터에 노조가 압박하는 전 국민 철밥통 시대, 부자 곳간 털기는 섬뜩하다. 철밥통은 취업난민을 낳고, 곳간 털기는 이민행렬을 늘린다. 그래도 저울질하는 정당이 있을 것이다. 당장은 유혹이지만 개별 시민의 국가 귀의(歸依)와 종속을 재촉하는 독(毒)이다. 음독(飮毒)투표, 판단중지와 환멸의 계곡에서 마실까 말까를 작심해야 하는 현실은 슬프다.

그럼에도, 필자는 믿는다. 민주화 35년이 헛공사가 아니었음을. 정권의 탈주를 막는 저력이 양심적 시민들에게서 분출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번 달, 우리는 두 건의 장엄한 죽음을 목도했다. 심정민 소령은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아파트와 밀집지역을 피했던 그 마지막 10초 동안 아내와 부모의 얼굴이 스쳤을 것이다. 평택 물류창고 화재 현장, 인명검색을 위해 불길에 뛰어들었던 세 명의 소방관은 자신의 인명을 던졌다. 무소불위 리바이어던을 길들이는 것은 바로 이런 양심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천직에 입문한 그 첫 발자국을 잊지 않았다. 손익에 잠 설치는 정치인들이 외치는 공공선을 무심결에 실행하는 양심적 시민들이야말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사십불혹(四十不惑)으로 승화시키는 생동력이다. 그들의 영전에 첫 발자국의 기억을 바친다. (‘첫 발자국’으로 세사필담의 첫발을 딛습니다. 독자들께 더욱 다가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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