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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마실지 말지, 코에게 물어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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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영국의 대형 수퍼마켓 체인 모리슨즈가 대담한 변화에 나섰다. 영국 전역에 500개 가까운 점포를 운영하는 업계 4위의 이 업체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자체 브랜드 우유 90%를 대상으로 ‘사용기한’(use by) 표시를 없앤다. 대신 잘 보관될 경우 최상의 품질이 유지된다는 ‘품질유지기한’(best before)이 표시될 예정이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영국 식품유통 업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우유는 감자와 빵 다음으로 영국인이 많이 버리는 음식물이다. 영국에서만 연간 2억7000만 리터가 버려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젖소 한 마리가 하루 평균 우유 30리터를 생산한다고 볼 때 900만 마리를 착유해야 얻을 수 있는 양이다. 문제는 이렇게 버려지는 우유의 상당량이 신선도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데 있다. 소를 키우고 젖을 짜서 유통하는 모든 과정을 고려해볼 때 막대한 비용 손실일 뿐 아니라 탄소배출 문제와도 직결된다. 모리슨즈는 이러한 변화를 통해 자원 낭비를 줄여볼 작정이다.

영국 수퍼마켓 모리슨즈는 다음주부터 자체 브랜드 우유에 현재의 ‘사용기한’ 대신 ‘품질유지기한’을 표시할 예정이다. [사진 모리슨즈]

영국 수퍼마켓 모리슨즈는 다음주부터 자체 브랜드 우유에 현재의 ‘사용기한’ 대신 ‘품질유지기한’을 표시할 예정이다. [사진 모리슨즈]

소비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영국에 사는 지인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한 친구는 “이제 멀쩡한 우유를 그냥 버리지 않아도 되니 좋다”라며 환영했다. 다른 친구는 “모리슨즈가 코로 냄새를 맡아 마셔도 될지를 알아서 판단하라는데 비과학적인 방법이라 불안하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배탈은 몰라도 죽기야 하겠어?”라며 맞받아쳤다.

나라마다 문구는 조금씩 달라도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기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한국도 매년 증가하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보겠다는 취지로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대체하는 법률 개정안이 지난해 7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1일부터는 모든 식품에 유통기한이 아닌 소비기한이 표시된다. 식품의 ‘생명’이 연장되는 것이다.

예컨대 두부의 경우 현재 유통기한은 2주인데 냉장보관만 잘하면 100일이 넘어도 이상 없이 먹을 수 있게된다. 우유도 14일에서 59일까지로 소비기한이 연장될 수 있지만, 냉장유통 과정 정비 등을 이유로 우유를 포함한 몇몇 품목에 대해서는 8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2031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소비기한 표기법이 시행되려면 앞으로 11개월이 남았지만, 우리 소비자들은 지금부터라도 식품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 아니라 제품 보관에 주의를 기울이며 눈으로 살피고 코로 맡아 보는 등의 작은 습관을 들이면 어떨까 싶다. 집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초겨울부터 동면하고 있는 두부부터 뜯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