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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과 결과 사이에 선 사람들…도심 속 2개의 코로나 분향소

중앙일보

입력

24일 오후 코로나19 진상규명 시민연대가 개소식을 준비 중인 합동분향소 천막에 성현모 유가족협회 회장의 어머니 최모씨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양수민 기자

24일 오후 코로나19 진상규명 시민연대가 개소식을 준비 중인 합동분향소 천막에 성현모 유가족협회 회장의 어머니 최모씨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양수민 기자

24일 오후 12시 서울시청 맞은편의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앞 인도에 다섯 개의 천막이 만들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자를 위한 합동분향소 설치가 준비 중이었다. 26일 오전 10시 개소식을 앞두고 코로나19 진상규명 시민연대(코진연)’ 소속 회원 7명이 묵묵히 움직였다.

천막 한쪽엔 아직 단상에 올리지 않은 사망자 최모(84)씨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성현모(60) 코진연 유가족 대표의 어머니다. 성 대표는 1년 4개월 전인 2020년 9월 20일 숨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억울하다”고 했다. 돌아가시지 않았어야 할 어머니가 영정 사진으로 있는 거라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성 대표의 어머니는 같은 병실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이유로 음성 상태에서 집에 격리를 당했고, 숨이 차고 몸이 이상해졌을 때는 ‘격리 기간이라 안 된다’는 이유로 병원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성 대표는 “결국 119를 불러 구조대원이 조치하던 중 허망하게 돌아가셨다. 병원에 가서 치료만 받았어도 살았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코로나19 진상규명 시민연대'가 지난 22일 설치한 서울 중구의 합동분향소 천막 모습. 24일 오후 합동분향소는 설치 마무리 작업에 바쁜 모습이었다. 양수민 기자

'코로나19 진상규명 시민연대'가 지난 22일 설치한 서울 중구의 합동분향소 천막 모습. 24일 오후 합동분향소는 설치 마무리 작업에 바쁜 모습이었다. 양수민 기자

1월에 천막 분향소 2개 생겨

24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 앞에 설치된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코백회) 합동분향소 모습. 양수민 기자

24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 앞에 설치된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코백회) 합동분향소 모습. 양수민 기자

지난 2020년 1월 20일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2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 서울시청에서 서울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는 도심에는 분향소가 설치되고 있다. 현재까지 두 개의 분향소가 마련됐다. 백신 피해자들이 주축이 돼 먼저 만들어진 ‘1호’ 분향소가 지난 11일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코백회)가 설치한 서울 중구 청계광장 앞의 합동분향소다. 거기서 400m쯤 떨어진 곳에 22일 오후 코진연의 피해자 합동분향소가 생겼다. 왜 분향소가 따로 생기고 있는지 등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공포의 질병, 억울한 죽음,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등을 겪었다는 사실과 망자와 피해자를 위해 거리에 나왔다는 점은 닮아 있었다.

“건강했던 아들, 왜 쓰러졌나”

김두경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의 SNS에 뜬 '1년 전 소식'에는 아들 김지용씨와의 행복했던 시절이 담겼다. [김두경 회장 제공]

김두경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의 SNS에 뜬 '1년 전 소식'에는 아들 김지용씨와의 행복했던 시절이 담겼다. [김두경 회장 제공]

청계광장 앞에서 만난 김두경(53) 코백회 회장은 아들 김지용(27)씨가 지난해 3월 4일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맞고 거동이 힘들어진 상태다. 팔과 다리엔 마비 증상이 왔고 물병에 물을 제대로 따르지 못한다. 김 회장은 “엊그제 SNS에 ‘1년 전 소식’이 떴다. 지용이가 취업에 성공해 저랑 발왕산을 다녀왔더라. 이렇게 멀쩡했던 아들이 지금은 자살 충동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김 회장은 “지용이가 그때 백신 부작용을 걱정했다. 그때 왜 백신 맞지 말라는 이야기를 안 했을까. 지용이한테 백신 맞으라고 설득한 게 한으로 남는다”고 덧붙였다.

같은 곳에서 만난 김서연(45)씨는 중소기업에 다니던 성실한 남편 이모(46)씨가 지난해 9월 17일 모더나 1차 백신을 접종한 지 보름여 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김씨는 “고교 1학년부터 체대 입시를 준비한 아들이 이제 고3이 된다. 체대 입시 실기 학원이 체육 시설로 분류돼 방역 패스 없이는 입장할 수 없게 됐다”며 “남편이 백신 부작용으로 쓰러졌는데 어떻게 아이한테 백신을 맞출 수 있겠냐. 목숨을 걸고 주사를 맞든지 대학을 포기하든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여기 계시는데…설도 분향소서 보낼 것”

24일 오전 한 시민이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백신피해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24일 오전 한 시민이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백신피해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권혁운(61)씨는 올해 설 차례를 청계광장에서 지낼 계획이다. 그의 어머니 이정애(84)씨는 지난해 6월 10일 화이자 1차 접종 후 사지마비에 고열 증상을 보이다 7월 24일 사망했다. 권씨는 “어머니가 여기 있는데 제가 어디를 가겠냐. 내가 어머니를 지켜야지. 억울하고 분통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합동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손녀와 같이 분향소에 방문한 정요한(71)씨는 “정부는 정부대로 사정이 있겠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있다면 국가에서 생각을 해줘야 하지 않겠냐”라며 “안타깝게 죽은 사람들은 보며 마음이 아파서 분향소를 찾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절박…사과받을 때까지 분향소 지키겠다”

서울시 중구청은 지난 11일 코백회 합동분향소에 도로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이유로 ‘1월 12일까지 자진 정비해주시길 바란다’는 통지서를 보냈다. 24일 오전에도 중구청 관계자가 청계광장 앞 분향소에 방문해 자진 철거를 권유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강제 철거 계획은 아직 없다”면서도 “코백회 가족들과 논의를 거쳐 최대한 자진철거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뒤늦게 차려진 코진연의 합동분향소에도 구청은 같은 입장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김두경 코백회 회장은 “사과받을 때까지 분향소를 지키겠다”고 했다. 김 회장은 “돈 필요 없다. 멀쩡한 애를 못 움직이게 만들어놨으면 사과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며 “정부가 ‘인과성 없음’으로만 일관하는 사이 피해자 가족들은 1년 넘게 눈물 흘리며 호소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은 절박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김두천 코진연 상임회장은 “유가족에 대한 피해보상과 코로나19에 대한 진상 조사가 이뤄지기 전까지 천막을 철거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당국도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계속해서 국내 감염 환자들에 대한 정보가 축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데이터가 축적되면 인과성을 인정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나고 인과성 인정 범위가 확대되면 근거 불충분으로 인과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분들에 소급해 보상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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