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 날리면 미접종자 탓" 방역패스 풀린 공연계 새 전쟁

중앙일보

입력 2022.01.24 17:00

업데이트 2022.01.24 17:03

뮤지컬 팬인 대학생 손모(24)씨는 최근 공연장 등 일부 시설에 대한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의무화 조치가 해제됐다는 소식에 불안감을 느꼈다. 방역패스가 도입되면서 사라졌던 ‘객석 한 칸 띄어 앉기’ 등 거리두기가 부활할 수 있어서다. 그렇게 되면 치열한 매표 경쟁을 뚫고 예약한 ‘가변석’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가변석은 일반석과 같은 가격에 예매가 가능하지만, 정부의 거리두기 지침이 강화되면 실내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강제로 환불 처리되는 객석을 말한다.

2020년 1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공연장 방역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1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공연장 방역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역패스 풀리자 불거진 ‘가변석 논쟁’

방역패스 해제를 둘러싼 미묘한 갈등이 공연계에서 불거졌다. 지난 18일부터 공연장·영화관 등 시설 6종이 방역패스 의무 적용 대상에서 빠지자, 접종을 마친 일부 관객들 사이에서 “방역패스 해제를 주장해온 미접종자들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게 됐다”는 취지의 주장이 나오면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공연계에 도입된 가변석 체계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발생했을 때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되자 당시 진행 중이던 공연들의 가변석이 전부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 이러한 사태를 겪은 공연계 일각에서 “방역패스가 해제되면 공연장 내 거리두기가 부활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자 가변석을 예매한 접종자들이 반발한 것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완료자인 손씨는 “부작용이 무서웠지만 공연을 보려고 백신을 맞았는데 억울하게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무턱대고 방역패스를 풀어달라고 한 일부 미접종자들이 무책임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지난 17일 연극·뮤지컬 팬들이 모인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어렵게 예약한 가변석이 거리두기 때문에 취소되면 미접종자들 때문”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반면 “미접종자들이 공연 볼 권리를 존중하라”는 내용의 게시물도 적지 않았다. 건강상 이유로 백신을 맞지 않았다는 직장인 강모(28)씨는 “아직 거리두기 부활이 확정된 것도 아니고 공연 보고 싶은 팬들의 마음은 똑같은데 왜 미접종자를 싸잡아 비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20년 10월 두 칸 이상 띄어 있는 대구의 한 공연장 객석. 뉴스1

2020년 10월 두 칸 이상 띄어 있는 대구의 한 공연장 객석. 뉴스1

정부 “객석 간 거리두기 도입 안 한다”

정부 당국은 방역패스가 해제돼도 공연장 내 거리두기는 재개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8일 국립공연예술기관과 주요 공연장 등에 “별도 안내가 있을 때까지 객석 간 거리두기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발송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방역당국도 공연장이 안전한 시설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객석 간 거리두기를 도입하지 않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는 중인 걸로 안다”고 말했다.

방역패스 의무화 조치는 사라졌지만, 일부 공연제작사 측은 자체적으로 방역패스를 운영할 방침이라고 한다. 공연장 내 집단감염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미접종자의 관람을 제한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취지에서다. 한 공연제작사 관계자는 “정부 발표와 별개로 당분간은 접종을 완료했거나 음성확인서를 지닌 관람객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방역패스 해제를 둘러싸고 시민들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 “방역정책에 대한 사회적 소통이 부족했던 결과”라고 진단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가 백신 접종을 권장하고 방역패스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사회구성원 사이의 집단적인 토론이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신체 자기결정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다소 부족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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