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가 의무사항을 다 준수하고 고의나 중과실이 없을 때는 면책하는 규정도 반드시 마련돼야 합니다."
주보원 중기중앙회 노동인력위원회 공동위원장은 24일 충남 천안의 금속 부속품 제조업체인 ㈜신진화스너공업에서 중소기업계 대표들과 만나 이같이 강조했다. 이 자리는 중소기업중앙회가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한 중소기업인들의 애로 사항을 듣기 위해 마련했다. 중기중앙회 노동인력위원회와 직능단체장 등 12명이 참석했다.
간담회에 모인 중소기업인들은 중대재해처벌법 규정이 모호하고 중소기업의 경영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주 위원장은 "산업재해는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기 어려운 분야인데 중대재해처벌법은 징역 1년 이상이라는 하한 규정 등 지나치게 사업주 처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법상 사업주 의무사항이 너무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어 많은 중소기업이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장의 과도한 불안함과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산업재해 예방이라는 법 제정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사업주 처벌 수준을 완화하고 의무사항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중기중앙회가 지난달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0인 이상 중소 제조업의 53.7%는 시행일 내 중대재해처벌법 준수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이호석 중기중앙회 노동인력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처벌 수준은 세계 최고인데 누구 하나 법을 완벽히 지킬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현실에 중소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 터널을 지나면서 늘어난 대출로 지금의 일자리조차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알아달라”고 호소했다.
"중대 재해 70% 이상이 50대 이상…고령화 때문"
중소기업 직능단체 대표단은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의 문제점으로 안전 전문인력 부족과 법 해석의 모호함을 꼽았다. 김창웅 한국건설기계정비협회 회장은 “건설기계정비 회원사 2300여곳은 소규모 영세업체로 정비기술자 90% 이상이 50대부터 70대로 고령화 구조에 진입했다”며 “기계 정비업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젊은 사람을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중대재해 70% 이상이 50세 이상에서 발생하고 있어 고령화로 인한 사고를 막기 힘들다”라고 하소연했다. 김 회장은 “정부가 유사업종 등을 묶어 표준안전 계획서 등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이오선 부산청정표면처리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기면서 설비보전팀 인원을 보강했는데 채용을 더 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다”며 “안전 인력 부족은 정부에서 나서서 해결해달라”고 말했다.
감독관에 따라 사업장 안전기준이 들쭉날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길수 한국고소작업대임대업협동조합 이사장은 “현장을 점검하는 근로감독관마다 열이면 열 모두 안전기준이 다르다”며 “현장 안전기준을 일원화해야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근로자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중대재해의 경우에는 사업자 처벌을 면책해달라는 요청도 이어졌다. 정한성 한국파스너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사용자가 안전 조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작업자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서 일어나는 사고가 전체의 60~70%”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안전보건협회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사업장에 와서 안전 문제를 진단하고 지적사항에 대해서는 조처를 하고 있지만 작업자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도 있다”며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문제가 된 건 예외로 인정하는 면책조항을 추가해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