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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볼리비아서 사진찍다 고산병…현지인은 코카차 마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58)  

다녀본 컴패션 어린이센터 중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곳을 꼽으라면 볼리비아 고산 지대에 위치한 어린이센터다. 볼리비아 원주민 지역이었는데 우리 어린 시절과 퍽 닮아 동질감이 느껴졌다. 한 300여 명쯤 되는 어린이들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니 정말 좋아했다. [사진 허호]

다녀본 컴패션 어린이센터 중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곳을 꼽으라면 볼리비아 고산 지대에 위치한 어린이센터다. 볼리비아 원주민 지역이었는데 우리 어린 시절과 퍽 닮아 동질감이 느껴졌다. 한 300여 명쯤 되는 어린이들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니 정말 좋아했다. [사진 허호]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꼭 들르게 되는 곳에 각 나라의 수도입니다. 대부분의 수도는 사실 어느 정도 비슷비슷한 대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요. 그런데 볼리비아는 첫인상부터 굉장히 남달랐습니다.

2010년인가, 볼리비아를 처음 갔는데 비행기에 타고 있던 중 곧 도착한다는 안내가 들려왔습니다. 차창으로 거대하고 높은 산맥이 보여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발아래 있던 산이 옆으로 보이면서 비행기가 내려섰습니다.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었습니다. 안데스 산맥 준봉들 중 하나에 위치한 엘 알토 국제공항은 나중에 찾아보니 전 세계에서 고도가 높은 공항 중의 하나였지요. 볼리비아의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하고 있는 행정수도 라파스로 가기 위해 도착한 공항이었습니다.

라파스는 평균 고도 약 3600m인 도시입니다. 우리가 내린 공항은 4200m라고 하더군요. 공항에서 내려다 본 라파스는 무슨 영화 ‘혹성 탈출’ 속 배경이나 외계의 도시를 방문하는 것 같은 생경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이토록 눈 아래 쫙 깔리는 경험은 거의 해본 적이 없었었기에, 자그마한 도시가 아니고 볼리비아의 수도가 그랬다는 것이 정말 신선했지요.

산속에 자리 잡은 도시이다 보니 차들이 다니는 도로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로 치면 시내버스 역할을 하는 게 케이블카였습니다. 우리에게 케이블카는 관광용이지만 여기는 여러 갈래의 시내버스처럼 다니며 정거장에서 사람들이 타고 내렸지요.

공항에서 본 볼리비아 행정수도 라파스. 도시 전체를 발아래에서 볼 수 있는 생경한 느낌이 아찔했다. 안데스산맥에 푹 감싸인 도시의 모습은 경이적인 경험을 안겨주었다. [사진 허호]

공항에서 본 볼리비아 행정수도 라파스. 도시 전체를 발아래에서 볼 수 있는 생경한 느낌이 아찔했다. 안데스산맥에 푹 감싸인 도시의 모습은 경이적인 경험을 안겨주었다. [사진 허호]

라파스는 3600m 고지에 있었고 공항도 4200m, 여기에서 더 올라간 4400m 고지의 어린이센터를 방문하면서 사진을 찍다 보니 좀 어질어질하더라고요. 어린이들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막 찍어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띵하더니 어지럽고 정신을 못 차리겠는 겁니다. 고산병이라고 하더라고요. 현지 사람들이 있는 민간요법으로 코카 차를 마시라고 하더군요. 이들은 민간요법으로 종종 코카 차를 우려먹는다고 하는데, 사실 이것을 강력하게 농축시켜 만드는 것이 바로 마약인 코카인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보편적인 방법이지만 한국인에겐 익숙하지 않고 아무리 약하게 우려먹는 차도 여러 잔 먹다 보면 마약 성분이 검출될 수 있다고 해서 마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빠르고 현실적인 해결 방법으로 산소호흡기로 산소를 흡입할 수 있도록 해주더라고요. 슈퍼에서 살 수 있는 산소캔이었는데 꼭 우리나라 부탄가스 통처럼 생겼습니다. 음료수 팔듯이 팔더라고요. 부탄가스 같다고 생각하면서 보니까, 한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수출한 제품이 그곳에까지 있었던 것이지요. 신기했습니다. 일회용으로 산소캔을 사용하고 좀 쉬니까 증상이 완화되었죠.

가장 높은 고산 지대 어린이센터가 위치한 마을은 적막했다. 마을의 형태는 있는데, 분위기가 정말 가라앉아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를 반겨주는 순박하고 볼이 빨간 아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는지도 모른다. [사진 허호]

가장 높은 고산 지대 어린이센터가 위치한 마을은 적막했다. 마을의 형태는 있는데, 분위기가 정말 가라앉아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를 반겨주는 순박하고 볼이 빨간 아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는지도 모른다. [사진 허호]

어린이센터가 위치한 마을은 우리나라 단어의 ‘적막하다’라는 표현이 그대로 들어맞는 곳이었습니다. 집과 골목 등 마을의 형태는 있는데 마치 사방의 소리를 다 끈 듯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도가 높은 지대답게 처음 보는 하늘의 빛을 보여주며, 푸르다 못해 시퍼렇게 우리를 내리누르는 것 같았습니다. 고도가 높아 뛰어다닐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거리에 인적도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어린이센터에 가니까 세계 어딜 가듯 마찬가지로, 어린아이는 순수하고 밝았습니다. 거리의 모습과 상반되어서 그런지 더 반갑고, 살짝 동상 걸린 것처럼 볼이 튼 모습에 마음이 더 쓰이더군요. 우리 어릴 때 생각도 나서 더 해줄 게 없을까 하다 사진을 다 찍게 된 것이지요. 고산병 증상이 생겼던 건 아마도 그게 무리가 되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좋아하는 모습에 별로 힘들다 생각은 들지 않았지요.

중남미에서 원주민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가난한 편인데, 볼리비아도 마찬가지. 그런데 이들이 우리 어릴 때와 참 많이 닮았다. 이 아이들의 볼이 튼 것처럼 난방시설이 좋지 않았던 그때, 우리도 겨울에 손등이 갈라지고 그랬었다. 가끔 잘 모르고 고산지대 볼리비아 어린이 사진을 보고 볼이 빨갛게 익은 게 귀엽다고 하는데, 자외선 차단제도 없이 고산지대에 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사진 허호]

중남미에서 원주민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가난한 편인데, 볼리비아도 마찬가지. 그런데 이들이 우리 어릴 때와 참 많이 닮았다. 이 아이들의 볼이 튼 것처럼 난방시설이 좋지 않았던 그때, 우리도 겨울에 손등이 갈라지고 그랬었다. 가끔 잘 모르고 고산지대 볼리비아 어린이 사진을 보고 볼이 빨갛게 익은 게 귀엽다고 하는데, 자외선 차단제도 없이 고산지대에 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사진 허호]

볼리비아는 굉장히 자원이 풍부한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도 휴대폰 배터리의 주요 원재료인 리튬 매장량이 전 세계 가장 풍부한 나라라고 하지요. 그런데 볼리비아가 많은 자원을 갖고도 부자가 될 수는 이유는 해안선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출에 한계가 있는 것이지요. 1879년 태평양전쟁으로 칠레에게 해안선을 빼앗긴 탓입니다.

자원이 풍부한 볼리비아의 비극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도 있었습니다. 볼리비아의 포토시 리코 산의 은광은 유럽의 대항해 시대의 엄청난 수탈이 일어났던 현장이었고 이러한 역사로 인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인디오들에게 은은 크게 가치가 없는 금속일 뿐이었지만, 스페인 지배자들에게는 달랐습니다. 이들은 인디오들을 갱도에 몰아넣고 가혹하게 은을 캐 갔습니다. 이 은이 유럽을 거쳐 중국에 다다랐을 때는 중국에서 은원보라는 화폐로 사용할 정도의 물량이었다고 합니다. 스페인인들의 수탈은 가혹해 이곳에서 당시 사망한 인디오들이 80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하지요. 이렇게 착취로 벌어들인 은 때문에 당시 부강했던 스페인마저도 경제적 불균형이 나타나 자멸했다는 평을 받게 되었지요. 그래서 ‘은의 저주’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풍부한 자원이 있음에도 경제적으로 열악한 모습을 보이는 볼리비아, 지금도 뉴스에서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보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기억되는 볼리비아는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순박하고 순수한 어린아이들입니다. 더욱 혹독해진 이 겨울, 볼리비아 어린이들이 잘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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