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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대기업은 20억 컨설팅…중소기업은 법해석도 못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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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가 지난 20일 연구실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약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 교수는 "중대재해법 칼끝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집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정현 기자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가 지난 20일 연구실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약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 교수는 "중대재해법 칼끝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집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정현 기자

“대기업은 20억원을 들여 컨설팅을 받으면서 처벌 피하는 방법을 찾아보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관련 법률 해석조차 못 하고 있어요.”

"중대재해법으로 산업안전 빈익빈 부익부 고착화될 것" #노동부 출신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의 쓴소리

지난 20일 서울 노원구 서울과학기술대 연구실에서 만난 정진우(54) 안전공학과 교수는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을 이렇게 평가했다. 정 교수는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장과 국제협력담당관을 지낸 산업안전 분야 전문가다. 2015년부터 서울과기대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등을 강의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해 1월 정 교수를 인터뷰했었다. 시행을 앞두고 다시 그를 찾았다. 법 제정 이후 변화와 시행을 앞두고 예상되는 문제점을 들어보기 위해서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대재해법이 27일 시행된다. 지난 1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나.
“법률이 큰 틀에서 바뀐 건 없고 법 시행에 앞서 시행령이 마련됐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연말 중대재해법 해설서를 마련했는데도 불구하고 모호한 규정이 적지 않다.”
어떤 규정을 예로 들 수 있나.
“사업장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의무자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규정하면서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재해예방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배·운영·관리가 서로 다른 사업장도 많다. 최근 화재가 발생한 냉동창고가 대표적이다.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기업이 책임을 져야 하는지 창고 관리를 전담하는 전문 업체가 의무를 져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사고가 생겨도 소송을 통해 원청이 빠져나갈 수도 있는 구조다.”

정 교수는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산업안전 빈익빈 부익부가 굳어질 것”이라며 “중소기업에 칼끝이 집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중대재해법으로 공포 마케팅에 불을 붙였고 새로운 법률 시장에 열리면서 로펌이 행동대장으로 나섰다”고 비판했다.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10대 기업 중 한 곳은 중대재해법과 관련해 로펌 컨설팅 비용으로 20억원을 지불했다고 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관련법 문구 해석도 못 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정작 산업안전에 취약한 건 중소기업이다. 사업장 사망사고 중 300인 이상 기업 비율은 5%에 불과하다. 95%는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중대재해법이 산업안전 역량 강화가 아닌 경영책임자 처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마저도 허술하게 만들어져 있어 정작 대기업 대표이사는 소송 통해 빠져나갈 수 있다.”
산업현장에서 우려되는 문제점은. 
“대표이사와 안전책임자의 칸막이 현상이다. 대기업 계열사 중에서 사고에 대비해 검찰 출신 인사를 최고안전책임자(CSO)로 앉힌 경우도 있다. 산재가 발생해도 대표이사는 법적 책임에서 피해가려는 의도다. 대표이사가 안전 관련해서 보고를 회피하거나 일부러 보고를 받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날 거다. 중대재해법이 원맨(안전책임자)을 처벌하는 법이라서 그렇다. 안전 담당 임원과 사업부서 임원이 노후설비 교체를 놓고 충돌할 경우 대표이사가 먼 산 쳐다보듯 하면 사업장 안전 수준이 올라갈 수 없다.”
중대재해법이 대형 로펌의 배만 불릴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산업안전은 대형 로펌이 관심을 가지지 않던 시장이었다. 하지만 중대재해법이 생기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코로나 사태 덕에 돈을 벌어 현금이 넘치는 대기업은 수십억 원을 들여 대형 로펌에 컨설팅을 맡겼다. 컨설팅은 사업장 안전 확보보다 책임 회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다 보니 대형 로펌은 산업안전팀을 별도로 꾸려 관련 변호사를 대규모로 채용했다. 고용노동부를 거친 고위공무원이 로펌으로 이직해 컨설팅 수주에 나선 경우도 있다. 코로나로 번 현금이 사업장으로 가서 안전을 높이는 데 쓰여야 하는데 엉뚱하게 로펌으로 들어가고 있다. 정작 중대재해가 빈발하는 중소기업은 컨설팅조차 맡길 수도 없는 처지다.”
컨설팅이 중대재해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로펌 컨설팅 보고서를 살펴보면 절반은 고용노동부의 법률 해설서를 그대로 붙여놓기 한 수준이다. 정작 현장에서 구체적인 산업안전 예방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현장에서 뛰는 산업안전보건공단 직원도 해설서에 답변이 없는데 저희가 어떻게 기업을 상대로 설명하느냐고 되묻는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사람도 제대로 답변을 못 하는데 산업안전 실무 경험이 없는 대형 로펌이 기업 맞춤형 산재 예방 조언을 할 수 있을까.”

정 교수는 “중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선 중대재해법 시행보다 산안법 개정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1년 전 인터뷰와 같은 주장이다. “산재는 예방이 핵심이고 예방은 기업이 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20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관련해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20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관련해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정책은 뭔가.
“산업안전 통계를 일원화해야 한다. 특고(특수형태고용종사자)·공무원·군인·선원 등 산재보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들을 포괄하는 산재 통계를 구축해야 한다. 선원도 매년 100명 넘게 사망한다. 이들을 포함하면 매년 사업장에서 일하다 사망하는 이는 1200~1300명에 이른다(※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1년 산업재해 사망자는 828명이다). 현실을 반영한 통계가 중대재해 예방의 시작점이다.”
정부와 정치권에 조언하자면.
“보여주기식 정책에 급급하지 말고 중장기적으로 산업안전 보건 수준을 끌어올리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1만명당 산업안전 행정력은 한국이 일본보다 4배 많고 미국보다 8배 많다. 이번 정부 들어서 관련 예산도 확연하게 늘었다. 그런데도 중대재해 발생은 여전히 부끄러운 수준이다. 구조적인 문제가 수면 아래에 여전히 가라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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