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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양치기 소년'처럼 방역·백신 메시지 오락가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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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형기-천은미-이은혜-권준수 교수 등 전문의 4명이 코로나19 사태 2년을 다각도로 돌아봤다.[중앙포토]

이형기-천은미-이은혜-권준수 교수 등 전문의 4명이 코로나19 사태 2년을 다각도로 돌아봤다.[중앙포토]

국내 첫 확진자 발생 기준으로 지난 20일 코로나19 사태가 3년 차로 진입했다. 지난 2년간 누적 확진자(23일 기준)는 73만명을 넘었고, 6540명이 희생됐다. 코로나 사태로 우리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배웠나. 의료계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해온 남녀 의사 4명의 생각을 들어봤다.

[전문의 4인이 돌아본 코로나 2년] #K-방역 자화자찬은 '정신 승리법' #위드코로나 집착해 사망자 급증 #자유와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 #AI 활용 원격·비대면 상담 늘려야

 상호모순되는 '엿가락' 방역 대책
이형기(57) 서울대 의대 임상약리학과 교수는 각계 전문가 15명과 함께 『코로나 징비록, K-방역은 없다』를 대표 출간했다.
 -코로나 대책 비판서를 낸 동기는.
 "자기 진영이 아니면 전문가의 말조차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는 문재인 정부의 빗나간 오기,과학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호모순으로 가득한 엿가락 방역 대책, 백신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해도 효과가 제한적인 '국뽕' 국산 치료제 개발에 올인한 고약한 심보, 그런데도 K-방역이라며 자화자찬하는 모습을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대통령은 방역을 대표 성과로 꼽았다.
 "그런 식의 '정신 승리법'에 동의할 수 없다. 방역을 앞세워 정부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거리낌 없이 침해하고 개인의 비밀을 죄의식 없이 들여다보는 것이 다반사였다. 진영에 따라 이중 잣대를 대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현실이 큰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1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방역 성공을 자화자찬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1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방역 성공을 자화자찬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시각도 있는데.
 "국민을 겁주고 소상공인·자영업자의 희생을 강요한 상태에서도 이 정도라면 결코 선방이라고 볼 수 없다. 국내 치명률이 낮았던 이유는 의료계의 헌신과 최고 수준의 진료 역량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지 정부가 잘해서가 아니다."
 -어떻게 코로나를 극복해야 할까.
 "과학과 상식이 회복돼야 한다. 권력자의 귀에 듣기 좋은 말하는 가짜 전문가를 내치고 '찐 전문가'를 기용해 과학적 근거에 따른 방역 대책을 제시하고 집행해야 한다. 정치인이 코로나 대책반을 주무르는 행태를 혁파해야 한다. 과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백신 접종은 계속하더라도 질병이 있거나 본인 의지로 접종 여부를 선택하면 집단으로 억압하지는 말아야 한다."

 오미크론 잘 넘으면 일상회복 희망
 천은미(58)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알기 쉬운 코로나 사태 분석, 정부의 문제점 비판으로 유명해진 감염병 전문가다.
 -지난 2년 문 정부의 코로나 대응을 총평하면.

 "세계 최고의 대한민국 의료 수준과 메르스 대응 경험을 바탕으로 신속한 PCR 검사와 역학조사로 초기 대응은 비교적 잘했다. 하지만 해외 입국을 제한하지 않은 점, 마스크 대책 혼선은 좋게 평가하기 어렵다. 수차례 방역 완화로 대유행을 초래한 의사결정도 의문이 남는다. 해외 백신 동향을 오판해 백신 수급이 늦어진 것은 뼈아픈 실책이다. 백신 접종률만 믿고 중증 환자 병상 확보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해 11월부터 섣불리 일상 회복 (위드 코로나)에 돌입했는데, 중간에 문제를 알고도 "후퇴는 없다"며 고집부리다 불과 두 달간 2700여명의 사망을 초래했다. 소극적인 항체 치료제 투여 정책 때문에 중증화와 사망자를 줄일 기회를 박탈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탁한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왼쪽)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연합뉴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발탁한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왼쪽)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연합뉴스, 중앙포토]

 -정부의 대국민 메시지는 적절했나.
 "거리두기 단계 조정과 백신 정책을 발표하면서 방역 당국이 스스로 정한 초기 지침대로 시행되지 않는 바람에 '양치기 소년'처럼 오락가락 메시지 혼선을 수차례 초래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가 떨어지면서 방역 수칙의 집행 효과도 떨어졌다. 최근엔 18세 이상 성인의 95%가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 마스크를 쓰는데도 마트·백화점·독서실에 방역 패스를 의무화해 불신을 자초했다. 개인의 기본 선택권이 제한되는 백신 접종 정책은 재고가 필요하다."
 -만약 질병관리청장이라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에 두고 의료인의 입장에서 외부 입김에 좌우되지 않는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겠다. 방역 대책은 정치적 진영과 관계없이 의료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도래할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백신과 치료제로 코로나가 종식될까.

 "앞선 해외 사례를 고려하면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되면 하루 확진자가 수 만명이 나오더라도 독성이 높은 델타 변이와는 다른 접근 전략으로 고위험군을 치료하면서 코로나 이전의 의료체계를 회복해야 한다. 강력한 변이가 또 출현하지 않는다면 코로나가 4월쯤엔 풍토병(Endemic)으로 토착화할 수도 있을 거다. 오미크론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해 연내엔 일상의 행복을 되찾길 고대한다."

 민간병원과 공공병원 차별 말아야
 이은혜(54) 순천향대 부천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의료사회주의를 비판한 『공공의료라는 파랑새』 등 코로나 관련 책을 연이어 출간해 주목받았다.
 -의료 현장에서 절감한 문제는.
 "치명률이 약 0.9%인 코로나19를 메르스(치명률 20.3%)처럼 위중한 질병으로 여기는 바람에 병원에 가면 코로나에 걸린다고 걱정하다가 검사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유방암이 한참 진행된 뒤에야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많아 안타까웠다. 몇 년 지나면 유방암이든 다른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할 것이다. 불필요하게 불안감을 조성하지 말고, 과도한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코로나 관련 정보를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오미크론 변이와 코로나 방역패스 관련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 장세정 기자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오미크론 변이와 코로나 방역패스 관련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 장세정 기자

 -『코로나는 살아있다』의 핵심 메시지는.
 "코로나 사태의 객관적 실체를 알리고 싶었다. 확진자와 사망자 추이를 분석해보니 확진자 증감은 검사 건수의 증감과 관련이 있었다. 방역 당국은 감염재생산지수라는 과학적 근거를 무시한 채 전 국민을 단체기합 주듯 과도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행했고,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통제했다."
 -공공의료는 제역할을 했나.
 "공공병원이 활약했지만, 문제도 많았다. 정책입안자들은 의료사회주의자들에게 세뇌돼 '공공의료=공공병원의료'로 착각한 상태에서 공공의료로 코로나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 문제다. 2020년 봄 1차 유행 때 민간병원인 대구동산병원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고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전체 병상의 10%에 불과한 공공병원 역할론을 강조했고, 이 때문에 코로나 환자들이 제때 입원하지 못했다."
 -민간병원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했나.
 "대부분 공공병원은 중증 코로나 환자를 치료할 능력이 없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는 사립대학병원 등 상급병원 중환자실을 일정 비율로 미리 확보하지 않고 버티다가 중증환자가 넘쳐난 뒤에야 급박하게 중환자 병상 동원령을 내렸고, 이 때문에 코로나와 무관한 중환자들의 생명도 위태롭게 했다. 그러고도 '공공의료가 취약하니 공공병원이 더 필요하다'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공공병원과 동일하게 건강보험이라는 공공의료를 제공하는 민간병원을 차별하지 말고 역할 분담하게 해줘야 한다."
 -'의료사회주의'를 비판했다.
 "2020년 의사 파업을 계기로 공공의대 신설이 왜 근거가 없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의사는 공공재'라는 그릇된 인식은 의료 공급자인 병원과 의사를 국가 소유로 하자는 것이므로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사회주의 의료'다. 국영 의료제도를 택한 영국도 그런 주장은 하지 않는다."

국회 앞에 설치된 코로나19 피해 긴급 민원센터.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의 최대 피해자다. 장세정 기자

국회 앞에 설치된 코로나19 피해 긴급 민원센터.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의 최대 피해자다. 장세정 기자

영국처럼 '외로움 담당 장관' 신설하자 
 권준수(63)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을 역임했고, 지난해 『뇌를 읽다, 마음을 읽다』를 출간했다. '코로나 블루' 대책을 들었다.
 -마음과 정신은 어떤 타격을 받았나.
 "특히 기저 질환자와 고령자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가장 컸을 것이다. 가족의 임종도 못 보고, 화장 후 유골만 볼 수밖에 없었으니 상상하기 힘든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거리두기 장기화로 고립이 심화하면서 어르신과 젊은이 모두 외로움 때문에 극단적 선택과 고독사가 늘었다. 고독감은 단순히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신체·경제·사회 문제 등이 얽혀 있으니 정책 컨트롤 타워를 신설해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부의 대응은 적절했나.
 "코로나는 한국사회 변화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국민의 정신건강 측면에서 보면 부족한 면이 많다. 팬데믹 와중에 인포데믹(Infodemic)의 부작용도 심각했다. 특히 정부가 매일 확진자 수·사망자 수를 발표해 코로나 포비아(공포)를 키웠는데, 이를 통해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국민을 끌고 가려 한다는 의심이 들었다."
 -심리 지원 인프라는 충분한가.
 "기존의 심리지원센터는 중증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시설이 대부분이다. 국민 누구나 정신적 문제가 생겼을 때 쉽게 갈 수 있게 백화점 등에 공공 심리 센터를 설치한 호주 모델을 참고하자.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한 원격·비대면 상담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외로움을 줄여주는 반려동물에 대한 지원도 검토해보자. 차기 대통령은 2018년 '외로움 담당 장관'을 신설한 영국 사례를 벤치마킹할 만하다. 코로나로 가뜩이나 힘든 국민을 정치인들이 더는 힘들게 하지 말고 희망과 감동을 주길 바란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출간된 국내외 전문가들의 서적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출간된 국내외 전문가들의 서적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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