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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중국의 '한국대선 간섭'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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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1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접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1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접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해 11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 후보실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와 면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해 11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 후보실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와 면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한국 대통령 후보는 선거 기간 중국과 관련한 민감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길 희망한다.”

지난 20일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및 베이징 동계 올림픽 기념 국제 학술대회’에서 추궈훙(邱國洪) 전 주한 중국대사가 한 말이다. 현직이 아닌 전직이라지만 이웃나라 대선에 대해 얘기하는 자체가 민감한 일이다. 그는 “일부 한국 정치가의 언행이 중국 관련 민감한 문제를 다뤘다”며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 뒤 좋은 한·중 관계의 시작을 위해 기초를 잘 닦자”고 말했다. ‘일부 한국 정치가’라는 표현 자체는 더욱 예민할 수 있다. 이에 앞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해 연말 주한 미 상공회의소를 찾은 자리에서 “한국 국민, 특히 청년들 대부분은 중국을 싫어한다”고 거론해 여야 간 충돌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추궈훙 전 주한대사 예민한 언급 #韓 대선 놓고 中 일각서 '중풍' 주장 #"내정 불간섭 위배 부적절" 비판 나와 #미·중 회담 백브리핑 등 관계 격상

한국 20대 대통령 선거 중국 관련 주요 발언 일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국 20대 대통령 선거 중국 관련 주요 발언 일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국 측 인사들이 한국 대선을 놓고 민감한 얘기를 꺼내고 있다. 지난해 국민의힘과 중국 측의 공방이 출발점이다. 지난해 7월 12일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가 미국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중국을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같은 달 15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중국 레이더를 거론했다. 그러자 중국은 싱하이밍(邢海明) 대사와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이 직접 나서 항의했다.

지난 20일 화상으로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학술 대회’에서 추궈훙 전 주한 중국대사는 “미국은 한국에 줄서기를 요구하겠지만 중국은 한국에 그런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ZOOM 캡처]

지난 20일 화상으로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학술 대회’에서 추궈훙 전 주한 중국대사는 “미국은 한국에 줄서기를 요구하겠지만 중국은 한국에 그런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ZOOM 캡처]

“한국 대선,북풍 대신 중풍”

당시 차오스궁(曹世功) 중국 아·태학회 위원은 “한국 보수 세력이 악랄한 역풍, 즉 중국 바람(涉華逆風·섭화역풍)을 일으켰다”며 “미국 버락 오바마와 특히 트럼프와 바이든 경선 수법을 닮았다”고 비난했다. 관변 중국국제문제연구기금회(CFIS)가 운영하는 ‘국제망’ 기고에서다. 미 대선의 단골 이슈인 ‘중풍(중국 때리기)’이 북풍을 대신했다는 지적이다. 그는 “만약 보수세력이 집권한다면 한·중 관계에 어려움이 더 많아질 수 있지만, 결국 양국 공동의 이익에 기초한 민심이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가 ‘중풍’을 다시 주장했다. 류룽룽(劉榮榮) 산둥대 교수와 쑨루(孫茹)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CICIR) 세계정치연구소 부소장이 학술지 『평화와 발전』 최신호에 공동 게재한 ‘미·중 전략 경쟁 배경 아래 한국의 대미 정책 조정’이란 논문에서다.

류 교수와 쑨 부소장은 “한국이 대선 시즌에 들어서면서 여야의 일상적이던 ‘북풍(北風)’은 불지 않고 반대로 ‘중풍(中風ㆍ중국 관련 이슈)’이 분다”고 주장했다. 류 교수는 그러면서 “한국 집권당의 정치적 계보(뿌리)에 따라 미·중 사이에 기울기가 큰 차이가 있다”며 “한국 보수 세력은 이념과 가치관의 영향을 크게 받고 친미 정도가 높으며 중국을 혐오·적대시하는 정서를 공유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진보 세력은 이념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고, 미·중에 대한 인식과 입장이 더 객관적이며 자국의 전략적 자주를 더 중시하고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인터뷰를 인용했다.

“친미ㆍ친중 꼬리표 국민분열 노린 음모” 

뤼차오(呂超) 랴오닝대 교수는 지난 20일 학술대회에서 “한국 정부가 미·중 대립 속에서 ‘한쪽을 선택하지 않는’ 태도는 한국의 현재 국정과 이익에 부합하고, 중국의 이해와 긍정을 얻었다”며 “한국이 정파 별로 ‘친미’ ‘친중’ 꼬리표를 고의로 붙이는 것 자체가 국민 분열을 부추기려는 음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 대선 국면에서 중국 측 발언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부정적인 한국의 대중 여론을 고려할 때 주권과 내정 불간섭 원칙에 위배될 수 있는 중국 인사의 부적절한 발언은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선 후보 역시 국내 정치를 외교로 연장하지 않으면서 국가 정체성과 국익을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미 공동성명후 격상된 한ㆍ중 외교

중국이 한국 대선에 민감한 또 다른 이유엔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결국 미국에 기울었다는 ‘의심’이 자리한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지난해 5월 21일 워싱턴 한·미 공동성명이 4월 미·일 공동성명보다 중국에 끼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평가가 공유되고 있다. 당시 한·미 공동성명은 영문 A4 용지 7장(1만7725자)으로 미·일 성명의 5장(1만4285자)보다 많았다. 부속 문건을 합하면 3만4000여 자와 2만4000여 자로 더 큰 차이를 보였다. 내용에서도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비롯해 기후·글로벌 보건·5G·6G·반도체·공급망 회복력 등 글로벌 이슈를 빠짐없이 다뤘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민주적 가치와 인권 협력까지 담았다. 미·일 성명에 없는 내용이다. 쑨 부소장은 “한국이 미국과 경제·과학기술·가치관·안보·외교 등 핵심 영역에서 협력을 강화하면서 미·중 전략 경쟁의 중요 영역에 더 많이 개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후 중국은 한·중 외교를 격상했다. 지난 11월 16일 미·중 화상 정상회담 바로 다음 날 우장하오(吳江浩) 부장조리(차관보)가 장하성 대사를 만나 베이징 주재 대사 중 처음으로 미·중 회담을 백브리핑했다. 25일에는 양제츠(楊潔篪) 정치국위원이 장 대사를 댜오위타이(釣魚臺)로 불러 접견했다. 12월 2일에는 톈진(天津)에서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과 양제츠 회담이, 23일에는 최종건 외교차관과 러위청(樂玉成) 외교부 상무부부장(차관) 간 전략대화가 이어졌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가장 빈번한 고위급 연쇄 접촉이었다. 중국은 이 기간 사드 배치 후 처음으로 중국 내 한국 영화 상영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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