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족] 깜빡깜빡해서 병원 갔더니…'치매의 탈' 쓴 다른 병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1.23 19:31

업데이트 2022.01.24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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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 우울증 vs 치매 구분하기

황혼기에 마주치고 싶지 않은 질환 중 하나가 ‘치매’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깜빡깜빡할 때면 ‘혹시 치매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런 고민으로 병원을 찾는 노인의 상당수는 ‘가성 치매’로도 불리는 노인 우울증으로 진단받는다. 치매의 탈을 쓴 우울증인 셈이다. 기억력 저하의 원인이 치매가 아니라고 안심하기엔 이르다. 노년기에 나타난 우울증의 원인이 숨어 있는 치매일 수도 있어서다. 기억력 저하의 원인을 찾아내야 하는 이유다.

기억력 급변 감정 기복에 따라 기억력도 달라진다.

불안감·불면증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불안·초조해한다.
소화불량 소화가 잘 안 되고 가슴이 답답하다.
기억력 저하 기억력이 회복되지 않고 점점 나빠진다.
방향 감각 상실 익숙한 길을 찾아가지 못하고 헤맨다.
언어 구사력 저하 말할 때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노인 우울증과 치매의 공통된 주요 증상이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 기능의 저하’다. 두 질환을 헷갈리기 쉬운 이유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주수현 교수는 “노인 우울증 환자의 뇌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생성량이 증가하는데, 이는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를 망가뜨려 기억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우울증 환자의 뇌에서 코르티솔 분비가 많아지면 전두엽의 피질도 손상돼 인지 기능을 떨어뜨린다. 전두엽은 감정 조절과 추리, 계획, 문제 해결, 기억, 사고 등의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에 관여해서다. 노인 우울증 가운데 호르몬과 관계없이 혈관이 망가져 생기는 질환도 있다. 뇌의 미세한 혈관이 장기간 망가져 유발하는 ‘혈관성 우울증’이 그것이다.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도훈 교수는 “뇌 속 미세한 혈관이 하나둘씩 좁아지고 막히면 혈관성 우울증을 유발할 위험을 높인다”며 “평소 혈당·혈압·콜레스테롤을 관리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혈관성 우울증을 방치하면 혈관성 치매로 진행할 위험을 높인다.

 노인 우울증은 20~30대의 젊은 연령대에서 발병하는 우울증보다 기억·집중력이 더 심하게 저하된다. 이로 인해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이 치매로 오인하기 쉽다. 문제는 치매의 위험 인자이자 전조 증상 중 하나가 우울증이라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지은 교수는 “노년기에 생겨난 우울증이 치매와 관련 없는 단순 우울증인지, 치매의 전조 증상인지 감별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원인 따라 기억력 저하 양상 달라

기억력 저하의 원인이 단순한 노인 우울증인지, 치매인지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기억력이 떨어지는 양상’이다. 노인 우울증 환자의 경우 기억력이 어느 날 갑자기 나빠지며, 기분에 따라 기억력이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한다. 박 교수는 “노인 우울증 환자에게 당장 어제 일을 물어봐도 모른다고 했다가, 기분이 좋아지면 어제 일을 떠올릴 정도로 기억력이 감정 기복에 따라 급변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알츠하이머병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이 있을 땐 기억력 저하가 수십 년에 걸쳐 조금씩 완만하게 나빠진다. 예컨대 3년 전보다 2년 전의 기억력이 조금 더 나쁘고, 2년 전보다 1년 전의 기억력이 악화하는 식이다.

 둘째, ‘동반 증상’이다. 노인 우울증 환자의 경우 기억력 저하뿐 아니라 식욕이 없고 잠을 깊이 자기 힘들어지며 누군가 쫓아오는 것 같은 불안감이 강하게 동반될 수 있다. 인생을 헛살았다는 허망함과 죄책감, 기분이 오르내리는 증상, 소화불량, 가슴 답답함 증상도 뒤따른다. 반면에 치매 환자에겐 이들 증상보다는 일상에 지장이 생길 정도의 인지 기능 저하가 주된 증상이다. 평소 익숙한 길을 찾아가지 못하거나, 말을 할 때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등 방향 감각과 언어 능력을 포함한 인지 기능이 조금씩 나빠진다.

규칙적인 숙면·운동이 예방 첫걸음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로 기억력이 떨어졌거나 매사 의욕이 없고 우울감이 심해졌다면 진료·검사를 통해 원인을 찾아야 한다. 검사법으로는 Q&A 검사, 인지 기능 검사, 뇌 영상 검사 등이 대표적이다. Q&A 검사에선 질의응답을 통해 환자의 인지 기능이 언제부터 어떻게 나빠졌는지, 기억력이 나빠졌다 좋아지기를 반복하는지, 치매 가족력이 있는지 등을 파악한다. 인지 기능 검사의 예로 서울신경심리검사(SNSB)는 약 2시간에 걸쳐 주의집중력, 언어 능력, 시공간적 지각·구성 능력, 기억력, 전두엽·수행 기능 등 인지 기능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나이·학력을 고려한 우리나라 정상 노인의 점수 분포를 토대로 인지 기능이 얼마나 저하됐는지 알 수 있다. 뇌 영상 검사법인 뇌 MRI는 해마·뇌피질의 위축 정도를 관찰한다. 알츠하이머병일 경우 기억 저장, 학습을 담당하는 해마와 측두엽, 양측 두정엽과 전두엽이 위축된다. 박 교수는 “하지만 이런 검사만으로 노인 우울증과 치매를 단번에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며 “항우울제를 처방하고 나서 예후에 따라 치료 방향을 설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노인 우울증 환자에게 세로토닌 계열의 항우울제를 처방할 경우 빠르면 1~2개월 이내, 대부분은 6개월 이내에 우울증이 호전되면서 인지 기능도 함께 개선된다.  한양대병원 신경과 김희진 교수는 “노인 우울증 환자의 80%는 우울증이 개선·완치되거나 인지 기능이 좋아지는 등 성공적인 치료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인지 기능이 개선되지 않거나 더 나빠진다면 치매를 의심해볼 수 있다. 김도훈 교수는 “임상에서 노년기 치매 환자의 20~30%에서 우울증이 관찰된다”며 “혹여 치매로 인한 우울증이더라도 우울증을 치료하면 치매 환자의 인지 기능이 개선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노인 우울증과 치매를 예방하는 공통적인 생활습관은 ‘숙면’이다. 깊은 잠을 잘 때 치매를 유발하는 베타아밀로이드·타우단백질 등 이상 단백질이 씻겨 내려갈 뿐 아니라, 코르티솔 분비를 줄여 밝고 긍정적인 기분을 유지하는 데 도움되기 때문이다. 하루 30분 이상, 주 3~5회 땀이 날 정도의 운동, 신선한 과일·채소와 물을 챙기는 식습관을 규칙적으로 유지하면 혈관성 우울증과 혈관성 치매를 막는 데 효과적이다. 뇌혈관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등의 기저질환을 관리하는 건 기본이다. 김희진 교수는 “노인 우울증은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혼자 있기보다는 모임이나 종교활동 등 사회활동에 참여하며 여럿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늘리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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