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러시아, 우크라이나에 친러 정권 추진" 이례적 공개 발표

중앙일보

입력 2022.01.23 17:53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침공 가능성을 놓고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친러시아 정권을 세우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영국 외무부가 공개 경고했다.

의혹 당사자, 007 합성 포스터 올려 반박

예브겐 무라예프 전 하원의원이 자신의 얼굴과 스파이 영화 007의 포스터를 합성한 사진. [예브겐 무라예프 전 하원의원 페이스북 캡처]

예브겐 무라예프 전 하원의원이 자신의 얼굴과 스파이 영화 007의 포스터를 합성한 사진. [예브겐 무라예프 전 하원의원 페이스북 캡처]

22일(현지시간) 영국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친러 정권을 세우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예브겐 무라예프(45) 전 우크라이나 하원의원이 새 정권의 지도자로 고려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또 영국 외무부는 지난 2014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 이후 러시아로 도피해 망명정부를 세웠던 미콜라 아자로프 전 총리를 비롯해 세르기이 아르부조프 전 부총리, 안드리이 클루예프 전 대통령 비서실장, 블라디미르 시브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등 4명이 러시아 정보기관과 관련이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에도 관여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모두 2014년 축출된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 체제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이다. 영국 외무부는 이들이 무라예프 전 의원과 관련한 쿠데타 시도에도 연관됐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무라예프 전 의원은 친러 성향 정치인으로 지난 2012년 첫 의원 당선, 2014년에 재선에 성공했다. 이후 ‘내쉬’(Nashi‧우크라이나어로 우리의)라는 정당을 창당하고 2019년 총선에 나섰지만, 정당 득표율이 5%에 미달하면서 원내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당국이 친러 선전 방송을 했다며 폐쇄하려 했던 우크라이나 방송국의 소유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이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의 총리 관저를 나서고 있다. 트러스 장관은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시절 마거릿 베킷 장관 이후 영국의 역대 두번째 여성 외무 장관이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9월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이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의 총리 관저를 나서고 있다. 트러스 장관은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시절 마거릿 베킷 장관 이후 영국의 역대 두번째 여성 외무 장관이다. [EPA=연합뉴스]

이날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오늘 공개된 정보는 우크라이나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그들의 노력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서”라며 “러시아는 침략과 분열을 추구하는 작전을 중단하고 외교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심각한 비용을 수반하는 대규모 전략적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에밀리 혼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도 “이런 종류의 음모는 매우 우려스러운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인은 그들의 미래를 결정할 주권을 가지며,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파트너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외무부의 이러한 발표는 오후 10시 30분이라는 늦은 시각 발표됐고, 구체적인 인사들의 이름까지 거론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이와 관련 영국 일간 가디언은 “외무부의 보도자료에 담긴 전 우크라이나 정치인 5명 중 4명은 이미 모스크바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어 이들이 러시아와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는 공적 기록만도 못한 이야기”라며 “이번 발표는 영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안일하게 대처한다는 비판 뒤에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무라예프 전 의원도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영국 외무부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4년 동안 러시아로부터 제재를 당하고 있고, 러시아에 있는 아버지의 재산도 동결된 상황이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그는 이날 영국 외무부의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페이스북에 자신의 얼굴과 스파이 영화인 ‘007’을 합성한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러시아 외무부도 “영국 외무부에 퍼진 허위정보는 우크라이나 주변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들이라는 또 다른 증거”라며 “도발 행위를 멈추고 사실이 아닌 말을 유포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WP)는 “영국 외무부의 주장에 미국 관리들도 의심할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전문가들은 영국 정부의 이런 발표는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내에서 당장 대규모 쿠데타를 시도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러시아 정부의 시도를 막으려는 의도로 분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3면 포위한 러시아군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로한 컨설팅·뉴욕타임스]

우크라이나 3면 포위한 러시아군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로한 컨설팅·뉴욕타임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