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집 지은뒤 사자" 후분양제 뜨는데…전문가는 "환상 있다"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건물에 타워크레인이 걸려 있다. 뉴스1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건물에 타워크레인이 걸려 있다. 뉴스1

최근 광주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 이후 '선시공 후분양제'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리한 공사 기간 단축이 이번 붕괴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기 때문이다. 입주 시기를 맞추기 위한 무리한 공기 단축을 막을 수 있고, 수요자가 아파트의 품질을 직접 확인한 후 선택이 가능한 후분양의 장점이 부각된 것이다.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사장은 지난 17일 "후분양을 하게 되면 광주 아이파크 같은 부실로 인한 문제가 생기지 않고, 공기에 쫓겨 동절기에 무리한 공사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사장은 "SH공사는 2006년 9월 국내 최초로 후분양제를 시행했고, 지난해부터는 분양 시기를 기존 공정률의 60%에서 90% 이후로 미뤘다"며 "선분양 아파트와 달리 일반 시민의 피해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인생에서 가장 비싼 상품을 사는데 도면만 보고 결정하는 게 말이 되느냐" "이번 광주 사고가 후분양제의 필요성을 증명했다" 같은 글이 올라오고 있다.

아파트 분양은 시점에 따라 크게 '선분양'과 '후분양'으로 나뉜다. 선분양은 아파트 완공 전 분양한 뒤 수분양자(입주 예정자)가 내는 계약금과 중도금 등으로 공사비를 충당하는 방식이다.

1970년대 정부가 아파트 분양가 규제 도입에 따른 건설사의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 처음 도입했는데 건설사는 안정적인 자금 확보가 가능하고, 수분양자는 2~3년에 걸쳐 입주 대금을 분납해 자금 마련 부담이 덜한 장점이 있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선분양제는 과거 수도권 인구 유입 증가에 따른 주택 공급 부족 문제를 해소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광주=뉴스1) 황희규 기자 = 22일 오전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신축공사 붕괴사고 현장 201동에 타워크레인이 기울어진 채 매달려 있다. 2022.1.22/뉴스1

(광주=뉴스1) 황희규 기자 = 22일 오전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신축공사 붕괴사고 현장 201동에 타워크레인이 기울어진 채 매달려 있다. 2022.1.22/뉴스1

하지만 부실시공 문제가 터질 때마다 후분양제의 도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선분양의 경우 견본주택만 보고 구매를 결정해 시공 품질 하자에 대한 대응이 어렵지만, 후분양은 건물 골조공사 등 건축 공정을 60~80% 이상 진행한 이후 분양하는 방식이라 선분양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후분양제는 지난 2017년에도 정부 차원에서 논의된 적이 있다. 화성 동탄2신도시·향남2지구 등 부실시공 문제가 국정감사 과정 등에서 지적되면서 당시 국토교통부는 공공분양주택 후분양 공급과 민간부문 공공택지 우선공급기금대출 지원 강화 등을 담은 후분양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이후 집값 폭등의 주원인으로 주택 공급 부족이 꼽히면서 정부의 '후분양' 장려는 사실상 유야무야됐다. 후분양제에선 금융 비용은 물론 미분양에 대한 위험이 모두 건설사의 부담이다. 비용이 고스란히 분양가로 전가되거나 주택 공급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 정부는 공급난 해소를 위해 아예 입주 2~3년 먼저 진행하는 본청약 시점을 1~2년 더 당긴 사전청약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번 광주 사고로 후분양이 다시 부실시공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후분양도 장단점이 분명한데, 막연한 '환상'이 있다"고 말한다. 후분양제가 주택 품질을 담보하는 절대 조건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실제로 '하자'라고 불리는 사안들은 마감공사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다"면서 "이 같은 문제를 80% 정도의 공정 수준에서 발견하기는 어렵고 중대 결함도 소비자가 현장을 보고 쉽게 알 만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5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한 아파트들에서 발생한 하자는 창호와 가구, 도배와 잡공사의 순으로 발생빈도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후분양 논의보다 건설업의 고질적 병폐를 바로잡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이번 광주 사고와 같은 문제는 공사 현장에 대한 현장 감리 강화, 불법 재하도급 금지 등 확실한 재발 방지 대책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성규 위원은 "선분양과 후분양의 장단점이 뚜렷한 만큼 이분법적으로 판단하고 규제할 아니라 상황에 맞게 시장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